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가순열 작가의『달팽이 침낭』(하움출판사, 2020)

책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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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회에 나왔던 대사다.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법조계에서 일을 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드라마가 방영된 뒤 자폐성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변화하고는 있는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자폐증 환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이번에 소개할 책 역시 자폐증을 앓은 거듭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다. 제주도로 이주한 동화작가 가순열 작가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출간한 『달팽이 침낭』이다.

소설의 주인공 거듭이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 미로를 만나 태동이를 낳고 아빠가 되면서 한걸음 씩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과 소통한다. 그 과정에서 미로와 사랑을 나누고 태동에게는 강한 부성애를 보여준다.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도 몸 어느 한 부분만 바라봐도 상대방의 표정을 다 읽어 내릴 수 있다. 거기다 상대방의 눈과 마주치기라도 하며 그 순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리는 덴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스캔 뜨듯이. 나에겐 그게 천형이자 다양한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끌어안고 나온 천형. 그래서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 나는 좀처럼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17~18 쪽에서

거듭이는 상대의 눈을 마주치면 속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췄다. 자신 같은 자폐아를 낳아 실망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속마음을 들여 본 뒤로 두 눈과 귀를 닫고 말문도 닫아 버렸다.

그런데 미로는 거듭이에게 재잘재잘 참새처럼 말을 이어가고 거듭이의 말을 경청해 준다. 거듭이와 미로는 서로에게 햇살과 같이 다정하고 따스한 존재다. 서로 내면의 아픔을 나누고 어루만져 주는 사이로 발전했고, 결국 사랑의 결실인 태동이를 갖게 된다.

“사실 달팽이 침낭은 아기 포대기다. 여러 마리 달팽이 그림이 그려져 있어, 내가 달팽이 침낭이라고 이름 지었다. … 왜 하필 달팽이 그림의 침낭이었을까?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자기만의 동굴 속에서 살라는 뜻이었을까? 여차하면 패각 속에 몸을 몰아넣으라는 의도가 숨어있었을까. 달팽이는 언제나 패각을 짊어지고 산다. 패각을 떼어 내면 죽고 만다. 달팽이에게 패각은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나에게 달팽이 침낭이 바로 그런 존재다.” - 50~51 쪽에서

거듭이는 어려서 달팽이 그림이 그려진 포대기 안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처음 느꼈을 것이다. 순간순간 움츠러들게 만드는 상황에서 마음 편히 쉴 곳이 필요했던 거듭이에게 달팽이 침낭은 마음의 안식처였다. 볼품없이 낡았지만 따스하고 숨기 편한 껍데기가 되어 거듭이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달팽이 침낭, 내가 슬플 때, 외로울 때, 나를 감싸며 위로해 준 친구, 내 수호신이 이제 내 곁을 영원히 떠났다. 나는 그렇게 달팽이 침낭과 이별했다. 19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동행한 나의 유일한 친구.” -171 쪽에서

이 달팽이 침낭에게 위로를 받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던 거듭이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달팽이 침낭을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내기로 했다. 자신은 비록 장애를 가진 연약한 존재일 수 있으나 부성애만큼은 누구 보다 단단해 보였다.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는 달팽이처럼 달팽이 침낭이 아니어도 자기 아들 태동이를 이고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울림이 컸던 대목이다.

앞만 보고 다니느라 하늘을 보거나 땅을 보는 일이 없어진 요즘, 땅에 사는 달팽이 한 마리를 보며 거듭이처럼 느리지만 꿋꿋하게 나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달팽이 침낭/가순열/176쪽/하움출판사/10,000원/2020년 07월 10일 출간

허지선 사서 출신 시민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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