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57
필자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 합창단 활동 경력이 딱 하루다. 딱 하루라서 웃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남학생은 그 딱 하루도 없을 것이니 이 딱 하루는 따지면 매우 큰 경험이다. 사연은 이렇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합창반 선생님이 찾으신다는 말을 반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고 찾아갔는데 마침 합창 연습 중이었다. 누군가로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찾으신 모양이었다. 한 50여 명 정도 되는 합창반 애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연습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서 있는 그 소나이는 저~쪽으로 가서 서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쭈뼛쭈뼛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엔 남자애 두 명이 더 있었다. 그 이외에 나머지는 모두 여자애들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연습을 하긴 했는데 문제는 여자들 사이에 있는 게 너무 쑥스럽고 창피했다. 완전 촌 소나이어서 그런지 여자애들하고 말도 제대로 섞어본 일이 없던 터라 그 시간이 마치 1년 같았던 것 같다. 연습이 끝나고 ‘합창대회가 있으니 같이 하자’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곤 ‘예’하고 대답하고 다신 가지 않았다. 이유는 그냥 여자애들하고 바로 옆에 밀착해서 서 있는 게 쑥스럽고, 창피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지만, 당시 그 소나이는 나름 심각했다. 이후 합주 반 핑계를 대고 두 번 다시 합창반엔 가지 않았다. 지금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 합창단은 이수인의 ‘고향의 노래’를 불러 2등을 했다. 이것이 딱 하루의 경험이다.
‘에~에~이~야~동해나 울산은 좋기도 하지.’ 그 이후 학교에서 들었던 합창 소리이다. 때는 85년, 고등학교 신입생 때 어느 날 아침 자습 중이었는데 맞은편 창고 같은 허름한 음악실에서 이 아름다운 합창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1년 선배들의 합창 소리였는데 아마도 무슨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하던 모양이었다. 한두 달 정도 연습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아무런 말도 없고 다시는 합창 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 더 이상 필자의 귀에 학교에서의 합창 소리를 들을 순 없었다.
그런데 역시 학교 교육은 사소함과 무가치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 있었던 경험으로 인해 합창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 1년 선배들이 있다.
얼마 전 그 1년 선배들과 그 위의 합창음악을 사랑하는 몇 분 선배들과 의기투합하여 동문합창단 창단을 결의하고 몇 달간 철저한 준비를 하여 드디어 역사적인 창단식을 2023년 4월 11일 7시 교내 천지관에서 가졌다. 이후 첫 연습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또 하나의 사실을 알았는데 필자의 4년 선배들은 이미 중창단으로 대회에 나가 2등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모르는 선배들의 합창 활동이 더 있지 않을까’라는 것인데 확인할 길은 없다.
현재 필자의 모교는 전국 명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후배들이 이렇게 성장하는데 선배들도 더불어 성장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면에서 이번 동문합창단 창단은 큰 의미가 있다. 예술적 재능이 있는 후배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 외에도 낙후된 서귀포지역의 합창문화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학교 동문합창단과의 교류를 통해 각 학교 동문합창단 활성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명문은 문화 예술적 성장이 동반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승직 지휘자/음악칼럼니스트
명문 서귀포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