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96)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가족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부모 자식 관계, 형제 관계, 자매 관계 등이 존재한다. 오름들 중에서도 이런 가족관계를 빗대어 이름을 짓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오름들이 따라비오름을 중심으로 하는 오름 가족 관계이다. 표선면 가시리 지경의 따라비오름과, 성읍리 지경의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 그리고 구좌읍 종달리 지경의 손지오름이 오름 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오름들이다.

유채꽃프라자에서 바라본 따라비오름 전경(사진=한천민 소장)
유채꽃프라자에서 바라본 따라비오름 전경(사진=한천민 소장)
정상부에서 바라본 굼부리 (사진=한천민 소장)
정상부에서 바라본 굼부리 (사진=한천민 소장)

따라비오름은 표선면 가시리 지경의 오름으로, 가시리 마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 오름으로는 오름 가족인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과, 큰사슴이, 족은사슴이, 번널오름, 병곳오름, 설오름 등이 멀고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따라비오름의 어원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오름을 뜻하는 것으로땅할아버지(땅할애비)’라는 뜻이 변형되어 따래비, 땅하래비라고 불리기도 하며, 오름 가족의 가장 격으로 땅애비’,‘땅아비에서 변형되어 따라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따라비오름 근처에는 어머니 오름을 뜻하는모지오름’, 큰아들을 뜻하는장자오름’, 작은아들은 뜻하는새끼오름이 있으며, 손자를 뜻하는손지오름은 멀리 떨어진 동쪽 용눈이오름 앞에 있는데, 멀리 유학 가 있다고 우스개 삼아 말하기도 한다.

다른 설로는 높다는 뜻을 가진 고구려 말의 다라(達乙)’와 산을 뜻하는 말인 ()’가 합쳐진 다라비가 경음화 되어 따라비로 전이되었다고 한다.

한자 표기로는 地祖岳(지조악)’, ‘地翁岳(지옹악)’, 혹은 따라비의 음을 그대로 따서 표기한 多羅非(다라비)’로 쓰고 있다.

따라비오름은 오름 마니아들만이 아니라 오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찾아서 올라갔으리만큼 워낙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오름이어서 탐방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찾아가는 길도 세 군데나 된다.

첫 번째는 가시리 마을에서 찾아가는 길이다. 가시리 마을 북쪽의 중산간동로와 원님로와 녹산로가 만나는 가시리 사거리에는 길 가운데에 큰 정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정자나무 앞에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약 60m 지점에 북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의 농로가 있으며, 이곳이 따라비오름 입구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농로를 따라 약 2.8 km를 가면 따라비오름 남쪽의 주차장에 이르며, 주차장 근처에서부터 오름 쪽으로 들어서면 탐방로가 시작된다.

둘째는 녹산로변의 큰사슴이오름(대록산) 남쪽의 유채꽃프라자 근처에서 따라비오름으로 향하는 쫄븐갑마장 길이 이어져 있으며,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따라비오름의 북쪽편에서부터 올라가는 탐방로가 이어져 있다.

세 번째는 녹산로의 조랑말체험공원 입구 행기머체에서 도로 건너편에 쫄븐갑마장길 입구가 있으며, 그 입구로 들어서서 쫄븐갑마장길을 따라 걸어가면 따라비오름 남서쪽 탐방로와 만나서 올라갈 수 있다.

따라비오름은 바라보이는 위치에 따라서 각각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남쪽에서 바라보면 동서로 길쭉하고 소나무들만이 잔뜩 자라고 있는 그저 평범한 오름으로 보이고, 북쪽에서 바라보면 나무가 거의 없이 풀밭으로만 이루어지고 여러 개의 굼부리가 움푹움푹 패인 신비한 모양의 오름으로 보인다. 또 서쪽의 녹산로변이나 번널오름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뒷부분의 머리카락만 남아있고 앞부분이 완전히 벗어진 대머리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의 모양새는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하고 북쪽편으로 올록볼록한 줄기가 약간 뻗어나가 있어서, 공중에서 내려다본 위성 지도에서 살펴보면 마치 사람의 심장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남쪽과 서쪽편 능선이 높고 북쪽편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지면서, 가운데 3개의 원형 굼부리가 있고 굼부리와 굼부리 사이를 가르는 능선들이 이어져 있다. 봉우리는 남쪽편의 정상부와 서쪽 북쪽편 등 굼부리를 감싸고 있는 세 개의 봉우리가 봉우리가 있으며, 북쪽편 봉우리 너머에는 작은 언덕같이 볼록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들이 세 개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여섯 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날, 따라비오름으로 향했다. 서성로를 달려 가시리 쪽으로 가는 길의 좌우에는 숲이 온통 푸르러지고 있었고, 아직 새잎을 달지 않던 겨울나무들도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새잎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따라비오름 남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름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탐방로로 들어서니 깨끗하게 깎인 풀밭 너머로 짙은 소나무 숲으로 가득 덮인 따라비오름이 올려다보였고, 탐방로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오름 남쪽 기슭을 따라 남서쪽 편으로 가서 올라가는 탐방로요, 다른 하나는 동쪽 기슭을 따라 북쪽편으로 간 다음 북쪽에서부터 올라가는 탐방로였다.

남서쪽에서부터 올라가기 위해 남쪽 기슭의 탐방로로 들어섰다. 탐방로는 정상부 서쪽 능선 가까이까지 거의 나무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탐방로 주변에는 소나무가 가득 우거져 있었고, 소나무 사이사이에 사스레피나무, 찔레, 청미래덩굴 등이 우거져 있었다.

서쪽 능선에 올라서면 비로소 사방 시야가 시원하게 터지며 정상부 봉우리와 그 아래 세 개의 원형 굼부리가 내려다보였고,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과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정상부에 올라서니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모든 전망이 시원하게 바라보였다. 남쪽으로는 설오름, 갑선이오름, 매오름, 도청오름, 토산봉, 북망산, 가세오름 등과 시원한 바다가 펼쳐져 보였으며, 서쪽으로는 구름이 살짝 끼어있는 한라산 정상부가 멀리 바라보였고, 물영아리, 여문영아리, 붉은오름 등이 바라보였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큰사슴이, 족은사슴이, 선흘 민오름, 부대오름, 부소오름, 거문오름, 새끼오름, 성불오름, 체오름, 안돌, 거슨새미, 송당 민오름, 비치미, 큰돌리미, 높은오름, 백약이, 거미오름, 좌보미, 모지오름, 영주산, 모구리 등 수많은 오름들이 멀고 가까이에서 올록볼록 솟아있는 모습들이 바라보였다.

정상부의 남쪽 능선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가득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정상부 주변을 비롯하여 북쪽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굼부리와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과 크고 작은 봉우리들에는 시야를 가릴 만한 큰 나무들은 자라지 않고 키 작은 소나무와 사스레피나무, 쥐똥나무 등의 키 작은 나무들과 청미래덩굴 등 덩굴들이 얽혀 있었으며, 띠풀과 억새들이 나무가 없는 공간을 차지하여 가득 덮여 있었다. 굼부리 안쪽에도 큰 나무들은 없고 작은 나무들과 덩굴식물들이 얽혀 있었고, 그 사이에 띠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정상부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다 굼부리 사이의 능선을 따라 북쪽 봉우리로 내려가는데, 동쪽편 굼부리 안에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어서 자라고 있는 곳이 있었다.

북쪽편으로 내려가다가 산담을 두른 두 기의 묘가 있어서 묘비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살펴본 묘는 1982년에 조성된 處士康公之墓(처사강공지묘)의 묘로, 이 묘의 묘비에는 表善面 加時境 地祖岳(표선면 가시경 지조악)’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두 번째 살펴본 묘는 宣畧將軍 行監牧官 留鄕座首 金公之墓(선략장군 행감목관 유향좌수 김공지묘)’로 휘()商俊(상준)이라는 분이었으며, 道光(도광) 30년에 돌아가셨고, 咸豐 元年(함풍 원년)에 비를 세웠다고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도광과 함풍이라는 연호를 검색해 보았더니 도광 30년은 청나라 8대 황제 선종 30(조선 철종 1)으로 서기 1850년이었으며, 함풍 원년은 청나라 9대 황제 문종 원년(조선 철종 2)으로 서기 1851년이었다. 이 묘비에는 地祖峯 北中麓(지조봉 북중록)’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조선의 독자 연호가 없이 청나라에 예속되어 事大(사대)하고 있었던 시절이어서 묘비에도 청나라의 연호를 쓴 것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였다.

묘비를 살펴보고 오름 동쪽 기슭의 탐방로를 따라 남쪽으로 돌아나오니 오름 아래 넓은 들판에 봄바람이 따뜻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위치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지경

굼부리 형태 : 복합형

해발높이 342m, 자체높이 107m, 둘레 2,633m, 면적 44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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