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27)] 제주올레 19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조천 만세동산에서 북촌 너븐숭이를 지나 김녕리는 질곡의 올레이다.

거친 환경을 마다치 않고 옹기종기 평화롭게 모여 바당 밭을 헤치며 험한 돌밭을 일궈온 강인한 주민들의 한마당에, 무자년 겨울 4·3이라는 먹구름 속으로 도껭이주제에 휘말려, 국가 권력에 의하여 주민 436여 명이 억울하게 학살당했다.

시방도 무서워 울음을 멈춘 아가의 무덤에는 순이 삼촌이 홀로 앉아 애기구덕을 흔들며, 웡이자랑 웡이자랑으로 매서운 칼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이추룩도 칭원한 삶의 질곡도 있었을까. 세상 어느 역사에 적군이 아닌, 아군의 총칼에 이와 같은 대학살 만행이 있었을까. 아픔을 아픔이라 말하지 못한 채 각혈로 살아온 한세월, 그 세월의 올레에 올 저슬 첫 눈이 훨훨 나린다. 나리는 눈은 서우봉을 지나 너븐숭이·포구·당팟·마당궤·꿩동산·낸시빌레를 원무하며 다시 하늘로 솟아 오르다, 다려도의 옥빛 윤슬이 되어 대천바당을 향하여 노 젓고 있다.

이렇게 노를 젓다 보면, 이어도에 닿을 수 있을까. 그 섬에 닿으면 오래전 기억으로만 전해온 북촌리의 슬픈 436인 영혼의 못다한 전설을 다 풀어낼 수가 있을까.

올레 돌담마다 남아있는 그날의 잔영들, 오름마다 봉화 올리며 보리밭 멍엣줄에서 설한풍을 넘겼던 말씀들이 알알이 스미는 북촌 올레, 대문 없이도 살아온 삶의 자욱으로 일어나, 마을 올레를 상생으로 열어 가고 있다.

스물일곱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 19코스는 2011924일 개장되었다. 3·1 함성이 울렸던 조천 만세 항일동산에서 신흥리·함덕리·서우봉·북촌리(뒷개해뎅이골·너븐숭이·다래여·검섯개·뒷개·퍽갯골·한사동·북촌동굴·동복리·새장밧·동복리운동장·벌러진동산·김녕리·논밧도·도술밧·궤살뫼·한거리·돗술·부무술·만흘동·노모릿당·김녕포구·한개골·서울뱃자리·종선자리·한수동 한개빌레 까지는 19.4km로써, 49리가 넘는다.

 

조천만세동산(사진=윤봉택 제공)
조천만세동산(사진=윤봉택 제공)

조천만세동산은 1919321일에서 24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이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의 발상지이다. 제주에는 1918. 10. 7. 무오법정사 무장항일운동을 비롯하여, 1919. 3. 21. 조천만세운동·1932. 1. 7. 구좌해녀항일운동 등 크고 작은 항일운동이 많았다.

이곳에서 해안가 엉장메, 마농개로 나가면, 연둣동산에 왜포연대가 있고, 좀 더 가면 고남 환해장성고남불턱, 그리고 동북 끝점이 관곶해안이다. 신흥리 환해장성을 따라 가다보면, 불턱 내부에 해신제단이 따로 있고, 더 지나면 3km 지점 북모살동쪽이 왯개이다. ‘오다리탑을 지나면, 순비기나무가 많아 비베기동산이라 부르는 곳은 양어장으로 변해있다.

 

신흥리 오다리탑(사진=윤봉택 제공)
신흥리 오다리탑(사진=윤봉택 제공)

신흥포구 왯개 좌우에는 마을의 액운을 막아내는 큰개탑, 오다리탑2기의 방사탑이 있고, ‘당알에는 신흥마을 본향당인 볼레낭 할망당이 있는데, 남성은 출입할 수 없는 당이다.

포구 주변에는 솟아나는 샘물이 많아 서나물·신흥물·큰물 등 다섯 개나 된다. 신흥리 밧담을 따라 5km 지점 지나면, ‘함덕1앞갯물북쪽이 앞개·모살물개·사시포구이다. 포구 지나 올렛여를 기점으로 서쪽 평사동 앞을 큰사시미’, 동쪽은 올렛여 샛사시미’, 서우봉 입구 백사장을 모살동네 족은사시미라 부른다.

 

함씨할망 함다리(사진=윤봉택 제공)
함씨할망 함다리(사진=윤봉택 제공)

큰사시미해안에는 큰도물과 지금은 매립되어 사라진 고넹이성창(오션그랜드)과 강녕개/함덕포구(제주어촌 북쪽 해안)가 있었다. 이 함덕포구에는, 제주도에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민간인이 건설한, 마을의 함씨 할망이 만들었다는 돌다리가 있었는데, 그 규모가 110보나 된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8>에 기록되어 있다.

 

팔선진(사진=윤봉택 제공)
팔선진(사진=윤봉택 제공)

또한 함덕리에는 멸치잡이 팔선진이 유명하다. 1902년 이 마을 남강 한석봉님이 멸치잡이 방법을 고안하여 협동 작업하도록 한 멸치잡이 방식이다. 멸치잡이를 위해 배와 배 사이에서 여덟 명이 합심하여 그물 작업하는데, 이 과정에서 멸치 후리는 소리가 구성지게 불려진다.

올렛여를 지나면 동쪽 백사장이 샛사시미이고, 그 동쪽에 풍어를 기원하는 서우제당과 그 건너 서우봉 입구에 족은사시미해안이 있다.

서모오름 또는 서우봉이라 부르는 이 오름은 함덕리와 북촌리의 경계이며, 서산망이라는 서산봉수가 있었다.

서우봉에서 몬주기알, 남서모를 지나면, 북촌리 해뎅이골이다. 해동포구를 지나 굽이굽이 마을 안 올레를 가다보면, 문득 닿는 곳이 너븐숭이이다.

북촌리 너븐숭이는 그 이름만 들어도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1948. 12. 19, 4.3으로 인하여, 북촌마을 주민 436여 명이 아무런 영문도 없이 군인 경찰에 의하여, 대학살을 당한 넋을 추모하기 위해, 이승의 이름으로 세운, 너븐숭이4.3기념관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제주올레 19코스를 세 번이나 순례하면서도 기념관 안으로 감히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마을 강정에서도 4.392명이나 희생되었었는데, 이곳에서는 436명이다. 이 지구상 대명천지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국민을 아무런 이유 없이 학살한 정부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왼손 오른손은 알아도, 좌익 우익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자유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48년 제주도민들은 그렇게 속절없이 희생되었다.

 

북촌포구 도댓불(사진=윤봉택 제공)
북촌포구 도댓불(사진=윤봉택 제공)

검섯개, 맹개통지나 다려도 찍고 구진모루코지에 닿으면, 북촌리 본향 가릿당이다. 그 동산에는 191512월에 건립된 등명대가 있는데, 풍화로 많이 녹아 내렸다. 바로 곁이 북촌포구 뒷개이다. ‘퍽갯골의 올렛담장 따라 용물코지, 조지물콪을 지나, 11km 지점 건너 남으로 오르면, 길가 서쪽에 북촌동굴이 있다.

4차선 도로를 건너가면, 골막 동복리 지경이다. 초가지붕 덮는 새가 많이 생산되었던 새장밧이 있고, 그 위에 동복새생명교회가 있으며, 13km 건너 동복리마을운동장에 중간 스탬프 간새가 서 있다. 임도 따라 벌러진동산을 오르면 동복 북촌 풍력발전단지이다. 15km 지점 김녕리로 들어서면, ‘논밧도, 논밧두덕지경이다. ‘도술밧올레 지나 궤살미, 묘산봉을 안고 북쪽으로 17km 내리면, ‘한거리, 돗술지경이다.

남흘동 부무술지나 성덕모루팽나무를 넘으면, 길가 서쪽에 남흘동 본향 노모리동산 노모릿당이 있다. 김녕포구를 지나 한개골로 들어서면, ‘서울뱃자리, 종선자리, 큰한수가 차례로 나타나며, 그 건너 한수동 해녀마을 쉼터에, 제주올레 19코스 종점 올레 간새가 기다린다.

 

19코스 종점(사진=윤봉택 제공)
19코스 종점(사진=윤봉택 제공)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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