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16)_고혜자

고혜자 수필가
고혜자 수필가

공공근로를 신청하기 위해 딸이 왔다. 서류 심사 전형이라서 자신이 떨어질 것 같다며 의기소침해 있다. 소득분위 기준에서 차상위에서 밀려날 것이라며 걱정했다. 작년에는 십 개월을 청년 아르바이트직으로 마감했다. 힘들었지만 책을 좋아해서 사서 보조직을 기쁘게 해냈다. 다시 그곳에 근로 지원 신청서를 내려 한다.

서류를 내기 위해서 같이 공공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딸은 자신의 자필 사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렸다. 마치 비뚤어진 글씨 때문에 부정 탈 것 같은 심정이다. 요즘 누가 글씨체를 보니 하며 어설픈 위로를 한마디 해주었다. 좁쌀 방울보다 조금 크게 써낸 서류 속의 글자들, 간절한 염원을 담아 꾹꾹 눌러쓴 희망들을 보며 멍해진 느낌이다.

엄마 왜 내가 신청서를 내는데 세대 구성원의 이름을 모두 적고 사인을 해야 하는 거지? ”

갑자기 딸이 물어왔다.

, 그 이유는 온 가족의 자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야.”

난 덤덤하게 말했다.

그곳에서 오 개월 동안 다시 일했으면 좋겠는데 은행권에서 근무하는 오빠 때문에 안될 것 같아.”

걱정하지 말아, 우리는 가난하잖아!”

크게 확신하듯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가난한 게 당당하고 천국의 문을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가진 사람처럼. 스스로의 표현에 웃음이 났다. 딸은 혼자 뒷좌석에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삶이란 삶은 계란이니까.”

난 그 말에 왜 하필이면 날계란이 아니고 삶은 계란이냐며 한참을 웃었다. 딸도 같이 따라 웃었다. 날계란이면 절반은 병아리가 될 수 있는데 삶은 계란은 불가능에 대한 피력이 아니냐고 했다. 비참한 상황에 관한 비유라 하며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딸도 따라 소리 내어 웃었다. 차 안 분위기는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가볍고 잔잔한 즐거움이 흘렀다. 도서관 도착하기 2분 전이다. 말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그건 너의 어록 중에 하나냐고 물었다. 딸은 삶은 계란은 인터넷 상에서 유명한 짤 이라고 말한다. 사실 난 삶은 계란을 무척 좋아한다. 유일하게 편의점에서 사는 품목 중 세 개안에 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삶은 계란이 일 순위이다. 서민들의 애용하는 단백질 식품 일 순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은 어차피 삶은 계란이란 딸의 표현에 철렁거리는 맘을 웃음으로 응했지만, 내면에선 우울함이 차올랐다.

나의 청년 시절에는 교차로 오일장 구인란을 보면 꽤 다양하게 많았다. 커피숍 식당 미용실 아르바이트, 보조간호조무사, 영어 강사직, 학습지 교사 등 단순 아르바이트에서 전문직까지 다양했고 고를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최근 코로나 오기 5년 전부터 취업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살기가 힘들어지겠다는 느낌에 암울했다. 경기의 흐름을 읽으려고 매번 오일장을 펴들고 구직, 구인란을 들여다보며 직업군들을 훑어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구인란 부분의 매 수가 한 장, 두 장으로 줄어들고 부동산 매매만 넘쳐나는 걸 보았다. 두 장에 담겨있는 구직들은 단란주점, 식당 보조 아르바이트만 많은 것을 보며 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론 생활 정보 주간지를 잡지 않았다.

요즘은 더욱더 살기가 녹록지 않다. 특히 청년 실업은 사회 구조망에 있어서 위험한 수위까지 닿아 있다. 코로나 여파로 사회 전반적으로 더 위축되어 있다. 청년들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발전이 퇴보하는 역풍을 맞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고 있다.

그래도 딸아! 절반의 희망을 품은 날계란이 되어 꿈틀거리며 천천히 인내를 가지고 나아가렴. 알 수 없는 너의 미래가 궁금도 하겠지. 사주는 필요 없단다.

삶은 계란이 아니고 용감한 날계란이길 항상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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