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알다시피 제주여행』(연인M&B, 2022)

책의 표지
책의 표지

서귀포의 12월은 슬픔의 달이라고 명하고 싶다.

세월호보다 훨씬 더 먼저 일어났던 건국 이래 최대의 침몰사고로 기록된 남영호 침몰사고가 있던 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귀포 사람들조차 세월호는 알아도 남영호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영호 침몰사고에 관한 책을 읽었다.

서귀포시 출생으로 2009년 시 ‘연인’으로 등단한 김연미 작가가 쓴 『알다시피 제주여행』이다.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많은 사람의 발길이 제주로 향하는 와중에 이런저런 제주 여행 책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제주의 슬픈 역사인 제주4.3의 이야기와 서귀포 남영호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진짜배기 제주 여행 책은 많지가 않다.

이 책은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을 소개하는 1부,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을 소개하는 2부, 남영호 침몰사건을 소개하는 3부, 제주 다크투어 일 번지인 알뜨르 비행장 일대를 소개하는 4부로 구성됐다. 소개된 장소의 맥락을 담은 시와 그림 작품을 곳곳에 배치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스탄불이 낳은 작가 오르한 파묵(1952~)의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의 첫 장에서 터키의 또 다른 위대한 작가인 하흐메트 라심의 말을 빌려 서술한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슬픔에 있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책에서 소개하는 곳 이외에도 서귀포를 비롯한 제주도 곳곳의 이름이 난 관광지 대부분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제주4·3의 흔적이 숨겨져 있다. 제주4·3의 피해지역과 남영호 침몰사고를 많은 사람이 기억해주고 아름다운 풍경 뒤에 있는 슬픔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정방폭포 주차장 동쪽으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왼쪽에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이 있다.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25분. 여수 소리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여 320여 명의 사망자를 낸, 남영호 조난자들을 위한 위령탑이다. 위령탑은 사고 이듬해 3월, 120만원을 들여 서귀포항에 건립했었다. 그러나 1982년 9월 서귀포항을 세계적인 미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의해 돈내코 중산간 지역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산속에서 방치되던 위령탑은 세월호가 침몰하던 해, 2014년 12월 15일 다시 이 자리로 이전되었다.

p172 중에서

서귀포에서 출발한 남영호는 부산으로 향하던 중 침몰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사고였고, 세월호 침몰로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나 역시 남영호 침몰사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수없이 드나들었던 서귀포항에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이 건립됐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관광미항이라는 미명 아래 숨길 게 아니라 꺼내어 들여다보기 위해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가 왜 모르고 있었는지 의문을 품게 됐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어쩌면 의도적으로 모르는 사이 묻히게 하여 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점점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희생자 유족들은 사고 다음 날부터 제주와 부산에 각각 유족회를 구성하고 시신 수습과 선체 인양, 책임감 있는 사태 수습을 요구하며 농성과 점거, 거리시위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은 가혹한 탄압과 협박, 회유 등이었다. 남영호 침몰 사고를 당한 제주 유족들 대부분이 4·3 유족들이었다. 이미 4.3이라는 호된 역사의 매질을 당한 후였기에 그 공포는 체념으로 나타났다. 처음 몇 차례 사고 소식을 전하던 언론이 해가 바뀌면서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남영호 사건은 잊혀 갔다.

-p177

영문도 모른 채 당했던 제주4·3의 휴유증으로 인해 피해자 임에도 후폭풍이 두려워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어릴 적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귀포 남영호 침몰사고에 대해 언급을 하는 이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늦기 전에 유족들뿐만 아니라 서귀포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남영호를 기억하고 지역 언론이 남영호 사건을 언급해 사람들에게 상기를 시켜줘야 한다. 지금이라도 남영호 추모비가 원래 자리인 서귀포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알다시피 제주여행/ 김연미/ 272쪽/ 연인M&B/ 1만6000원/ 2022년 04월 30일 출간

작성자 허지선(사서 출신 시민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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