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귤색 헤드라이트』(북핀, 2022)

책의 표지
책의 표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소식에 마음이 무겁고 시큰거려지는 시간, 독특한 제목과 주황빛 따스한 색감의 표지에 이끌려 읽은 책이다. 제주 남쪽 서귀포에 살고 있고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현미 작가가 그림과 글을 엮어 발표한「귤색 헤드라이트」다.

저자는 제주도라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육지 출신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한 달 살기를 하거나 여행을 와야지 볼 수 있는 오름과 바다, 계절별로 바뀌는 바람의 향을 맡음 살았다. 저자에겐 평범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평범하지만은 않은 특별한 호사를 누렸다.

이현미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림을 그려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해 왔다. 그런데 본인의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담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따뜻한 귤색이 나를 비추고 있는 같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절기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맘때쯤 주홍빛 귤이 노을에 물드는 저녁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책은 제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배경으로 제주의 다채로운 일상을 사진과 에세이로 담았다. 육지와는 다른 제사 문화, 전혀 다른 호칭 생활 문화와 독특함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제주의 아픈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문화도 소개했다. 저자가 제주에서 날마다 경험하는 일상, 그 속에서 스쳐 지나는 느낌을 짧은 글과 더불어 예쁜 그림으로 표현했다. 눈 호강과 마음 호강에, 몽글몽글한 감성이 새로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카스텔라는 큼직한 사각형이다. 제주의 동네 빵집에 떨어지지 않고 준비되는 품목이기도 하다. 카스텔라 4개 주세요. 하면 으레 제사상에 올릴 줄 알고 부서지지 않게 상자에 넣어 포장해준다.’

p165 중에서...

육지에서 대학을 다녔을 때 육지 친구들에게 제사상에 카스텔라와 옥돔, 귤이 올라간다고 하니, 그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스텔라를 제사상에 올린다는 걸 처음 듣는다며 신기하다는 표정이었고, 비싼 옥돔과 상큼한 귤을 제사상에 올려놓는다는 것이 부럽다고도 했다. 육지와 제주도의 제사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나 역시 놀란 적이 있다.

‘겨울 제주의 이른 아침은 귤을 따러 가는 따뜻한 귤색의 헤드라이트로 빛난다.’

p224 중에서...

극조생 귤수확을 시작하는 서귀포의 가을날이 지나면 노지 감귤을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초겨울이 된다. 이때면 새벽 일찍 차를 타고 귤밭으로 이동해 저녁 내까지 귤을 따러 오는 인부들과 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도로 위를 분주하게 달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감귤밭 한 쪽에 장작불을 피워 언 손과 마음을 녹인 뒤 귤을 따러 가는 삼촌들의 모습에서 따뜻한 귤색의 헤드라이트를 떠올렸다는 표현을 썼다. 이 대목에서 작가에게 순간 질투의 감정과 부러운 감정이 동시에 생겼다. 어떤 감수성을 갖고 있기에, 같은 서귀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인데 ‘귤색 헤드라이트’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나는 부모님이 귤 농사를 짓는 귤 농부라 열심히 땀 흘리며 영근 귤을 수확하러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왜 이런 표현을 생각해 내지 못했는지 말이다.

우리 모두 새벽녘 귤색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귤밭으로 귤 수확을 하러 떠나보자.

귤색 헤드라이트/ 이현미/ 280쪽/ 북핀/ 1만5000원/ 2022년 03월 30일 출간

작성자: 허지선(사서 출신의 시민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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