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28)] 제주올레 20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김녕에서 월정·행원·한동·평대·세화에 이르는 올레는 세계자연유산의 보고이다.

농사를 짓는 토양으로만 본다면 척박한 환경이지만, 그 모살밧 아래에는 손금의 생명선처럼 웅대하게 벋어 내린 수많은 용암 동굴군이, 제주를 찾는 수만의 시민들에게 안식을 안겨드리는, 세계유산으로서의 뜨거운 용암의 혼불을 지피고 있다.

일만의 전설을 간직한 동굴 지하에는 시방도 석순이 되어 억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라고 있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지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2005511일 전신주 교체작업 도중 우연히 발견된, 지하의 용암 석회 용천동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하 동굴 위로 개설된 4차선 도로에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차량이 시속 70km 이상으로 고속 질주하며, 지하 동굴의 운명선을 뿌리채 흔들고 있다. 이러다가 동굴 석순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제주올레 20코스는 자연유산의 보고이다. 올레에서는 유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고자, 동굴 지정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에둘러 올레를 열었으니, 이 또한 지견이 아닌가.

요절 시인 임제 백호(1549-1587)1577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다음 제주목사로 있는 부친 임진을 뵈려 119일 조천진에 도착한 후, 22일부터는 제주를 유람하기 위해 피리 부는 악동 등 일행과 함께 김녕포에 도착하게 된다. 임제의 <남명소승>에 의하면, “마을에는 백수를 넘긴 노인이 10여 명이나 되어, 마치 신선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나는 어르신들께 여쭈었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무슨 일하시며 드시는 음식은 무엇인지.’ 그 가운데 나이 드신 한 노인이, ‘풍년·흉년에 따라 죽밥을 가리지 않으며,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일부러 일을 벌이거나 욕심을 내지 않고, 베옷과 솜옷 한 벌로만 30~40년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산은 멀고 물은 깊어 산나물이나 생선을 잘 먹을 수는 없지만, 바닷가 모래와 돌 사이에서 자라는 불로초를 캐어 맛있게 먹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불로초가 등나무처럼 넝쿨로 되어 있다고 하였고, 섬 둘레마다 채취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불로초가 다름 아닌 모자반에 해당하는 해조류의 을 말한다.

스물여덟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 20코스는 2012526일 개장되었다. 김녕리 용두동·봉지동·청굴동·세기알포구·지픈개·성세기해변·너운립개·동성동·월정리·월정리포구·월정리백사장·행원리서동·금산목·행원포구·농공단지·한동리·좌가연대·서동·평대리 쉰모살·감수골·수리동·중동·불림모살길·진동산길·입두동(갯머리길세화리·세화포구·민속5일장·통항동·제주해녀박물관·제주올레20코스 종점 까지는 17.6km로써, 44리가 넘는다.

임제 백호가 찾았던 김녕리에는 다른 동네처럼 해안선 따라 자연마을이 많고, 개것이마다 톳이 자라고 있으며, 가끔 오래된 초가집도 만날 수 있는 정겨운 올레이다.

김녕리 남흘동 북동쪽 한수동 지나 용두동에서 출발하는 제주올레 20코스에서 봉지동에 이르는 올레는,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우잣담이 처마 선을 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바다와 인접한 곳이라 매서운 칼바람을 막아서기 위함이다. ‘용머리알, 너벅빌레지나면 댓섭이깍인데, 빌레 모양새가 대나무 잎과 비슷하여 불린 지명이다.

 

봉지동 농가(사진=윤봉택 제공)
봉지동 농가(사진=윤봉택 제공)

 

청굴물(사진=윤봉택 제공)
청굴물(사진=윤봉택 제공)

이 봉지동 올레에 전형적인 초가집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침 집주인 친형(한상운)의 허락을 받아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아버지 대에 지었다는 안거래에는 지금도 살레, 고팡, 정지, 굴묵, 안방, 뒷방 등이 오고생이 남아 있어 문화재급이었다. 이어지는 청수동에는 지명 유래가 된 청굴물이 있는데, 김녕리의 많은 용천수 중에 물이 차가워 병을 치료하는데 으뜸이라고 전한다.

 

김녕 도대불(사진=윤봉택 제공)
김녕 도대불(사진=윤봉택 제공)

세기알포구 닿기 전 개대멩이 바위에는 1915년에 세워진 도대불이 있다. 처음에는 사각형이었는데, 1964년 복구하면서 원통형으로 되었다. 포구 지나면 김녕 성세기해변 백사장이다. 동성동 건너 지픈개, 너운립개해안선을 지나면, 갯대추, 황근 자생지이다. 해안선 따라 닿아진 성담 환해장성은 물결처럼 끊어질 듯 월정리 해안까지 이어진다.

 

성세기 백사장(사진=윤봉택 제공)
성세기 백사장(사진=윤봉택 제공)

김녕과 월정리 경계 하녀코지를 지나 남동쪽으로 가면, 월정리 연듸망이다. 이곳에서 직선거리 서남쪽 380m 지점에 세계자연유산 비공개 당처물동굴과 그곳에서 남서쪽 1km 지점에 용천동굴이 있는데, ‘무주개라고 부르는 세계자연유산 마을 월정리이다.

모살가름, 수둘목에서 동쪽으로 내리면, 월정리포구 배롱개, 새물개, 몰물개가 마치 부채를 펼치듯 모래 해변을 빚어낸다. 그 백사장 중심에는 중샘잇개가 물결 이랑을 가르고, 그 건너에는 한모살지나 썩은빌레, 지픈개가 마주하며 물살을 밀어내고 있다.

어등개라 부르는 행원리 지경으로 들어서면 듬벵이물올레이다. ‘금산목을 지나 석쉐왓올레 입구에는, 마을 돌담이 수런거리며 나그네를 반기고, ‘빌렛기, 조랑개를 지나면, 중간 스탬프 간세가 있는 행원리 포구 한개 어등포이다.

 

어등포(사진=윤봉택 제공)
어등포(사진=윤봉택 제공)

어등포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당쟁에 휘말려 폐위된 광해군이 1637616일 도착하여 1박 한 포구이다. 광해군은 다음날 제주목 안으로 옮겨져 1641. 7. 1. 돌아가실 때까지 4년 동안 유배되었다.

한개 좀녜불턱을 지나 중특굴개를 넘으면, ‘지 드리는 동산남서쪽, ‘남당동산바로 북쪽에 합동 신당인 남당이 있다. ‘안소, 밧소를 지나 마을 안 사농물에 이르면, 퐁낭 쉼터가 있어, 이곳에서 마을 어르신을 만나 옛 말씀을 듣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암반지대 속곶질올레이며, 행원천을 사이에 두고 대매기혹, 돌동산이 물마루처럼 이어진다.

 

좌가연대(사진=윤봉택 제공)
좌가연대(사진=윤봉택 제공)

 

헹기왓질지나 남동으로 더 가면, ‘궤ᄆᆞ을이라 부르는 한동리 지역 좌가장 동산에 좌가연대가 있다. 이 연대는 일반 연대와는 달리 내외부 구조가 다른 게 특징이다. 대부분 제주도 내 연대는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내부 구조가 단조로운데, 이곳 연대는 사각형의 모서리를 돌아간담으로 마감하여 모를 세우지 않았으며, 내부의 이중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동쪽으로 입두연대, 서쪽으로는 무주연대와 교신하였다. 해안가 조픈모살, 광대못을 지나 계룡동 올레로 나가면, ‘항고지못사거리에서 쉐죽은밧질로 연결되는 쳉벵질올레이다.

벵듸라 부르는 평대리 대수하동 엽난여를 지나 쉰모살개, 감수골건너 15km 지점 수리왓을 지나면, 중동 불림모살길에서 진동산길 지나 갯머리길 까지 진 올레가 이어지는데, 그 끝에 평대 갓머릿개와 세화포구가 마주 보고 있다.

고는곶이라 하는 세화리의 중머들코지, 민속오일장, 우뭇개, 모사랑개, 조개왓, 촌물통코지를 차례로 지나, ‘통거리통항동에 하나 남은 초가집을 바라보며 가다보면, 바로 남쪽에 제주해녀박물관과 제주올레 20코스 종점, 21코스 안내소에서 간세가 기다린다.

20코스 종점(사진=윤봉택 제공)
20코스 종점(사진=윤봉택 제공)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