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담앤북스)
서울에 있지만 제주도에 없는 것 중 하나가 대형서점이다. 그런데 책방지기들의 개성과 감각이 각양각색 가미된 마을 책방이 많아지는 추세다.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에 빠져 마을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책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는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되신 고봉선 시인이 〈제주의 소리〉에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라는 연재 기사에 소개된 38곳의 책방 중 특별한 책방 30곳을 소개한 책이다. 책방 지기들이 제주도에 오게 된 사연, 제주도에 책방을 준비하는 과정, 책방을 연 후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서귀포시를 지나 다시 제주시로 이어지는 책방길을 3부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1부는 「제주시: 제주국제공항에서 시작하는 책방 기행」으로 시작된다. 공항을 중심으로 제주 서북권에 위치한 책방들을 소개한다. 2부는 「서귀포시: 산방산 품에 안긴 책방들」에서는 서귀포에 위치한 마을책방 9곳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마지막 3부「제주시: 우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공항으로」에서는 우도에서 다시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책방을 소개한다.
30여 곳의 특색 있는 책 방 중에서도 내 눈길을 끄는 책방 두 곳이 있다.
첫 번째 책방인 ‘어떤바람’은 제주에 연고가 없는 부부가 책방을 비롯한 서점 하나 없는 서귀포 사계리에 차린 책방이다. 책방지기가 읽고 싶거나 읽었던 책으로 채워졌다는 흥미로운 큐레이션으로 입소문이 났다. 유니크한 분위기를 풍겨내 발길을 사로잡는 책방이다.
책방 문을 열고 며칠 안 됐을 때다. 책방 맞은편에서 무언가를 유심히 살피듯 목을 빼며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70대 정도의 그 할아버지는 휘적휘적 길을 건너더니 책방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는 드르륵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여기가 뭐 하는 데냐고, 책을 파는 데냐고 물었다. 마을에 책방이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세희 씨가 서점이라고 대답하자, “서점? 책을 파는 곳이라고?”이라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이야, 우리 사계리에 서점이 생기다니! 이런 역사적인 일이 있을 수 있나.” 하시면서 할아버지는 껄껄껄 웃으셨다.
교사 생활하다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오셨다는 할아버지는 마을에 책방이 생겼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부부에게 오로오래 있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기념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님 관련 책을 한 권 사가셨다. - P170 중에서
제주도 마을 곳곳을 살펴보면 책방(서점)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보통은 책을 사려면 시내로 나가거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마을에 책방이 생겼다니 고향으로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왜 놀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책방인 서귀포시 위미마을 큰길가에 자리한 ‘북타임’은 ‘책을 고르고, 책을 읽고, 책에 빠져들’, 그래서 오로지 ‘책에 집중할 시간’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의 그림책 전문 책방이다.
책방지기 주인장이 나고 자란 집을 개조하여 만든 책방은 부모님이 지내시던 방에는 제주도 관련 책들이, 그가 고등학생 시절 잠시 방으로 쓰기도 했던 외양간은 어린이 책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이곳만이 주던 편안하고 따뜻함에 매료되어 서귀포 시내에 자리했을 때부터 한 번씩 찾아가곤 하는 책방이다.
노인들은 무궁무진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걸 채록하여 지의 문화를 간직해야 한다. 이런 일은 지역 사람만이 가능하다. 물론 외지인이라고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노인들은 지역 사람들에겐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해 준다.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이웃이기에 형성할 수 있는 공감대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엊그제 보이던 노인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고향에 와서 보니 이쪽 분야에 관심도 있는 친구들도 꽤 있다. 이들과 힘을 모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 P263 중에서
특히나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을 안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매달 마지막 주에 동네 삼춘들의 이야기 마당이 펼쳐지는 곳이자 채록된 생생한 이야기를 되살려 회차 별로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삼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할 텐데, 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조용히 책을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 독서와 사색의 공간을 내어 주는 예쁘고 편안한 서귀포와 제주시의 책방에서 사유와 시간이 멈춘 공간이 주는 행복함에 젖어드는 하루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정리 허지선 사서출신 시민 서평가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고봉선 저/제주의소리 편/272쪽/담앤북스/2만원/2022년 10월 20일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