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년의 이야기(1)

제주도 화산지질에서 가장 중요 한 지층이 무엇이냐고 질문 받게 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서귀포 층’이라고 답한다. 패류화석 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화산섬 형 성 과정이 서귀포층 속에 타임캡 슐처럼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층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 유는 100만 년 전 당시의 환경을 가늠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장소이 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질학에선 ‘고환경 복원’이라고 한다.

▲서귀포층의 의미

서귀포층은 바닷속에서 쌓인 해 양퇴적층이다. 당시 바다에 살던 각종 조개를 비롯한 화석들과 인 근 육지의 퇴적물이 쌓여있다. 신생대 제4기라고 하는 지질시대는 ‘인류의 시대’이자 ‘빙하의 시대’ 라고도 한다. 아프리카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고, 지구는 주 기적으로 빙하기를 맞았다. 빙하 기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인류는 진화를 거듭했던 것이다.

제주라고 하는 화산섬은 바로 이때 얕은 바닷속에서 화산활동 에 의해 솟아나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얕은 바다 환경에서 형성 된 서귀포층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바닷속에서 분화한 화산체는 점차 성장하여 육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사실은 서귀포층 퇴적물에 포함된 현무암 알갱 이 한 방울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서귀포층에서 발견되 는 화석들은 수심 수미터에 사는 종들이다. 수심이 수미터로 얕다 고 한다면 그 뒷편에는 육지가 존 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육지의 퇴적물이 바다로 이동한다. 바로 조그만 현무암 알갱이가 당시 100 만년 전에 제주가 현무암질 화산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 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질학은 과거 지구의 고환경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당시 지구상에 살고 있었을 다양한 생물의 흔적인 화석이 과학적 증거가 된다. 현재 지구상에는 없는 공룡이 남긴 화석을 통해 1억년 전 지구에 공룡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특히 퇴적층에 포함된 퇴적물과 퇴적구조들은 당시 의 환경을 복원하는데 요긴하게 사 용된다.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과거에도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작은 현무암 알갱이와 화산재층을 보면서 당시 제주의 화산활동을 유추하는 것이다.

제주에서 지질조사는 1920년대 일본 학자들이 제주에서 지질조사를 시작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제주에 입도한 지질학 자들은 제주도사의 안내를 직접 받았다. 이후 제주도와 한라산의 화산 활동을 비롯해 서귀포층의 패류화석 등 다양한 지질학 논문들이 발표되 었다.

그 가운데 제주고문서에 등장하 는 내용 가운데는 1002년에 비양도가, 1007년엔 군산이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여 있다. 화산을 조사하면서 마을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 누었다고 한다. 1923년 요코야마 교 수가 영어로 쓴 제주에 대한 논문에 서귀포층 패류화석 23종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1930년 하라구치는 지명을 따 서귀포층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제주가 신생대 제3기 말의 퇴적 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에는 제3기층이 가장 젊은 지질시대였기 때문에 이런식의 표현을 썼다. 신생대 제3기말, 비양도, 군산 등 최근 까지 제주에서 사용되던 지질 용어 들은 모두 이때 발표된 것들이다.

▲서귀포층의 구조

서귀포층은 서귀포항 새연교 입구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해안단애를 따라 절벽면에 노출되어 있다. 해안을 따라 약 500미터 구간에서 해 안선에 굴러떨어진 대규모 낙반에서 조개 화석과 퇴적층은 쉽게 확인 된다. 해안 절벽에서 하부 36미터는 서귀포층이며 그 위에는 두꺼운 조면안산암이 덮고 있다.

서귀포층 퇴적층에는 두꺼운 모래층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부드러운 편이다. 이런 퇴적층 위에 무거운 암석이 놓여 있어서 이 해안에는 낙석이 심하다. 문화재인 서귀포층 은 자연적인 조건으로 부서지기 쉬운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해가 갈수록 점차 침식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서귀포층은 36미터만 노출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약 100미터 두께로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제주 화산체의 현무암 아래에는 전체적으로 서귀포층이 깔려있는 모양새다. 조개껍데 기로 이루어진 탄산염암은 마치 석회암과 같아서 시멘트와 비슷하다. 그래서 물이 통과할 수 없다. 이 서귀포층 위에 지하수체가 놓여있기 때문에 풍부한 지하수가 담기게 된다. 그러므로 서귀포층은 제주의 생명수를 유지시켜주는 지하수에 중요 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서귀포층의 화석

화석은 패류화석 뿐만 아니라 유공충, 개형충, 완족류, 산호, 고래 뼈, 상어 이빨과 생물흔적 화석들이 다량 산출된다. 해양동물화석의 백화점이나 다름없다. 패류라고 부 르는 연체동물 화석종은 77종이 분 류되었다.

연체동물 화석군집과 퇴적 분지 해석 결과 서귀포층은 전반적으로 따뜻한 해양환경의 영향에서 퇴적된 것이다. 그러나 서귀포층의 상부지역에서는 옴마-망간지 동물군의 출현으로 일시적으로 차가운 해류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해석된 다. 이는 빙하의 발달에 따른 해수면 하강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서귀포층에서 2회의 해수면 변동이 확인된다. 수십만 년에 걸쳐 퇴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귀포동물군은 한류종을 일부 포함하는 비교적 따 뜻한 난류종으로 구성되며, 밤색무늬조개류(Glycymerisrotunda)와 북륙가리비(Mizuhopecten tokyoensis hokurikuensis)로 대표되는 독특한 동물군이다. 서귀포층은 패류화석에 의해 상대연대를 결정해 주는 제주송곳 고둥(Turrite l la saishuensis saishuensis)대의 구분에 의해 일본 동해 연안에 분포되어 있는 옴마층에 대비된다. 이곳은 해양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신생대 제4 기 초기 동안에 형성된 독특한 화석 층이다.

해양환경 변화는 당시 비교 적 따뜻했던 제주도 지역에 차가운 종의 남방 이동과 관련된 차가운 해류의 남방 확장에 수반되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00만 년 전 신생대 제4기 초에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환경은 어떠했을까. 고환경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기록을 간직하고 있 는 화석과 퇴적층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유일한 자연사적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제4기초의 퇴적층은 우리 나라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따라서 당시의 고환경을 비롯한 지질환경을 연구하기 위해서 모든 연구자는 서귀포층에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런 중요성 때문에 서귀포층 패류화 석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 나라에서 화석으로는 처음으로 1968 년에 천연기념물 195호로 지정된 것 이다. 이렇게 학술적 가치가 높은 서귀포층이 우리 서귀포에 있다.

우리가 서귀포층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단지 패류 화석 만이 아니다. 그곳엔 100만 년 전 제주가 탄생할 당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지질학적 단 서가 남아있는 장소다. 인류의 기원, 인류 이전의 생명과 바다와 화산의 기원, 제주의 탄생과 변화 등 100만 년 이라는 지질학적 시간의 이야기 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귀포층이다. 바로 여기서 제주가 시작된 것이다. 

북륙가리비
북륙가리비
침공패 화석
침공패 화석
산호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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