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의 마음시 감상(104)

민들레 뿌리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사진=pixabay.com
사진=pixabay.com

<마음시 감상>

시인 문상금

어디서고 잘 자라는구나, 뿌리 잘 내리는구나, 민들레는 노란색 그 집념으로 날이 팍팍하고 가물수록 뿌리를 깊게 내린다. 눈치 빠른 이들이 다 떠난 들판이나 구석진 공터 곳곳에 민들레는 오히려 악착같이 더 뻗어나간다.

누가 감히 연약하다고 하느냐, 원뿌리 곧게 땅 속으로 내리며 더 깊어져 갈 뿐인 것을, 이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닌 것임을, 더욱 말없이 진지하게 낮은 곳을 향하여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봄 들판은 민들레로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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