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하다. 노란 국화가 한없이 화사하고 노랗게 익은 귤이 돌담 너머로 얼굴을 내민다. 다시 찬란한 11월이다.

31년 전 꽃다운 청춘이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태웠다. 노태우 정권과 민자당이 추진하던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양용찬 열사는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를 지키겠다고 했다. 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뺏겠다는 악법을 그렇게라도 막고 싶었다.

양용찬 열사의 분신은 제주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길로 “독재 타도”와 “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투사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제주도는 개발 광풍에 노출됐다. 폐허로 남은 헬스케어타운과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가 단적인 사례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나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어느 지방도 갓길에서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ㆍ심미선 양은 국도를 따라 언덕을 걷다가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많은 시민이 촛불로 애도했지만, 구조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는 보상을 요구하던 영세상인 5명과 경찰 1명이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불에 타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구역은 재개발 대상에 올라 건물이 철거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세 들어 장사하던 상인들은 대책 없이 밥줄을 놓을 처기에 놓였다. 이들은 재개발로 손해를 입었다며 옥상에서 농성했는데, 경찰이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옥상 망루에 불이 붙었고, 현장은 생지옥으로 변했다. 옥상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은 진압이 성공적이었다며 박수를 쳤다.

2014년 4월 16일에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됐다.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에 타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도 해경이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는 배가 침몰할 때까지 수수방관했고,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에는 서울의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모인 대규모 인파가 좁은 골목에 몰리면서 많은 이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민 15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행안부 장관과 공직자들은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국무총리는 농담을 즐겼다.

지난 31년, 이 땅에는 파괴와 착취가 끊이지 않았다. 꽃다운 청춘, 인생 코너에 몰린 서민의 죽음은 반복됐다. 너무나도 그대로다.

양용찬 열사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은 “내가 31년째 추모만 한다. 추모하다 세월이 갔다”고 했다. 더는 추모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든 이들이 국화처럼 화사하고 귤처럼 탐스럽게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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