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나의 구린새끼 골목(한국문연, 2019)
시집을 읽고 싶은 봄날, 서귀포 출신의 김양희 시인이 고향인 서귀포에 대한 향수를 제주말로 담아낸 시집 『나의 구린새끼 골목』을 읽어봤다.
누구에게나 그립고 가끔 떠올리면 괜스레 눈물이 나고 먹먹해지는 장소가 있다. 특히나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타지에서 생활하면 더욱 그렇다. 30여 년 동안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은 현재는 이중섭거리가 된 구린새끼 골목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시집 페이지마다 구린새끼 골목에서 보낸 유년의 추억이 묻어난다.
시집은 제1부 튤립을 건네다, 제2부 회귀-나의 구린새끼 골목, 제3부 가장 아름다운 제주 말 열 개, 제4부 소리들 총 4부로 구성됐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할 때 밀려오는 향수를 투박하지만, 정감이 있는 제주말로 표현했다.
특히 2부에 수록된 표제시인 ‘나의 구린새끼 골목’은 8개의 각기 다른 제목으로 이어지는 연작 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이 구린새끼 골목은 서귀포 정방로 이중섭 거리 주변 샛길 골목들을 일컫는 말이다. 향토학자들은 ‘굴이 있는 샛길’로 연음화 과정을 거쳐 구린새끼가 되었을 거라 추정하는데, 정방동 책자에는 이수시설이 없을 당시 비가 오면 빗물과 오물이 넘쳐나 구린 샛길이라 했던 것이 발음 그대로 굳어졌다고 기록됐다. 나도 유년시절부터 최근까지도 종종 발걸음을 했던 골목길이다.
나의 구린새끼 골목에게, 기억은 시간이 끌고 가는 물이다 흘러가고 섞이고 휩쓸려 변질된다 해도 시간의 잘못은 아니듯, 몸통이 잘리고 겨우 꼬리만 남은 구린새끼 골목도 그러하다 내 기억의 잘못은 골목의 시간을 직시하지 않았다는 것. -회귀 : 나의 구린새끼 골목 중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떠오르는 추억이 시 안아 은은하게 스며들어져 있다. 시인과 내가 살아온 시간은 다르지만 시 속에 등장하는 배경들 그리고 구린새끼 골목에서의 아련한 추억이 맞물려 있다는 걸 느꼈다.
또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많이 변형돼 버린 서귀포의 골목골목을 볼 때면 유년의 추억이 사라지는 아쉬움과 함께 가슴 한편이 답답하고 먹먹함이 밀려온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 중 하나인 서귀극장, 시인도 나도 어릴 적 마른 목마름을 채워주었는데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생수개, 나의 여름날 물놀이 핫스팟 이었던 자구리 등으로 문득 눈을 감고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 여행 속에서 옛 구린새끼 골목을 걸으며 기억 속 어딘가 숨어있던 소중한 옛 추억을 떠올렸다.
옛 서귀포의 골목길 풍경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시인이 어린 시절 서귀포에서 간직했던 추억을 담은 이 시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구린새끼 골목/ 김양희/ 126쪽/ 한국문연/ 10,000원/ 2019년 12월 24일
허지선 사서 출신 시민 서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