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는 상냥하고 부모님께는 다정다감했다. 어려운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일에 익숙했기에 상담사가 될 꿈을 꾸는 아이였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자기 일은 스스로 챙기는 아이였다.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청소년이라, 친구나 선생님에게 늘 인정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할 생각에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보냈다. 예쁜 교복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중학교 공부를 생각하면 긴장도 되는 날이었다. 중학교 입학 전이라 시간이 많았지만,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2022년 2월 9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딸이 학원을 간대서 부모는 자동차로 데려다 준다고 했고, 딸은 그걸 마다했다. 중학교를 걸어 다니려면 길에 익숙해야 한다며, 극구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아버지는 딸을 데리러 가려 했다. 그런데 딸은 전화 통화에서 “집에 거의 다 왔다. 이 길만 건너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길을 채 건너지 못했다. 처음 어린 청소년을 친 자동차 운전자는 사고 뒷수습도 하지 않고 달아나버렸고, 뒤에 오는 차가 다시 넘어진 아이를 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대원이 심폐소생술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조한나 양의 얘기다.

경찰이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운전자 두 명을 붙잡아 구속했고, 지리한 조사와 재판이 이어졌다. 부모는 몇 날 며칠을 울며 지냈다.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딸이 사고를 당하는 상황을 담은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보며 진상을 찾으려 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 첫 번째 자동차 운전자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두 번째 자동차 운전자는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2년 형이었는데, 1년 7개월로 감형됐다.

한나 가족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사람들이 부모와 슬픔을 나눴다. 한나의 친구와 부모의 친구는 지난 1년 동안 서귀포 여러 곳을 누비며 교통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나섰다. 교통 여건이 좋지 않은 곳에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설치하자고 했고, 운전자들에게는 주의운전을 당부했다.

지난 9일에는 한나 사고 1주기를 맞아, 40여 명이 모여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걸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을 한나를 기억하고 불행한 사고를 방지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후에도 한나를 기억하는 일을, 사고를 예방하는 일을 꾸준히 펼치겠다고 했다.

2월, 차가운 바람이 지나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그 봄의 입구에서 채 꽃을 피워보지 못한 어린 생명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이후 1년, 우리사회는 한나와 그 가족의 슬픔을 헤아리는 일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나 되물을 필요가 있다.

위험한 교통환경을 개선하고, 보행자와 교통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는다면 미안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나 가족과 이웃의 호소에 이제라도 사회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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