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97)

고사리 장마가 왔는지 이번 주 들어서 계속 비가 내리고, 비가 그쳤을 때도 하늘이 잔뜩 흐려 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이번 비로 식물들이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말랐던 땅이 충분히 젖어 들었고 앙상한 가지마다 새잎이 활짝 활짝 돋을 것이다. 집에서 나와 고근산 쪽을 바라보니 안개가 잔뜩 끼어 고근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일기 예보를 보니 낮에는 비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오름 탐방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안덕면 동광 마을로 향했다.

동광 마을 서쪽에 위치한 거린오름과 북오름을 탐방 하기 위해 거린오름 입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도착해 보니 하늘 바깥 둘레에는 검은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오름 위 하늘은 파란 하늘이 보이고 쾌청하였다.

동광마을에서 바라본 거린오름과 북오름(사진=한천민 소장)
동광마을에서 바라본 거린오름과 북오름(사진=한천민 소장)

거린오름과 북오름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위치한 오름으로, 동광리 마을 서쪽편에 남북으로 이웃하여 앉아 있는 오름이다.

두 오름은 서로 붙어 있는 오름이기 때문에 한 오름에 오르게 되면 이어서 다른 오름도 함께 오르는 것이 좋다.

거린오름이라는 이름은 오름의 모양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갈리다의 제주어 거리다에서 거리오름이라고도 하고 거리오름에서 변형되어거린오름으로 된 듯하다. 한자로 대역하여 丫岳(아악)’, ‘了岳(요악)’ 이라 하며, 걸인악(傑人岳), 거린악(巨隣岳), 거인악(巨人岳) 등은 모두 거린오름을 한자로 대역하면서 생겨난 표기로 볼 수 있다.

사실상 거린오름과 북오름은 원래 하나의 오름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지역 사람들이 거린오름과 북오름 사이의 굼부리를 중심으로 갈라서 남쪽의 낮은 봉우리 쪽을 거린오름이라 부르고, 북쪽의 높은 봉우리 쪽은 북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두 오름에 오르는 탐방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거린오름으로 오르는 탐방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광육거리에서 모슬포 방향으로 730m를 가면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목장 내 소로가 있으며, 소로를 따라 약 290m를 가면 북오름 탐방로 안내 표지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부터 탐방로가 시작된다.

둘째, 동광육거리에서 모슬포 방향으로 1.06km를 가면 거린오름 남쪽 기슭에 이르게 되며 거기서 역시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목장을 지나 올라가는 탐방로가 시작된다.

셋째, 동광육거리에서 모슬포 방향으로 1.5km를 진행하면 평화로와 합쳐지게 되고, 500m를 더 진행하면 동광육거리 기준 2km 지점에 서광2교차로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방향을 북쪽으로 꺾어서 약 950m를 올라가면 거린오름 서쪽 기슭에 이르게 되고,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부터 탐방로가 시작된다.

거린오름 남서쪽 탐방로에 이르니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출입구 2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묘지 지역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탐방로가 이어져 있었고 목책이 세워져 있는 곳을 넘어서 목장 지역의 넓은 탐방로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목책은 이 오름이 사유지인 관계로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므로 소와 말들이 묘지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거린오름은 다른 오름들과 달리 풀밭 지역에 억새나 띠풀이 전혀 없고 깨끗하게 잔디가 깔려 있었으며, 잔디 사이사이로 온갖 잡초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나무가 없는 부분은 잔디 깎기를 이용하여 일부러 깎아낸 것보다 더 깨끗하였다. 그리고 잔디가 아닌 부분에는 키가 그리 크지 않는 소나무들이 잔뜩 우거져 있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도중에 묘지 지역이 아닌 곳에 산담을 두른 오래 되어 보이는 묘가 있어서 묘비를 살펴보기 위해 들어갔다. 그런데 묘지에 가는잎할미꽃이 가득하게 피어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몇 컷을 카메라에 담았다. 요즘은 할미꽃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는데 이곳에서 만나니 참 반가웠다.

이 묘의 묘비는 1970년에 세운 通政大夫 金雲碩之墓(통정대부 김운석지묘)였는데, 묘를 조성한 곳의 이름이 東廣里 巨人岳(동광리 거인악)’이라고 새져져 있었다.

잔디 탐방로를 걸어 올라 능선 위에 올라서서 북쪽을 바라보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북오름의 정상부가 올려다보였고, 사방으로 눈을 돌리니 동쪽으로 여진머리, 족은오름, 녹하지오름, 모라이오름우보오름, 군뫼, 도래오름(월라봉), 산방산, 절울이(송악산), 그 앞으로 형제섬이 바라보였으며, 바로 가까운 곳에 광챙이오름이 마주 바라보였다.

거린오름 정상부 (사진=한천민 소장)
거린오름 정상부 (사진=한천민 소장)

 

정상부에 올랐다. 정상부 가운데 부분은 널찍한 잔디밭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풀밭에는 소똥과 말똥들이 잔뜩 있어서 발밑을 조심해서 다니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주변에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서 대부분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동쪽 부분은 지형적으로 낮아서 소나무 가지 위로 여진머리, 녹하지오름, 모라이오름, 밝은오름, 우보오름 등이 바라보였다. 한라산 정상부는 방향은 알 수 있었지만, 안개가 몰려오고 구름이 잔뜩 껴서 보이지는 않았다,

정상부의 북서쪽으로는 소나무 밑으로 북오름과의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굼부리가 내려다보였지만 소나무가 잔뜩 우거져 있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정상부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주변으로 서서히 안개가 몰려오더니 어느새 내가 앉아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가득 안개로 덮여 버렸다. 원래 계획은 거린오름을 탐방하고나서 이어서 거린오름과 붙어있는 북오름까지 탐방할 생각이었지만, 안개가 잔뜩 끼어 사방이 안 보이는 이런 날씨 속에서 북오름까지 탐방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북오름 탐방은 포기하고 다음에 와야겠다 생각하고 서둘러 짐을 챙기고 북동쪽으로 이어져 있는 탐방로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방향의 탐방로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었다. 탐방로는 북동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다.

내려가는 길 주변에 몇 기의 묘가 있어서 묘비를 살펴보았다. 1980년에 세운 淑夫人 李氏(숙부인 이씨의 묘)에는 東廣境下巨人岳(동광경하거인악)’이라고 새져져 있었고, 세운 연도를 알 수 없는 孺人礪山宋氏之墓(유인여산송씨지묘)1987년에 세운 齊長車公之墓(제장차공지묘)에도 모두 巨人岳(거인악)’이라고 새져져 있었다. 다시 조금 내려간 곳에 있는 宣人古阜李公之墓(선인고부이공지묘)1988년에 세운 묘비였는데, 이 묘비에는 東廣境거린(동광경거린악)’이라고 하여 거린이라는 이름을 한글로 새져놓은 것이 특이하였다.

그런데 산담들이 현무암 외에도 화산탄들이 굉장히 많았다. 현무암과 붉은 화산탄을 함께 섞어서 산담을 만든 것들이 많이 있었다.

남동쪽 탐방로(출입구 1)로 나와서 차를 세워둔 탐방로 2를 향해 걸어가는데 길가의 큰보리장나무에 불그스름한 열매가 잔뜩 달려 있었다. 몇 개 따서 먹어보니 약간 떫은맛이 나면서도 달콤하였다. 마침 배낭에 있던 비닐봉지를 꺼내어 꽤 많이 따서 담아서 가지고 왔다.

 

 

위치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지경

굼부리 형태 : 말굽형(북동쪽)

해발높이 298.2m, 자체높이 68m, 둘레 2,204m, 면적 24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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