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53]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언젠가 친하게 지내던 여자 후배가 찾아와서 음악을 전공한 후배들이 합창을 하고 싶어 하는데 여성합창단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였다. 갑자기 제안한 것이라 며칠 고민을 해보자고 하고 생각할 시간을 조금 가졌다. 사실 그때는 미국 유학에서 잠시 돌아왔다 가족을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게 잘 진행이 되지 않았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터였다. 물론 모 대학에서 제안이 있어 강의하던 시기였기도 하지만, 선뜻 결정할 순 없었다. 그래도 그 후배의 제안을 뿌리치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유학 관련해서 당장 정확하게 결정된 것도 없고 해서 대학에서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여성합창단을 창단하였다. 그게 며칠 전 연주회를 한 제주체임버코랄이다. 벌써 창단한 지 18년 정도 된 것 같다. 그 후배는 지금 같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창단 단원 몇 분은 아직도 같이하고 있다. 참 귀한 분들이다.

2019년 14회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멈췄다가 며칠 전 15회 연주회를 개최했으니 3년 만이다. 코로나 공백 기간이다. 그 사이에 단원이 반으로 줄었다. 합창단 명칭에서 보듯 체임버코랄이라 보통은 20여 명이 활동했었다. 하지만 이번 연주에는 13명만이 무대에 올랐다. 원래 15명이 오를 예정이었는데 얼마 전 불가피한 일이 생겨 2명이 못 오르게 되었다.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전통을 지키려 무던히 애를 썼다. 자연스러운 두성 발성과 프레이즈 등 높은 수준의 음악을 유지하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우리 체임버코랄 단원들은 순수하게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음악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성취해 내려는 의지와 집중력이 더 강해진다. 지휘자로서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연주한 클라리넷과의 협연 무대를 보면 그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과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클라리넷과의 호흡을 자연스러운 공명과 조화로움으로 절묘하게 맞추어내는 집중력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이어진 소프라노 솔로의 독일 가곡 ‘헌정’과 우리 가곡 ‘꽃구름 속에’ 연주는 가장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마지막 무대는 가곡과 팝아트, 가요풍으로 이어지는 소위, 작풍이 현대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이번 연주도 여느 때처럼 아름다운 소리와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관객들과 호흡하는 감동의 무대였다. 제주의 일반 합창단으로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높은 수준의 연주였음을 자부한다.

특히, 이번엔 평소와 좀 다르게 지휘자인 필자가 직접 무대마다 해설하며 진행하였다. 그래서인지 연주 후 관객으로서 감상하기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는 평이 많았다. 연주자와 관객 간의 거리감이 많이 줄었다는 평도 있었다. 그래서 다음엔 더 많은 준비를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겼다.

음악으로 같이하는 시간이 참 따뜻하다. 연습하는 시간도, 무대 위에서의 연주도,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는 것들 모두가 그렇다. 언제 어디서든 음악은 우리를 순수하게 만든다. 그 순수함이 서로에게 전달되면서 모두가 따뜻해지는 것 같다. 예전 필자가 지휘했던 합창단의 95세 된 어느 노신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다 죽는 게 소원이다.”라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는다는 게 낭만으로 느껴졌다. 음악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이 위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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