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여중, 교과과정으로 종합예술 도입 그리고 값진 결과물
예전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제주4‧3.
이제는 외친다. 그 진실을 제대로 알라고 세상에 당당히 이야기한다.
희생의 틀에만 가둬 두는 것이 아닌 혁명으로 이야기하는 제주4‧3. 프랑스 혁명을 다룬 작품 레미제라블에 제주4‧3과 실존 인물 문상길을 입힌 뮤지컬이 탄생했다.
서귀포여자중학교(교장 강영훈)는 제2회 정기연주회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Twelve’를 오는 12월 20일 오후 2시 30분,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무대를 올린다. 공연은 1부 오케스트라와 2부 뮤지컬로 선보인다.
악기와 연기와 노래와 춤. 모든 예술이 어우러진 종합선물세트이다.
뮤지컬 ‘Twelve’를 탄생시키기 위해 함께 땀을 흘린 스태프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양인슬 서귀여중 음악교사가 예술 총감독으로 진두지휘했다. 연출, 오케스트라, 드라마트루기, 안무, 뮤지컬연기, 제주어, 지휘, 뮤지컬배우, 성악가, 클래식 악기 연주자 등 많은 분야의 전문가가학생들과 함께 했다. 여기에 이 무대의 주인공인 서귀여중 학생들이 슬가람 챔버 오케스트라, 슬가람 뮤지컬 동아리, 뮤지컬 안무팀, 영상 제작반, 소품 및 의상 디자인 등을 맡았다.
서귀여중은 2019년 1학년 자유학년제에 음악극 장르를 도입했다. 2019~2020년에 구노의 오페라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파우스트, 2021년에는 음악극 맥베스를 교육과정 내 음악 수업에 재구성했다. 또 2학년 과정에서는 국악과 뮤지컬 합창 수업을 진행했고, 동시에 3학년 과정에서는 타 학년 동일 교과로 연계해 뮤지컬 수업을 심화했다.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교육과정 내 동아리 뮤지컬반을 개설해 제60회 탐라문화제 및 2021 제주학생문화축제에서 제1회 뮤지컬 ‘15살 제주를 노래하다’를 비대면으로 공연했다.
올해는 3학년을 대상으로 이전 학년 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학생들 스스로가 프로젝트 주제를 정하고 대본 쓰기, 역할 정하기, 연출하기, 공연 등 기획에서부터 공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밟아나가도록 하는 뮤지컬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교실 내 뮤지컬 공연 및 교내 축제에서 반별 뮤지컬 공연 등 공연예술과의 연계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3학년 학생 전체가 교과과정으로 뮤지컬을 직접 경험하게 됐다.
이번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Twelve’는 4‧3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을 완전 숫자 12로 표현했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탄츠테아터(독일어 탄츠(춤)+테아터(연극)) 활동과 연계해 뮤지컬 속 제주4‧3과 문상길에 대해 그렸고, 영상 제작반 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영화 작품 ‘5㎞’를 삽입했다. 또한, 원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 마지막 대합창곡 ‘one day more’로 제주4‧3이라는 아픔을 우리가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고민과 과제를 제시한다.
특히, 본교 출신인 제주특별자치도향토무형유산 제8호(해녀춤, 물허벅춤) 보유자인 이연심 선생님이 특별출연했다.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중략) 당시 희생된 피해자들은 막연한 시대의 희생자는 아닙니다. 아직 4‧3은 끝난 것이 아니지요. 어쩌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연 ‘FINALE 2022. 현재’ 장일식 대사 中
12월 19일, 리허설이 한창인 서귀여중의 현장을 찾았다. 내일 본 공연을 앞두고 참여자들의 뜨거운 열정이 가득했다.
해녀들이 인민위원장인 장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4‧3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혁명을 치르는 와중에 러브스토리도 있고, 피날레를 통해 4‧3에 대한 여러 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노래하며 러닝타임 1시간의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인터뷰를 통해 배역을 맡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지원(2학년) 학생은 혁명군 대장 역을 맡았다.
“4‧3에 관심이 없었는데, 뮤지컬을 계기로 4‧3과 관련해 더 깊게 공부했다. 사건의 배경과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봤고, 삶이 아픔으로 가득했던 제주도 사람들의 삶을 느끼게 됐다”
이예은(1학년) 학생은 탄츠 공연팀, 해녀, 시민 역을 맡았다.
“4‧3을 이야기로 만들고 탄츠테아터로 표현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뮤지컬을 연습하며 만약 그 당시 단독 정부가 아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연습하며 그 당시 4‧3 희생자들의 아픈 고통을 상상하게 됐다”
김보경(2학년) 학생은 탄츠 공연팀, 해녀, 혁명군 역을 맡았다.
“탄츠를 작년에 음악 시간에 배웠다. 무용연극을 뜻하는 탄츠가 생소했지만, 어떠한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경험이 새로웠다. 문상길을 탄츠로 표현하며 내가 4‧3에 대해 생각보다 너무 몰랐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고 더 잘 알아야겠다 생각했다”
나가빈(1학년) 학생은 탄츠 공연팀, 해녀 역을 맡았다.
“주말에도 연습해야 하고, 탄츠 동작, 대사 등을 외우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맛있는 간식도 사주시며 신경을 많이 써주시고, 모두가 함께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니 스스로가 좀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오케스트라, 객석 무대에서 2학년들의 전체 합창, 그리고 뮤지컬이 함께해 풍성하고 조화로운 무대가 탄생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찾아 하나를 만들어 낸 종합예술이다.
양인슬 지도교사는 “자기 역할에 따른 자기주도적 교육 과정이 종합예술이다.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보편 교육이 현실이다. 서울에서는 2016년부터 5개년으로 종합예술이 의무적으로 시행되었지만, 제주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교육 과정이다”며 “나는 보목동 출신이고 서귀여중 졸업생으로 서울, 경기권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2019년 모교 음악 교사로 오게 됐다. 현시대의 트렌드인 종합예술교육을 나의 후배들이자 제자들에게 교과과정으로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전문 예술가들을 외부 강사로 초청하고자 할 때, 제주시에 계신 강사님들이 서귀포시라 오지 않겠다는 상황에 너무 놀랐다. 하지만, 도교육청에서 너무나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셔서, 현직 공연 예술가를 서울에서 초청할 수 있었다. 도교육청의 무한한 지지에 거듭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제주시와의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서귀포시 관내 학교에서 많은 아이가 종합예술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