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여의 여정, ‘동백만이 남았네-너븐숭이’ 제주4.3 단편영화 탄생

촬영 현장에서 단체컷 (사진 제공=서귀포고)
촬영 현장에서 단체컷 (사진 제공=서귀포고)

조천읍 북촌리는 4.3 당시 450여명의 주민이 토벌대에 학살된 제주도에서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다. 마을에 있던 북촌국민학교는 북촌리 학살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1949117일 새벽. 북촌 마을 인근에서 군인 2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인들은 북촌에 무장대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북촌 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북촌리로 이사 온 부준구의 가족 또한 모두 총살당한다. 당시 청소년이던 준구만 우연히 도망갔다가 혼자 살아남는다>

동백만이 남았네-너븐숭이제주4.3 단편영화의 이야기다.

실제 19491월 조천읍 북촌마을에서 주민 450여명이 희생된 비극을 소재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상인물 부준구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북촌 사건의 비극을 그려냈다.

단편영화를 제작한 이들은 서귀포고등학교(교장 송재충) 1학년으로 구성된 4.3단편영화 자율동아리 친구들이다. 17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 6월 단편영화 제작을 위한 자율동아리를 구성하고 4.3문헌 자료를 분석하며 시나리오 작성에 들어갔다. 8월부터 단편영화 제작을 위한 세부 역할을 분담하고 9월과 10월 주말을 이용해 영화 촬영에 돌입했다. 10월 편집을 거쳐 러닝타임 17분짜리 단편영화가 완성됐다. 영화에는 서귀포여고 2, 대신중 2명의 친구들도 배우로 출연했다.

서귀포고등학교에서는 1130, 학교 강당에서 1학년 학생 전체와 4.3유족, 동문, 학부모 등이 참석해 단편영화 시사회를 개최했다.

영화는 제작과정 https://youtu.be/6B9qHInh7dg (3), 본편 단편영화 동백만이 남았네-너븐숭이 https://youtu.be/Sae0WshpUQQ (17), 너븐숭이 요약본 https://youtu.be/uOEV0CVwiOI (5) 3편으로 제작되어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유튜브에 업르드 된 영화 본편 인트로 (사진=영상 캡쳐)
유튜브에 업르드 된 영화 본편 인트로 (사진=영상 캡쳐)

서귀포고는 사회 교과특성화프로그램으로 뮤지컬을 통한 제주4.3의 예술적 이해, 프로젝트 봉사활동으로 도내외 4.3유적지 답사, 세미나 개최 등을 진행했다. 서귀포고 학생들은 4.3을 더욱 알리고자 단편영화 제작에 뜻을 모았다.

127, 서귀포고등학교를 방문해 영화를 제작한 자율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에 참여한 친구들은 한지건(동아리 부장), 김민혁(동아리 차장), 허승재(소품팀장), 박정현(배우섭외팀장), 고유환(연출팀장), 김지성(시나리오팀장), 김윤준(부준구 역), 한인규(부필구 역), 부준필(군인 역) 등이다.

12월 7일 인터뷰에 참여한  한지건(동아리 부장), 김민혁(동아리 차장), 허승재(소품팀장), 박정현(배우섭외팀장), 고유환(연출팀장), 김지성(시나리오팀장), 김윤준(부준구 역), 한인규(부필구 역), 부준필(군인 역) 친구들.​​​​​​​(사진=설윤숙 인턴기자)
12월 7일 인터뷰에 참여한  한지건(동아리 부장), 김민혁(동아리 차장), 허승재(소품팀장), 박정현(배우섭외팀장), 고유환(연출팀장), 김지성(시나리오팀장), 김윤준(부준구 역), 한인규(부필구 역), 부준필(군인 역) 친구들.(사진=설윤숙 인턴기자)

Q. 왜 북촌마을을 소재로 했나?

북촌 사건이 4.3에서 일어났던 일 중에 가장 많은 학살이 일어났던 사건이라 더 집중하게 됐다. 4.3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서 북촌 사건에 대해서 쓰인 책을 읽게 됐는데 이것을 이야기로 써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에 부준구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했다. 지금 우리가 청소년이기도 하고, 그 당시의 비극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어떻게 만들어 내면 될까 생각하며 주요 인물을 청소년으로 설정했다.

대정고에서 ‘4월의 동백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강익준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 역사적 사건에 오류가 없게 대본을 검토, 수정을 거쳤다.

Q. 영화 제작을 위해 역할을 어떻게 분담했나?

시나리오팀, 소품팀, 배우섭외팀, 연출팀 등 크게 4팀으로 나누었고, 배우팀이 함께 했다. 인근 학교의 서귀포여고와 대신중 친구들도 참여했다. 현장에서 촬영과 편집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Q. 단편영화 제작을 위해 동아리가 구성되고, 처음으로 영화 제작을 시도한 것이라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팀별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시나리오 팀) 국어국문학과로 진학을 희망하며 평소에도 소설을 썼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됐다. 원래 혼자서 글을 쓰다가 협업작업을 처음 해봐서 어려웠다. 뉴스 기사를 여러 개 찾아봤는데, 기사 사이에서도 충돌되는 게 여럿 있었다. 그래서 책도 많이 찾아보고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며 최대한 사실이 왜곡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쓸 때 하나에 몰입하면 편향된 방향으로 흘러가니 인물에게 과몰입하지 않게 중심을 잡는 게 힘들었다.

(소품 팀) 소품을 준비하면서 하필 코로나에 걸려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기간이 있었다. 혼자 하루에 5시간씩 대본만 보면서 장면마다 어떤 소품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촉박했다. 현장에서도 소품이 혼동 없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첫날부터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다. 준구의 복장을 준비했는데 바지가 고정되지 않아 현장에서 급하게 밧줄로 묶고 최대한 밧줄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현장에서 대처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장면에서 확인이 되는데, 등장인물 모두가 고무신을 신어야 하는데, 소품 부족으로 단체 씬에서 운동화를 신은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배우섭외 팀) 등장인물에 맞는 사람만 모집하면 돼서 가장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일을 진행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모집이 잘 되다가 어느 순간 딱 끊기기도 하고, 촬영 전주까지 섭외가 수월하지 않았다. 촬영 날 갑자기 못 오는 사람도 생기고, 배역을 줬는데 막상 그 배역이 잘 맞지 않아 충돌도 생겼다. 여자 배우를 섭외하지 못해 내가 아줌마 역할을 대신 했다가, 다시 아줌마를 아저씨로 바꾸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혼선이 생겨 난리가 났다.

(연출 팀) 소품, 배우, 시나리오가 연출에 영향을 끼치는데 내가 이해력이 좀 부족한 편이라 팀끼리 소통에서 문제가 생겼다.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하고 그날 찍어야 될 씬을 못 찍기도 했다. 이렇게 엉망으로 일이 진행됐다가, 다시 준비를 철저히 하여 진짜 수월하게 일을 끝낸 날도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영화 제작 전체에 영향을 주다 보니 책임감에 버스에서 앓아누울 정도로 몸이 아프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촬영 감독님과 현장 소통을 잘하려 했다. 어려웠던 것은 촬영감독님이 어른이니까 내가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록 사전 준비는 힘들었지만 뛰어난 위기대처 능력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배우) 나의 외모와 맞지 않는 배우 나이 설정과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애교쟁이 주인공의 역할을 소화해내기가 힘들었다. 집에서 혼자 거울을 보면서 우는 척도 해보고 애교부리는 연습도 하면서 혼자 자괴감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사전 연습이 부족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소품도 바지가 커서 밧줄로 허리를 묶고, 고무신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벗겨지고 돌에 찍히기도 하며 고생했다. 원래 꿈이 배우인데, 촬영하면서 현장에서 버려야 할 부분도 많이 알게 됐고, 동아리 활동 전 잘 몰랐던 친구들과 점점 친분도 쌓아가며 새로운 친구도 사귀는 시간이 됐다.

그리고 등장인물 중 군인들을 빼고 모두 제주어를 써야 해 사투리 때문에 배역이 바뀌기도 했다.

배역이 너무 욕심이 나 처음에 거절당했지만 계속 밀어붙여 결국 원하는 역을 따내기도 했는데, 막상 촬영하고 애기 같은 내 목소리와 듬직한 캐릭터가 맞지 않는 것 같아 괜히 했나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시사회 때 관객들이 손뼉 쳐주니까 자신감도 얻게 되고 좋았다.

내 목소리가 굵고 무서운 스타일이라 장교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중사로 강등이 됐다. 부하들을 지휘하는 권위가 있는 장교 역을 하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얻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제작 과정 영상 일부 (사진=영상 캡쳐) 
제작 과정 영상 일부 (사진=영상 캡쳐) 

Q. 영화를 찍고 난 후 제주4.3에 대해 달라진 생각이 있나?

학교에서 4.3주간으로 배우니까 그저 잊지 말아야 될 역사라는 막연한 인식만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영화에서 군인역을 맡으며 주민들을 총살하는 행위를 하게 되니, 정치적 사건으로 시작해 민간으로까지 퍼진 이 사건이 무고한 시민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체가 끔찍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교과서 안에서 4.3은 좌익의 무장대를 정부가 토벌하러 왔다 이정도로만 교과서를 통해 배웠는데, 4.3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선 과정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기사 댓글도 보게 됐는데 ‘4.3그만 팔고 귤이나 팔아라등의 댓글, 윤석열 정부가 개정 교과서에 4.3 기술을 삭제한다는 기사에도 사람들이 굳이 4.3이 교과서에 실릴 필요 없다라는 댓글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교육을 받으니까 무의식적으로 4.3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제대로 더 잘 알아서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과 글로만 배우던 4.3을 촬영차 현장을 답사하니 느낌이 전혀 색달랐다. 현장에 가니 가슴이 쑤시는 경험을 하게 됐다. 사람들이 4.3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현장을 가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어려서부터 나들이 가던 너무나 익숙한 장소이던 천지연 폭포가 4.3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몰랐는데, 알고 나니 그 장소가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4.3유적지가 많은 것 같다. 시설도 정말 열악하고 표지판만 덜렁 있었을 뿐이라 국민들이 아직도 4.3에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있는 4.3유적지도 청소가 잘 되고 시설 관리도 잘 되어서 근처 주민들부터 잘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자료를 찾다보니 John Eperjesi 경희대 영문과 교수가 외국인임에도 4.3을 굉장히 많이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영상으로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4.3을 외국에도 좀 알리고 싶어 교내에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영어 자막을 만들어 영상에 삽입해 올리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소감을 전하면

처음 이렇게 큰 스케일로 영화 촬영하고 많은 친구가 모여서 다 같이 노력했다. 내가 아직도 어린애 같았구나라며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계기로 더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많이 읽게 됐다. 내가 성장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원래 목소리가 큰 편인데, 집이나 학교 등 일상에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내는데 제한을 두곤 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마음껏 표출하게 됐고 기분 좋은 해방감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단합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씬에는 많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잘되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에 끝까지 참여했다. 현장에서 내 역할이 끝났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나의 작은 도움이 영화가 잘 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성취감도 느끼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강익준 자율동아리 담당 교사는 영상의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아이들이 정말 많이 애를 썼다. 시행착오도 겪고, 많은 아이들이 협업하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합을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값진 경험의 시간이었다제주 4.3이 아픈 역사이지만 아픔에만 머물면 안 된다.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미래세대가 기억하는 것은 또 다른 세대에게 계승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단체컷 (사진=서귀포고 제공) 
현장에서 단체컷 (사진=서귀포고 제공) 

6월부터 동아리 모집이 시작되어 10월에 제작이 완성된 17분의 단편영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인물을 설정해 현세대인 청소년들의 눈으로 이야기를 표출했다.

9월 태풍으로 두 번이나 촬영이 연기되고, 촬영 기간 중 시험 기간도 겹쳤다. 평일과 주말 모두 각자의 바쁜 일정으로 시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영화 제작이라는 일을 혼자가 아닌 17명의 친구가 함께해야 했다.

잘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영화 한 편이라는 결과물보다 5개월 고군분투하며 성장한 시간이 17세 청소년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훌륭한 결과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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