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오름 이야기(92)

옛 사람들은 오름의 이름을 붙일 때 사물이나 동물의 형태를 닮았다고 하여 그 사물이나 동물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이곤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오름의 어떤 모양을 보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할 때가 많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름의 모양을 가까이에서 눈으로 보거나 직접 오름에 다니면서 그 모양을 보고 이름을 지었을 텐데, 그렇게 오름과 함께 생활하며 오름의 이름을 짓곤 했던 옛 선인들의 모습과 생활에 감탄이 절로 나오곤 한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구두리오름의 경우에도 오름의 모양새가 개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구두리오름 전경(사진=한천민 소장)
구두리오름 전경(사진=한천민 소장)

각설하고……, 개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구두리라고 불리는 오름은 표선면 가시리 지경의 오름이다. 그러나 가시리 마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남조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조천읍 교래리 마을에서 더 가까운 오름이다. , 교래리 마을에 있는 한국 마사회 렛츠런팜 제주마 육성목장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오름의 북쪽 기슭은 제주시 조천읍 지경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름의 모양새가 개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개 ()와 머리 ()를 써서 구두리라고 하며, 한자로는 구두악(狗頭岳)’으로 쓴다. 다르게는 九斗里(구두리)’, 또는 狗乭岳(구돌악)’으로도 표기하기도 한다. 개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동쪽으로 굼부리가 벌어진 모양새가 개가 입을 벌리고 짖는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그런데 이번에 탐방을 하면서 이 오름의 북쪽 정상부에서 서쪽편으로 조금 내려간 곳에 1968년에 조성된 學生金公興用之墓(학생김공흥용지묘)’의 묘비를 살펴보았는데, 그 묘비에는 이 오름의 이름을 貴道里岳(귀도리악)’이라고 새겨놓은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아마도 구두리악이라는 이름에서 차용하여 붙인 이름으로 추측해본다.

구두리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첫째, 남조로 변의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입구 삼거리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100m 지점에 동쪽으로 이어지는 소로가 있으며, 소로를 따라 약 500m를 가면 구두리오름 남쪽의 탐방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른다.

둘째, 남조로 변의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입구 삼거리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700m지점(렛츠런팜 제주 마육성목장 입구 사거리에서부터는 남쪽으로 약 870m 지점)에 이르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 안내판이 있으며, 도로 아래로 제주마 육성목장 동쪽과 서쪽으로 통하는 굴다리가 있다. 굴다리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목장의 남쪽 도로를 약 710m 정도 직진하면 도로가 꺾이는 끝부분 근처에서 구두리오름 북쪽 탐방로가 시작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오름은 자체 높이가 117m가 되는 제법 높은 오름으로, 굼부리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각각 1개의 봉우리가 솟아있으며, 굼부리 서쪽으로 야트막한 능선이 두 봉우리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전 사면의 경사가 대체로 가파른 편이며, 두 봉우리 사이의 가운데는 굼부리가 형성되어 있다. 굼부리는 동쪽으로 터진 말굽형인데, 원래는 원형이었던 것이 한쪽이 침식되면서 말굽 모양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오름의 주변에는 세 개의 오름이 이웃하고 있다. 남쪽편에 가문이오름과 쳇망오름이 나란히 이어져 있고, 남조로 서쪽으로는 가문이오름과 마주하여 붉은오름이 서 있다.

구두리오름 동쪽, 서쪽, 북쪽은 매우 넓고 편평한 중산간 평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평지의 대부분이 목장이나 목장에 딸린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 오름의 북쪽과 서쪽 평지에는 한국마사회의 렛츠런팜제주의 목장이 있으며, 북쪽과 동쪽은 제동목장과 목초지가 조성되어 있다.

오름의 전 사면은 자연림이 무성하고, 일부에는 인공조림된 삼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자연림 사이사이에 해송과 측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또한 계절에 따라 각종 야생화가 피어나 계절마다 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남조로변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입구 맞은편의 버스 정류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임도로 들어섰다. 임도 입구에는 구두리오름과 가문이오름을 표시하는 작은 표지판에 세워져 있어서 이곳이 두 오름 탐방로 입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임도로 들어서서 약 500m를 걸어가니 구두리오름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그 뒤 울창한 숲 사이로 오솔길 탐방로가 나 있었다. 탐방로로 들어서니 바닥에는 제주조릿대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얼마쯤 가니 첫 번째 시내가 있었다. 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바위틈에는 얼마 전 내린 눈이 녹은 것인 듯 아주 깨끗하고 차가운 물이 고여 있었다. 시내를 건넌 지점에서부터는 울창한 삼나무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탐방로는 삼나무 숲 사이로 오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는데, 삼나무 군락 사이로 구두리오름이 바라보였다. 이윽고 삼나무 숲이 끝나고 다시 잡목림이 나타났는데, 삼나무 숲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제주조릿대가 삼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가득 덮여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삼나무 숲이 끝나고 잡목림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시 작은 시내가 나타났는데, 두 번째 시내를 지나 오른 기슭에 이르는 동안 큰 나무 아래 아직 잎이 돋지 아니한 상산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얼마 후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가지마다 새잎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한 사이사이로 산수국이 앙상한 가지를 떨며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산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지점을 지나 오름 남쪽 기슭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름 기슭에는 커다란 해송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잃지 않는 생달나무, 꽝꽝나무, 보리수나무들과 아직 잎이 돋지 않아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소나무 지대를 지나자 다시 오름 중턱에는 삼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서 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마도 산림녹화 시대에 심은 인공조림일 것이다. 삼나무 군락은 남쪽 봉우리 가까이 이르러서야 끝이 나고 남쪽 봉우리 주변에는 상산, 참꽃나무 등과 아직 잎이 돋지 아니한 여러 종의 낙엽수들이 앙상한 가지를 벌린 채 자라고 있었다.

남쪽 봉우리 위로 올라섰다. 이곳에는 국가지점번호 다나 2449 9122’라고 표시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남쪽 봉우리에서 이어서 굼부리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내려가서 굼부리 가운데 이르렀다. 굼부리 가운데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훤히 올려다보이는 약간 넓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삼나무 등 각종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고, 원형 굼부리였던 곳이 침식되어 말굽형으로 터진 부분이 동쪽편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구두리오름 정상부(사진=한천민 소장)
구두리오름 정상부(사진=한천민 소장)

 

굼부리 중심부를 지나서 다시 북쪽 봉우리 쪽을 향해 탐방로를 따라 올라갔다. 북쪽 봉우리 정상부에 올라섰다. 정상부에는 특별한 정상부를 알릴 만한 특별한 표지는 없으나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가지에 묶어 놓은 끈들이 남아 있었고 주변 지형으로 보아 이곳이 정상부임을 알 수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북쪽 편을 바라보니 제주마 육성 목장과 제동목장의 넓은 들판이 바라보였으며, 그 너머로 선흘 민오름, 부대오름, 부소오름, 산굼부리, 까끄레기오름, 꾀꼬리오름, 큰지그리, 돔베오름 등이 바라보였다.

오름 북쪽으로 내려가니 제주경주마목장 남쪽 가장자리에 이르렀는데, 목장과 오름 사이에 상잣성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목장 가장자리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남조로로 나갈 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보려고, 오름 북쪽 기슭의 상잣성 옆을 따라 동쪽편으로 걸어갔다. 숲을 헤치고 한참을 걸어가니 목장길이 나와서 그 길을 따라 오름 동쪽 기슭을 따라 걸어갔다. 목장의 초지를 끼고 있는 임도를 따라 걸어가노라니, 멀리에서 노루 가족이 올망 졸망 모여서 풀을 뜯고 있다가 걸어오는 내 기척을 보고는 한참 동안 나를 경계하듯 바라보더니 내가 점점 가까이 걸어가자 화들짝 튀어 달아난다. 평화롭게 풀을 뜯던 그들에게 내가 괜스레 미안해졌다.

 

위치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지경

굼부리 형태 : 말굽형(동쪽)

해발높이 517m, 자체높이 117m, 둘레 2,470m, 면적 45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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