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용인이 남영호 희생자 추모예술제에 참석해 춤을 선보였다.(사진=장태욱 기자)
한 무용인이 남영호 희생자 추모예술제에 참석해 춤을 선보였다.(사진=장태욱 기자)

15일은 남영호(南榮號) 참사가 발생한 지 52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유족과 서귀포시청 공직자, 도의원 등이 위령탑 앞에 모여 추모제를 열었다. 오후에는 서귀포시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과 유족이 천지연 야외공연장에 모여 추모예술제를 열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남영호의 이름을 적극 거명한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대형 참사에 쉽게 노출됐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10월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안전을 담보해야 할 책임자들은 현장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고, 국가는 죽어가는 자국민을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이후 책임지는 이가 없는 것도 비슷하다.

52년 전, 남영호 참사 때도 그랬다. 새벽에 남해 여수 인근 바다에서 여객선이 파도에 부딪혀 무게중심을 잃고 한 시간 만에 뒤집혔다. 선장이 무선으로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한국 해양경찰은 12시간 가까이 현장에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았고, 대신 일본 어선과 순시선이 구조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최소’ 319명, ‘최대’ 337명이 목숨을 잃었고 12명만 살아남았다. 우리 연안에서 발생한 해난 사고 가운데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남긴 재난으로 기록된다.

남영호 참사는 돈벌이에 눈이 멀었던 선주 측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관리감독을 허술하게 했고 구조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며 사안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기에 급급했던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재난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유족들은 처음 사고가 발생하자 유족회를 결성하고 시체인양과 사고원인 규명, 유족보상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사고 일주일 만에 선체인양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남영호 참사에 책임자 대부분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거나,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국가와 사회는 남영호 유족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겼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참사의 규모, 슬픔의 깊이에도 정부와 제주도는 남영호 희생자를 기억에서 지우려 했다. 1971년 3월 서귀포항에 세워진 위령탑은 1982년 9월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돈내코 계곡 인근으로 옮겨졌다. 산골짜기에서 잡초에 가려 방치됐던 위령탑이 정방폭포 인근에 새롭게 조성된 건 2014년의 일이다.

서귀포시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남영호 희생자 추모예술제를 개최한다. 망각 속에 침몰해 잠들어 있는 남영호의 이름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과 같은 활동이다.

남영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은 살아있는 자의 당연한 의무다. 그동안 남영호 참사에 무관심했던 시민과 정치권, 행정기관이 더 적극 나서야 한다. 그래야 우리 주변에 맴도는 어두운 삶의 기운을 걷어치울 수 있다.

서귀포신문은 남영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유족을 위로하는 일에 늘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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