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 이야기 (2)

< 제주도 오름 (1)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4. 제주인에게 오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오름은 제주인의 삶의 터전이다.

시오름 숯가마터 (사진=한천민 소장)
노리손이오름(사진=한천민 소장)

 

제주인들은 예로부터 오름과 직결된 삶을 살아왔다.

오름 기슭에서 태어나고, 오름과 함께 생활하였으며, 죽어서는 오름 기슭에 묻히곤 했다. 또한 오름에서 먹거리를 채취하고, 오름에서 땔감을 구했으며, 오름에 있는 샘에서 식수를 구하는 등 오름에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상당히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름과 뗕래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서 묻히곤 했던 묘의 모양이 오름을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름 탐방을 하다 보면 몇몇 오름에는 숯가마터가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오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구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오름은 사냥터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주에는 맹수는 없지만, 예부터 노루와 오소리, 토끼, 꿩 등 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오름과 주변의 숲에서 사냥을 하였다. 오름의 사냥터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흔적이 몇몇 오름의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리손이오름은 노리(노루)를 쏘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며, 쌀손장오리는 화살을 쏘았다는 뜻의 이름이다. 그 밖에도 중산간 이상의 오름과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는 사농바지와 사농밧이란 말과 관련 지명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사농바지는 사냥꾼의 제주말이고 사농밧은 사냥터를 이르는 말이다.

오름은 소와 말을 키우던 좋은 목장이었다. 오름과 오름 기슭의 풀밭에는 좋은 목초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산간 지역 오름들은 목장으로, 방목지로 이용되어 왔고, 지금도 여러 오름들 중에는 목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그리고 오름의 이름들 중에는 방목과 관련이 있는 이름을 가진 오름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교래리 지경 산굼부리 동쪽편에 까끄레기오름이 있다. 까끄레기라는 이름은 소나 말을 가꾸러 다닌다. 소와 말을 보살핀다는 뜻을 가진 제주어고꾸다에서 파생된 고꾸레기가 오름의 이름으로 변형되어 까끄레기오름으로 굳어진 듯하다. 이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이 오름 주변의 넓은 들판에 소와 말을 방목해놓고 민둥오름이었던 이 오름 위에 올라 한 바퀴 돌면서 소와 말을 살펴보았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오름에는 역사의 아픔과 애환이 숨어있다.

제주섬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본토와 중국, 일본 등 세 나라가 교차하는 바다 한가운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세 나라가 바다를 통한 해상교역을 할 때에는 중간 기착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해상교역 시에는 거의 대부분 제주섬을 거쳐서 교역이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러다보니 중국이나 일본 해적들(왜구)이 침입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제주섬에는 고려시대 말엽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는 환해장성의 흔적이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이렇게 외적들의 침략이 잦았기 때문에 조선시대 중엽까지만 해도 제주의 마을들은 왜구의 침략에 취약한 해안 지역보다는 해안지역에서 약간 먼 중산간 지역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제주의 오름들 중에는 바다를 통한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이를 살피고 신속하게 알리기 위하여 봉수대가 설치된 곳들이 많이 있었으며, 이들 봉수대들은 바닷가 언덕에 설치되어 있는 연대(煙臺)와 다른 오름에 설치되어 있는 봉수대들과의 사이에서 긴밀한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름의 이름들 중에 ‘~()’이라는 이름이 있는 오름은 거의 대부분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던 오름으로 생각하면 된다.

제주 사람들은 외적이 섬으로 들어와서 노략질을 할 때에는 오름으로 들어가서 숨거나 오름의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를 하곤 했다고 한다.

오름에는 일제강점기 때와 건국 초기 4.3사건 때의 애환이 숨어있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일본은 제주섬을 해군과 공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군사기지화 했으며, 미국 등 연합군이 반격이 시작되자,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하여 수많은 오름에 진지동굴을 구축하였다. 제주 사람들은 일본군의 강요에 의하여 끌려 나와서 진지동굴을 구축하는 작업에 동원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인들이 희생되기도 하였다.

해방이 되고나서는 194843일을 기점으로 발발한 4.3사건에도 오름은 아픔의 역사를 안고 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와중에,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정든 고향 마을이 불에 타서 없어지는 와중에 사람들은 살 길을 찾기 위해 오름으로 들어가서 숨어 살기도 했고, 오름 기슭에 있는 동굴 속에 숨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숨어 살고 있던 현장이 탄로 나서 몰살을 당한 기록들과 몰살현장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남아있다.

 

오름에는 전설이 살아있다.

오름은 제주인들의 삶과 함께 존재해 왔기 때문에 오름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이 남아있다.

오름들 중에는 제주섬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과 관련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오름들이 있다. 설문대할망이 낳은 오백 명의 아들이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오백장군, 설문대할망이 앉았던 곳이 움푹 패어서 생겼다고 하는 고근산의 굼부리(분화구), 엄청나게 키가 큰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하는 물장오리.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에 한 발을 걸치고, 일출봉에 다른 발을 걸쳐서 오줌을 누었는데, 그 힘으로 땅이 파여서 우도라는 섬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설문대 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흘린 것들이 곳곳에 오름이 되었다는 등등…….

산방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옛날 어느 사냥꾼이 사슴을 잡으러 한라산으로 갔다가 흰 사슴을 발견하고 화살을 쏘았는데, 그만 빗나가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쏘고 말았다고 한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던진 것이 서쪽 바닷가 근처에 떨어져서 산방산이 되었다고 하고, 봉우리가 뽑혀버린 부분이 움푹 패여서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백록담(白鹿潭)은 그런 전설로 인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산방산 아래의 용머리는 세계를 지배할 왕이 태어날 지세를 가지고 있는 제주의 지세를 끊어버리기 위해 중국에서 파견되었다고 하는 고종달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오름이다. 용머리의 중간에 있는 깊은 절리(節理)들은 고종달이 끊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성산일출봉, 물영아리, 수월봉, 비양봉, 각시바위, 토산봉, 거슨새미 등등 거의 모든 오름에는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봐도 틀림없을 것이다.

 

5. 오름의 가치

오름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름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실로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오름의 가치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칼바람을 막아주어 주변의 거주지와 농경지의 가치를 높여준다.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임으로써 대기 정화의 기능을 한다.

비가 많이 올 경우 물이 토양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해줌으로써 토양 침식에 의한 자연재해 예방에 큰 몫을 한다.

화산의 원지형을 잘 보존하고 있고, 화산 활동과 관련된 연구를 하도록 하는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제주의 경관적 가치를 높여준다.

제주인의 심성에 영향을 끼친다.

식물, 역사, 문화 인문, 교육적 가치와 매우 높은 생태 관광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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