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태욱 편집국장

국가정보원은 박지원 원장이 재임하던 지난해 7월, 1960~80년대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개서한을 통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박지원 원장 명의의 서한을 통해 “과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피해자와 가족분들이 큰 피해를 보신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과 대상은 1964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인혁당 사건과 1968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 27개 사건 피해자들이다. 국정원은 “과거 잘못을 완전히 청산하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헌신하는 정보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9일 전북과 제주, 경남 등에서 진보진영 인사 등 6명의 자택과 사무실, 차량 등을 압수 수색을 했다. 이들 중 일부가 북한 공작원에 국내 정보를 넘긴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압수수색 대상에 오른 인사에는 강은주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도 있었다. 강은주 전 위원장은 공식적으로는 4·3민족통일학교 대표이긴 한데, 말기 암 환자로 사실상 시한부 삶을 사는 처지다. 1년 넘게 지속한 항암치료를 받았던 터라 거동이 불편한데, 국정원 압수수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병원에 실려 갔다.

국정원은 19일에 박현우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과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자택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다른 지역에서 나온 혐의를 빌미로 제주도 내 진보인사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가 커진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국정원이 국내 정당인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강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무나 변한 태도에 놀랄밖에.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제주도 4·3사건과 여순·순천 군봉기 사건을 계기로 불순분자를 처벌하기 위해 제정된 비상조치법이었다. 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도 민주인사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국제사회가 여러 차례 폐지를 권고했다.

1995년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 보고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참고하면 좋겠다. 아비드 후세인 보고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한국이 국제 인권법에 규정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적절히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에 일치하는 다른 수단을 통해 국가안보를 보장하라’로 권고했다.

우리나라 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진정을 접수했다. 지난 2003년에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국가보안법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전원위원회 심의를 통해 국회의장과 법무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최종안으로 결정했다. 물론, 내부에는 폐지 권고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인권위원회는 ‘폐지 권고문’에 국가보안법이 태생적 문제점이 있고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아 법률로서 규범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해할 소지가 많은 반인권적 법률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더라도 형법 등 다른 법률이 있어 처벌 공백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법률 폐지를 권고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지난해에는 국정원장이 직접 과거 인권탄압에 대해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대낮에 말기 암 환자 집까지 압수수색을 펼쳤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을 보내야 한다. 국가에 해를 가할 범죄자는 다른 법률을 통해 처벌하면 된다. 그리고 국정원은 더는 국내 정치인을 탄압하는 일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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