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94)

감낭오름 전경(사진=한천민 소장)
감낭오름 전경(사진=한천민 소장)

 

오름들 중에는 그 오름이 모양새나 오름의 식생 등에 비추어 참 잘 어울리게 불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오름이 있는가 하면, 오름의 이름이 어떻게?’, 또는 ?’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아리송한 것들이 더러 있다. 남원읍 하례리 지경의 수악과 성판악 주차장 동쪽에 위치한 물오름은 물이 전혀 없는 오름인데도 물오름이라 불리고 있어서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오름이다.

그리고 오름의 식생과 관련하여 불리고 있는 오름 중에 안덕면 광평리 지경에는 동백나무가 전혀 없는데도 동백나무의 제주말인 돔박이로 불리고 있는 오름이 있고,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감낭오름의 경우에도 감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데도 감낭오름이라 불리고 있는 오름이다.

감낭오름은 안덕면 동광리 지경의 오름으로, 동광육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원물오름 동쪽에 원물오름의 형제처럼 붙어있는 오름이다.

감낭오름은 북동쪽 방향으로 터진 말굽형 굼부리와 새 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오름이다. 봉우리는 각각 동쪽과 서쪽,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쪽 봉우리는 크고 정상부 부분이 넓고 편평한 반면, 서쪽 봉우리는 작고 정상부 부분이 도도록하게 올라가 있다. 남쪽 봉우리는 동쪽과 서쪽 봉우리에 비해서 높이가 낮은 편이지만 봉우리 위가 편평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동쪽과 서쪽 봉우리 사이는 야트막한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름의 북동쪽에서 진입하는 탐방로가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서 원물오름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오름 기슭은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지, 오랜 옛날부터 근래에까지 묘지가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동쪽 봉우리 정상부와 서쪽 봉우리의 북동쪽, 서쪽 봉우리와 남쪽 봉우리 사이, 남쪽 봉우리 위 등에 수많은 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남쪽 기슭과 원물오름과 감남오름이 이어지는 남쪽 기슭에는 안덕충혼묘지와 여러 가족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 이 오름에 감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감나무의 제주어인 감낭에서 오름의 이름이 연유되어 감낭오름또는 감남오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오름에서 감나무를 한 그루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한자 표기로는 감나무를 표음화하여 감목악(柑木岳)’, 감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시(, )를 써서 시목악(柿木岳, 枾木岳)’이라 한다.

감낭오름을 찾아가려면, 첫째, 평화로가 산록남로(2산록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인 광평교차로의 광평교 다리 위에서 한림 방향으로 길을 시작하는 지점의 도로 남쪽편에 좁은 시멘트 길을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약 590m를 가면 감낭오름 북동쪽 기슭에 이르며, 이곳에서 감낭오름 북쪽편 기슭을 따라 들어가는 탐방로가 시작된다

둘째, 평화로가 산록남로(2산록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인 광평교차로의 광평교 다리가 있는 지점에서부터 서귀포와 모슬포 방향으로 평화로를 달리다가 약 800m 쯤에 동광 마을과 영어마을 방향으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동광1교차로표지판이 있으며, 이곳 도로변에서 오름 기슭의 산담을 두른 묘지 옆으로 들어가서 감낭오름 동쪽 봉우리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올라가는 데에는 차를 세워 둘 공간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 오름 남서쪽에는 평화로의 넓은 도로가 뻗어있는데, 평화로를 확장하면서 남서쪽 기슭 일부가 잘려 나갔다고 한다.

평화로는 조선시대에는 제주목에서 대정현까지 목사나 현감이 말이나 가마를 타고 지나다니는 길이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군이 제주도를 병참기지화 시키면서 전쟁 물자 및 무기 수송과 군사 이동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보수하여 군사용 도로로 사용하였던 도로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19812월부터 확장하기 시작하여 19862월에 확장을 끝냄으로써, 제주 시내에서 동광 마을 주변을 거쳐 중문관광단지와 모슬포까지 이어지는 고속화도로로 거듭나게 되었다. 근래에는 영어마을 쪽으로도 차량 소통이 많아지면서 평화로의 가치가 더욱 커졌고, 이와 더불어 인근의 동광 육거리는 명실상부하게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안덕충혼묘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동광로 도로를 따라 감낭오름 남서쪽 기슭에 이르러 산담을 두른 묘지 옆으로 들어가서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탐방로가 시작되는 지점 근처에 또 다른 묘가 있어서 들어가서 묘비를 살펴보았다. 이 묘는 1929년에 조성된 묘로 묘비에는 處士李公熙秀之墓(처사이공희수지묘)’라고 새겨져 있었으며, ‘七所場柿木岳南邊(칠소장시목악남변)’이라고 묘의 위치를 밝히고 있었다. 이로 보건대 이 오름을 시목악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묘가 조성된 일제강점기 훨씬 이전부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쪽 기슭에서부터 올라가는 길에 주변의 나무들을 살펴보니, 삼나무, 소나무, 가막살나무, 청미래덩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탐방로는 띠풀이 무성하였다.

정상부인 동쪽 봉우리에 올라서니, 정상부와 그 주변에는 산담을 두른 묘들이 몇 기 있었다. 그 중에 한 묘의 묘비를 살펴보니 1986년에 세워진 學生安公之墓(학생안공지묘)’, 이 묘비에는 柑南岳(감남악)’이라 새겨져 있음을 볼 때에 이는 감낭오름을 음차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였다.

정상부 주변은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아래에는 찔레와 청미래덩굴과 꾸지뽕나무 등 가시가 많은 나무와 덩굴들이 무성하여 가시를 피해 조심스럽게 헤치며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정상부의 남쪽 부분은 큰 나무가 없어서 주변의 경관들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하얀 눈을 덮은 한라산 정상부가 바라보였고, 그 아래 오백장군과 영실기암, 그리고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깊은 계곡이 바라보였으며, 사방으로 눈을 돌리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오름들을 모두 담아보니 새별오름, 북돌아진오름, 바리메, 대비오름, 돔박이, 고수치, 왕이메, 영아리, 돌오름, 녹하지악, 믜오름, 여진머리, 족은오름, 군뫼, 월라봉, 산방산, 밝은오름, 거린오름, 북오름, 광챙이오름, 모슬봉, 바굼지오름 등과, 감낭오름의 형님 격인 원물오름이 모두 시원하게 바라보였다. 그리고 남쪽 바다에는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가 모두 내려다보였다.

오름을 내려가서 북쪽 기슭의 탐방로를 따라 동쪽편으로 가서 어느 쌍묘의 묘비를 살펴보았다. 그 묘비는 訓長金公錫周 宜人原州邊氏之墓(훈장김공석주 의인원주변씨지묘)’1973년에 세워진 묘비였다. 그 묘비에는 七所場柿木岳(칠소장시목악)’이라고 오름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름 어딘가에 혹시 감나무가 있을까 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북동쪽 편 탐방로 쪽에서 올라오는 두 어른을 만났는데 이곳에서 산불 감시 일을 하는 분들인 것 같았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감낭오름이 왜 감나무도 없으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냐고 그 연유를 물어보니, 웃으면서 글쎄 자기네도 모른다고 하면서 예전에는 감나무가 많이 있어서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말 감나무가 한그루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예를 들어서 저쪽의 돔박이오름에는 또한 동백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데 돔박이오름이라 이름 붙었다고 하며 웃는다.

그분들과 헤어져 원물오름으로 올라가서 감낭오름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 안덕충혼묘지
쪽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내려왔다.

 

 

 

위치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지경

굼부리 형태 : 말굽형(북동쪽)

해발높이 439.8m, 자체높이 45m, 둘레 1,370m, 면적 11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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