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 문화센터 고기복 대표

고기복 대표
고기복 대표

한동훈 법무장관은 15일, 이민·이주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유럽 3개국 출장을 갔다 오며 체계적인 이민·이주정책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민청 준비 실무진들이 동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민행정에 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한 장관은 작년 5월 취임사에서도 이민청 설립을 검토하고 이민정책을 수준 높게 추진해나갈 체제를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한 장관은 단순 출입국 관리, 불법체류자 단속의 관점이 아니라 인구·노동·치안·인권·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 등을 고려한 국가 대계 차원에서 원칙을 세워 체계적으로 이민청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그런데 한 장관이 외국 출장 중이던 지난 12일, 이주노동자 20여 명이 예배 중이던 교회에 출동한 경찰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9명을 교회 안에서 수갑을 채워 단속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이 교회는 주로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모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찬양과 기도를 하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복 경찰관들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예배당 뒷자리에 있던 세 명의 신분 상태를 확인하고 수갑을 채운 상태로 예배하게 한 후, 경찰서로 끌고 갔다.

종교시설에 공권력이 진입한 사실만으로도 경악할 일인데 예배 시간에 정복경찰이 수갑을 들고 나타났다는 건 군사독재 시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 대상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법무부는 지난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법무부 주관 하에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 5개 부처가 참여하는 이 단속 기간에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법무부는 분명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

법무부는 합동단속을 발표하며 적법절차와 외국인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교회에서 예배 중인 이들을 체포 연행하는 것이 적법절차요, 인권보호인지 법무부는 답해야 한다. 국민 일자리 잠식 업종, 불법체류 외국인 상습 고용업체, 불법입국·취업 알선자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고 공언했는데, 종교시설 또한 이번 합동단속 집중 대상인지도 소명해야 한다.

종교시설 내 단속을 보면서 장관이 직접 나서서 이민청 설립을 준비하는 법무부는 해외 사례를 수집하면서 미국 사례는 왜 검토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미국은 2021년 이민 단속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이민자 체포와 추방 대상자 범위를 테러 용의자와 같은 국가 안보, 공공 안전 및 국경 보안에 위해를 가하는 대상에 한한다고 명문화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의료·종교·장애인시설, 푸트뱅크, 결혼식, 장례식, 놀이터, 탁아소 및 위탁 보호 시설과 같이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 퍼레이드, 시위현장 등에서는 체포 또는 기타 유형의 집행, 단속을 금지하고 있다.

공권력 남용으로 기본권과 관련된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지 않아야 하고, 기본권적 서비스 제공이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 없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인류애에 기초해야 한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다.

경찰이 예배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한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경기 이천·여주 지역에 ‘농번기에 외국인 단속이 웬 말이냐! 우리 농민들 다 죽는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120장이나 내걸렸다. 농민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함께 살아야 한다고 절규한다.

법무부는 지난 2007년에 미등록자들을 체포 연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인교회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하며 인권 침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