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호남 도시공학 박사

단군왕검은 아들 부루에게 명해 9년 대홍수로 큰 어려움을 겪던 하나라의 우임금을 도산(塗山, 진흙산, 지명)에서 만나게 했다. 부루는 그에게 8년 간 실패하던 치수의 방법을 가르쳐 재앙을 극복하게 하였으며, 마침내 우임금이 왕에 오르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실린 장면이다. 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다른 설명이 없어도 고대 동북아시아에서는, 조선(朝鮮)과 하()라는 두 강국이 협력하며 각자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장면은, 이암의 <단군세기>에서 단군 재위 67년인 갑술년에 있었다고 기록되었고, 조엽의 <오월춘추>에서는 창수사자와 우왕의 이야기로 소개된다.

그렇다면 고대 동북아시아의 강국이었던 조선 즉, 고조선의 강역(疆域)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 이때 등장하는 쟁점이 한사군 위치이론이다. 한사군 위치가 한반도 내부인가 외부인가 하는 문제는 동북아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기원전 108년 중국을 통일한 한 무제는 이웃 나라 위만조선을 무찌르고 점령지 통치를 위해 낙랑, 진번, 임둔, 현도를 설치한다. 하지만 3군은 30년 만에 소멸되고, 낙랑만이 명맥을 잇다 서기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다. 기원전 2333년을 단기력 즉, 고조선 건국시점으로 공인했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2225년 동안 이어진 고조선의 세력이 어디까지였는가 하는 문제는 국가와 민족의 위상과 자존심 문제이자 장차 세력 확장을 어디까지 바라볼 것인가 하는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사군 지역을 포함한 고조선 강역에 관한 문제는 북한역사학자 리지린이 깊은 통찰과 연구를 펼친 바 있다. 그는, 고서의 체계적 분석과 유물 기반의 실증적 논리를 구축하며 자신의 이론을 중국 역사학계로부터 인정받았으며, 마침내 중국 봉건사가들과 일본 식민사가들 사이에 형성된 역사적 선입견을 과감하게 탈피할 많은 근거를 제시한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건립한 것으로서, 그 동쪽 끝은 산해관이다. 산해관은 황하가 발해로 흘러들어가는 길목이며, 명나라 말기 후금의 공격을 막아 최후의 저항을 이룬 상징적 장소다. 이 근처 하북성 창려현에 695m의 갈석산이 발해를 바라보고 있다. 리지린은 <사기 흉노열전>, <진서 지리지>, <후한서, 군국지>, <위서 지형지>, <독사방여기요>, <사기 조선열전> 등 고서를 분석, 바로 이 갈석산까지가 한 요동군이 위치했던 지역이라 말한다. 고대의 요동은 현재의 요동반도가 아닌 만리장성 동쪽 끝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영토는 꽤 명확해진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와 경계를 맞대며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던 고조선이라 하더라도 한나라 통일 후 최소 영역이 산해관 일대에서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요동반도 일대는 후금을 이은 청나라가 자신의 영역을 명나라와 병합하는 과정에서 편입한 영토에 불과하다.

22.5~29.4cm의 날렵하게 생긴 곡선형 청동단검이 있다. 기원전 7~5세기경에 제작된 이것은 비파형단검이라 부른다. 고조선의 청동기 대표적 무기다. 이는 손잡이 일체형이자 날이 일자형인 고대 중국식 청동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파형단검은 황해북도 신평군 선암리,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 경상북도 경주 입실리 등에서 출토되었고, 동시에 중국 요녕성 대련시 목왕성에서도 다수 발견되었다. 이는 고조선 강역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신채호는 우리민족의 고대 사료들인 <유기> 100, 신라 미실의 700권 수기 등이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수만 권의 역사서를 연구하고 자주적 사관을 세우며 말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아()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우리는 완전한 21세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아와 비아의 투쟁을 전개할 때다

  저자 소개

  강호남

  서귀포시 출생,  남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도시공학 박사

   건축시공기술사,  (주)델로시티 상무

  국민대 출강                            

  서울시 중구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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