[오승직의 음악칼럼 45]

오승직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아직 코로나 영향 아래 있어 자유로운 연주 활동이 쉽지 않지만, 필자가 지휘하는 신000합창단은 과감하게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21회 코리아합창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연합회에서 주관하는 것이지만 대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연주 날짜가 무기한 연기되다 갑자기 대관이 확정되면서 우리 합창단도 급하게 출연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휘자로서는 걱정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단원이 참여할까, 암보로 연주해야 할 텐데 모두 암보를 할 수 있을까, 당일 스케줄이 빡빡한데 잘 진행될 수 있을까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38명이 연주에 참여하기로 최종 결정되니 가장 큰 문제는 해결된 것 같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000합창단는 순수 아마추어 단체이기 때문에 참가 인원이 꽤 중요하다. 많은 인원이 모두 합심해서 연주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마침 정기연주회 준비로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었던 터라 페스티벌에서 연주할 곡을 특별히 집중해서 몇 번 연습하고 나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지휘자로서 필자의 마음은 사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코로나 기간 단원들의 연주 경험이 거의 없었고 특히, 새로 입단한 신입 단원들이 느끼는 이런 큰 무대에 대한 긴장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단원들은 늦겠다고 약속된 몇 명을 제외하곤 시간에 맞춰 연주 장소인 롯데콘서트홀에 모두 도착하였다. 다시 한번 지휘자로서의 큰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은 한두 명이 더 있고 없고가 연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래서 혹시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없이 대부분 도착하니 오늘 연주는 어떻게든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그제야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연합합창 무대 리허설을 마치고 나왔는데 단원중 한 분이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아마도 점심 식사가 문제인 듯했다. 연주 시간은 다 되어 오지, 응급차는 안 오지, 연합회 회장과 필자는 극장 측에 다소 압박?을 행사하여 겨우 응급차로 이송하였다. 연합회 회장은 연합합창 지휘로 1번 스테이지, 필자는 2번 스테이지라 시간이 촉박하였지만 1층 외부에서 8층 연주 홀까지 총알처럼 달려 겨우 연주복을 갈아입고 준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

연합합창 화면 영상을 보니 신000합창단이 맨 앞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지휘자들이 중앙에 합창단 드레스가 너무 아름다워 전체 그림을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마디씩 하였다. 필자는 순간 놓치지 않고, 어깨에 힘 한번 주고 우리 신000합창단입니다.’ 라고 우쭐 한번 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신000합창단 없었으면 칙칙할 뻔했다고 칭찬 한마디씩 더 해주었다.

연주를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대기 하고 있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전에 이 무대 경험이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다소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무대에 오르고 단원들의 얼굴을 쓰윽 한번 보고는 연주를 시작하였다. 생각보단 집중력이 좋아 연주가 잘 진행되었다. 연습 때 해보지 않았던 표현도 슬쩍 해보았는데 의외로 잘 따라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좋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 곡은 이여도인데 제주의 느낌을 잘 표현해 보자고 강조한 곡이었다. 단원들의 표정에서 제주의 삶의 한이 서린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 또한 유연하고 깊이 있게 잘 표현되어 만족스러웠다. 모든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단원들을 보니 이분들이야말로 음악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하였다.

필자는 한때 좀 더 수준 높은 음악을 위해 조금은 삭막하게 뛰어다녔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단 음악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게 먼저인 것 같다. 그게 전문 연주자이든, 음악을 처음 접해 보는 사람이든. 그렇지만 얼마 전 필자는 바쁘단 핑계로 마음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을 떠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럽다. 그전에도 있었다. 앞으로는 없어야 할 텐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 나누는 삶은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필자는 음악을 나누면서 오히려 그들로부터 인생의 큰 배움을 얻는다.

000합창단 창단과 같이해온 시간이 벌써 낼모레면 10년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지금은 마음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거면 족하다. 그 순수한 마음 하나면 족하다. 그게 지금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이니.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