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 (15)_오인순 수필가

오인순 수필가
오인순 수필가

색이 집 안으로 흐른다. 푸른 하늘빛, 흰색 구름 조각들과 그 아래 펼쳐진 짙은 녹색의 삼나무들. 드넓은 허공을 채색하며 꽃의 향기에 젖어 스며들고 있다.

지난해 분양받은 알로에베라에 꽃망울이 맺혔다. 학처럼 길쭉한 몸매를 갖춘 푸른 꽃대가 물오른 잎사귀를 비집고 점점 솟아오르더니 꽃을 피웠다. 아래쪽부터 위로 올라가며 피더니 노르스름하게 핀 모습이 바나나가 달린 듯하다. 잠시 그에게로 눈을 맞추니 지나온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꽃을 피우려고 태의 입덧과 진통을 흙 자궁에서 참아내며 뿌리 탯줄로 잉태기 씨앗을 품고 있었나 보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겨우내 움츠렸던 땅속은 생명의 기운으로 꿈틀거린다. 어깨를 펴려고 긴 호흡을 쏟아내며 잠든 사람의 숨결을 깨우듯 서서히 몸을 열고 있다. 그늘진 마당은 싱그러운 흙 내음으로 코끝을 간질인다. 정지화면처럼 스러졌던 잡초에도 광합성이 일어나고 있다. 마을 담벼락 너머 보리밭이 바람에 일렁이며 봄의 색깔로 넘실거린다.

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과 보리밭을 밟던 장면이 지나간다. 겨울 끝자락의 꽃샘바람은 여린 싹들에게 덮친 고통으로 물러설 수 없는 시련이었다. 언 땅을 뚫고 움튼 보리 싹을 우리는 밟고 또 밟았다. 보리밭은 물결치듯 도미노처럼 쓰러졌지만 푸른 보리로 눈부시게 키워냈다. 기다림 끝에 피워 낼 황금 보리를 그려보며 가곡 <보리밭> 을 부르고 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색의 인문학에서 초록이 주는 감성의 양면성을 읽고 놀라웠다. 초록은 자연을 드러내고, 평화와 희망을 주는 색인 줄만 알았다. 불안정하고 악령의 색이었다니 놀라웠다. 시대에 따라 혹은 문화적으로 다를 수 있겠지만 한때 서구에서는 초록색을 경멸했다. 파랑과 노랑이 혼합된 중간색인 초록. 순수하지도 불순하지도 않은 불안정한 색이어서 화가 몬드리안도 작품 활동에서 초록색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두려움과 불신을 의미해 하인과 광대들만이 입었던 색으로 냉대 받았다니 아이러니하다.

초록이 부는 바람은 거세다. 그것은 시공을 넘나들고 있다. 녹색 교실, 신호등의 초록 불. 길거리의 휴지통까지 초록으로 칠하고 있다. 행운의 상징인 클로버 배지도 초록이 아닌가. 속내를 감추고 정직한 색이 아니어도 혼란스럽고 후미진 곳곳에모두 초록, 초록을 외치는 세상에 서 있다.

자연 속의 초록은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새순, 새싹의 초록만큼 첫사랑처럼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에 취해 시내에서 떨어진 명도암으로 이사를 했다. 햇빛이 쏟아지는 텃밭이 있고, 사계절 푸르름에 둘러싸인 이곳은 초록으로 출렁거린다. 나는 때때로 이 색의 물결에 푹 빠지고 만다.

따스한 날이면 나는 절물자연휴양림의 너나들이길을 걷고, 텃밭의 초록을 매만지며 비움을 배워간다. 초록이 사그라드는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갓 돋아나는 잡초 하나에도 애정이 간다. 세월을 거꾸로 달리는 마차를 타고 싶은 마음에 울창한 숲을 걷고 푸른나물로 식탁을 차린다.

흰 눈을 뒤집고 파르르 떨며 일어선 냉이와 달래, 시금치 이파리에 바스락 소리가 나며 초록 바람이 인다. 식탁은 푸른 텃밭이 된다. 냉잇국, 달래무침, 시금치나물은 나의 거친 손마디에 담긴 정성의 꽃을 피운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초록의 전류가 혈액을 타고 흐른다. 입 안에 넣으니 초록의 맛과 향이 뇌까지 전해진다.

음양오행의 색깔에 따른 오미五味가 유희하며 몸 전체를 훑는다. 나물의 향기와 쌉싸름한 맛을 새콤달콤하게 무쳐 밥상에 올린다. 한기로 움츠렸던 간의 피로가 달아나는 듯하다.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초록은 청춘의 색으로 다가온다. 마을에서 본 초록을 흑고래처럼 잇달아 삼킨다. 색은 자연에게 신이 내린 의상이며, 죽음은 영혼의 의상을 벗어버리는 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초록의 의상을 벗어 던지는 날까지 젊음의 색을 향유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초록 지붕 아래에서 초록빛 매생이국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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