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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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심정이 편치 않다. 소수의 사람은 살기가 편할지 몰라도, 다수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도시에 살던, 농촌에 살든 마찬가지이다.

도시에서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고 고금리 시대가 되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의 고통이 심하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자영업자 등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살기가 힘들다.

농촌도 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쌀값은 하락했고, 생산비는 급등했다. 기후위기 탓에 농사짓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등유 가격은 두 배 가까이 올라, 농촌 주민 가운데 주택 난방도 어려운 이가 많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란 공동체가 겪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고, 이들의 뒤에는 경제ㆍ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결국,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정치인 셈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지금의 집권세력은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야당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면, 서로 상대방이 잘못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비판하기가 더 쉽다. 내가 잘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잘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게 그간의 경험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부재’ 또는 ‘정치의 실종’을 얘기한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고,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사람을 갈아치워도 정치는 더 나빠져 온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따라서 사람을 갈아치우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 시스템 자체를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 나라는 선거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지금의 정치가 지긋지긋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거제도를 손보는 일이다.

마침 2023년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해이다. 그러니 조금은 차분하게 선거제도에 관해 토론할 수 있다. 국회에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여러 대안이 법안 형태로 발의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 한국 정치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 가지 정도의 원칙을 지키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는, 승자독식이 아니라 표의 등가성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30% 정당지지를 받으면 30%의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거대양당의 기득권구조는 깨어지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원내로 진출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특정정당에 의한 지역 일당지배체제를 깨는 개혁이 필요하다. 특정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니, 유권자를 보고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면서 정치를 하게 된다. 이런 구조를 깨려면,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더라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해야 한다.

셋째, 정당의 공천을 유권자들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개방형 명부’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되, 유권자들이 정당도 고르고 후보도 고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덴마크, 스웨덴 같은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과 함께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도입해야 한다. 이런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가 제 역할을 하게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2023년에는 더 많은 주권자가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을 두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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