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 문화센터 고기복 대표

고기복 대표
고기복 대표

새해가 됐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연초에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새해 소망을 물어보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기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던 중국동포 아저씨는 귀국을 소망했고, 매번 국적시험에 떨어져 이제는 의기소침해 있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은 딸아이와 친정 방문하고 싶다 했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속이 터지지만, 아이들만은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얻기 원하는 콩고 출신 난민 신청인, 작년 말에 탈장 수술 이후 고혈압과 당뇨 증세까지 한꺼번에 찾아와 건강 회복을 원하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등등.

건강과 직장생활의 안정을 원하는 가운데 이구동성으로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며 “이주노동자 인권도 인권이다. 이주노동자도 가족이 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국내 외국인력 정책은 이주노동자 본인의 입국만 허락하고, 가족이 함께 이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체류하는 동안은 무조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만 한다. 그런 이주노동자들에게 온 가족이 모이는 한국의 새해 문화는 그들로 하여금 가족·친지와 고향을 더욱 그리워하게 하는 절기다.

설날 가족끼리 야외 광장에 모여 노는 장면이다.(사진=장태욱 기자)
설날 가족끼리 야외 광장에 모여 노는 장면이다.(사진=장태욱 기자)

언젠가 한국에서 15년을 살다가 귀국한 이주노동자로부터 한국 동요를 자국어로 번역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번역이라 했지만, 사실은 감수를 부탁받은 거였는데, 그가 요구한 한국 동요 제목은 ‘같이 같이 설날’이었다. 제목만 보고도 ‘까치 까치 설날은’을 번역해 달라는 줄 알았지만, 한국어를 대학에서 전공한 사람 못지않게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가 왜 ‘같이 같이 설날’이라고 했을까 하고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요즘은 사과, 배, 포도 등 과일을 쪼아 먹어 농가에 상당액의 손해를 끼치고, 전신주에 둥지를 틀어 합선 사고 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면서 해조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근대화 이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설날만 되면 복된 새해를 소망하며 까치가 울기를 기대했을 정도로 까치는 길조의 대명사였다. 그런 문화적 배경을 모르는 외국인이 까치를 새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5년을 한국에 살면서 설날만 되면 ‘까치 까치 설날은’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들었었고 배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까치’를 새가 아니라, 사람이 함께한다는 뜻의 ‘같이’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씩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을 감수하면서 고향에 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해마다 명절이면 ‘나도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같이 같이’ 음식도 장만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설만 되면 전국 곳곳에서 고향을 찾아 한 자리에 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까치 까치 설날은’ 온 가족·친지가 함께 한다는 뜻에서 ‘같이 같이 설날’이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고향을 떠나 있던 그가 온 가족·친지가 함께 한다는 뜻에서 ‘까치 까치 설날은’을 ‘같이 같이 설날’로 받아들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해석이었다.

그렇다. 우리에게 가족이 있듯이 이주노동자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리운 부모가 있고, 사랑하는 형제자매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다. 올해는 그 사실을 잊지 않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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