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팔순에 뜨개질하는 인생의 칼라
백세시대, 고령화 시대, 초고령화 시대라는 말이 흔해지면서 환갑, 칠순, 팔순잔치라는 말은 점차 사라지고 거창한 잔치도 안 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팔순을 맞아 평생 일만 하시다가 77세에 처음으로 뜨개질을 시작해 수세미 만드는 일에 푹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어머님의 뜨개작품으로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서홍동 흙담솔로 22에 있는 ‘갤러리 시인의 공방’에서 열리는 ‘팔순에 뜨개질하는 내 인생의 칼라’라는 홍매자 여사의 전시작품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을 비롯하여 온갖 밝은 색실로 정말 한땀한땀 정성들여 뜬 알록달록한 수세미 작품들이 어머님의 사랑과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해준다.
“아무것도 꿈꿀 수없는 나이라 여기는 팔순에 누구나 하찮게 여기는 수세미를 떠서 자식들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시며 너무나 행복해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식으로써 참 보기 좋았습니다. 시중에 나가 단돈 1~2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수세미지만 그런 경제적 가치를 떠나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기에 사용하면서도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며, 어머님의 행복함까지 그대로 느껴져 더욱 좋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칠순을 맞아 리마인드 웨딩과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금속공예가인 큰딸 정의영 씨는 누구보다 어머님이 기뻐하시고 뿌듯해하셔서 오히려 자녀들이 더 감동이었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한쪽에는 부모님 리마인드 웨딩 사진과 함께 오래된 가족 앨범에서 찾아낸 사진들로 어머님의 일생을 더듬어 볼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 더욱 눈길을 끈다.
강원도 묵호 태생인 홍매자 여사는 남편 따라 50년 전 제주로 건너와 네 자녀를 키우며 평생 슈퍼를 운영하느라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이 일만 하셨다고 한다.
“서귀포성당 근처 한자리에서 ‘대영슈퍼’라는 가게를 오랫동안 운영했는데 가게 특성상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더 바빠서 문을 닫을 수도 없었고, 아이들과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갈 수 없었죠. 슈퍼도 주인이 비워달라고 안 했으면 아직도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계기로 그만둘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젊었을 땐 뜨개질도 해보긴 했는데 가게 때문에 할 새도 없었고 안 하다 보니 다 까먹어서 새로 뜨려니 코 잡는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유튜브 보면서 하나하나 배웠는데 요새는 누구나 쓰는 수세미를 떠서 여기저기 선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삽니다. 알록달록한 색실로 예쁘게 수세미를 뜨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아픈 줄도 모릅니다. 뜨다가 어깨나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도 뜹니다.”
노인인구가 점차 많아지고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요즘 노인들의 복지와 행복추구, 건강과 일자리 창출 등에도 많은 관심을 두지만 어르신들의 사기진작과 위상 높이기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노인 한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르신들이 평생 살아오시면서 쌓아온 경험과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은 책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어르신들과 자녀, 손주, 일가친척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사회생활에서 손을 떼기 시작할 즈음 평생 하고 싶었지만 먹고사는 일에 바빠 못해본 일을 해본다든지,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는다든지, 본인들이 해왔던 일 중 잘하는 일로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을 해본다면 더욱 의미 있고 보람된 노년시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누구나 꿈꿀 수 없는 나이라 여기는 팔구십에도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일로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뜨개질로 누구보다 행복해하며 노년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고 계시는 홍매화 여사를 보며 노인들의 삶에 거창한 정책이나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음을 알았다.
3월말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 자녀들은 물론 많은 어르신도 다녀가 용기를 얻고 행복함을 맛보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