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100)

번널오름 전경 

 

봄의 가운데 들어서며 따스한 기운이 대지와 온갖 수목에 스며들어 산과 들이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고, 점점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반갑지 않는 황사가 자주 찾아오곤 한다. 얼마 전엔 황사와 미세 먼지가 매우 위험 단계로 잔뜩 껴서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는 미세 먼지와 황사로 인하여 야구 경기까지 중단했다고 한다. 제주도에도 예외일 수가 없는지 미세 먼지가 잔뜩 껴서 우리 뒷산인 고근산도 흐릿하게 보였고 한라산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안 보이는 정도가 되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깨끗하게 개어서 화창한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오름 등반하기에 딱 좋은 이런 날 어찌 오름을 찾아가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번널오름을 탐방하기 위해 서성로를 달리다가 녹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꺾어들어 녹산로를 달리니 금세 번널오름 입구에 다다랐다.

녹산로에서 번널오름으로 진입하는 곳에 넓은 풀밭이 있어서 그곳에 차를 세우고 번널오름을 향해 걸어갔다.

번널오름은 표선면 가시리 지경의 오름으로, 가시리 마을 북쪽의 녹산로 변에 있으며, 남쪽의 병곳오름과 이웃하고 있다.

오름의 분류로 보면 원추형 오름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높지 않고 편평하다고 하여 편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제주어의 번번하다는 말과 널빤지의 과 합쳐서 번널오름이라고 하며, 한자 표기로는 번판악(飜板岳)’으로 쓰고 있다.

번널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녹산로 도로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서 비교적 쉬운 편이다. 가시리 마을 북쪽의 녹산로와 한남로와 중산간동로가 만나는 사거리(사거리 가운데에 보호수가 있는 곳)에서 북서쪽으로 녹산로를 따라서 약 2.3km를 가면 번널오름 동쪽의 작은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서쪽의 소로로 진입하여 오름 북쪽 기슭을 따라 약 500m를 가면 번널오름 북서쪽의 탐방로 입구에 이르게 된다.

탐방로 입구 삼거리에서 바로 남쪽편에 비포장 농로가 있으며, 이 농로를 따라 약 480m를 걸어가면 오름 남쪽에서 정상부로 올라가는 탐방로 시작점이 있다.

번널오름의 전체적인 모양새는 타원형에 가까운 둥그스름한 오름이다. 높이가 그리 높지 않는 오름이지만 북동쪽과 남서쪽에 하나씩,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북동쪽 봉우리가 정상부이며, 두 봉우리 사이는 야트막하고 편평하여 번널오름이라는 이름이 두 봉우리 사이의 편평한 모양새에서 불리게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두 봉우리 사이의 야트막한 모양새와 한쪽 봉우리가 약간 높고 한쪽 봉우리가 약간 낮은 모양새가 마치 말 안장 모양을 닮았다.

오름의 전체적인 경사는 전 사면에 걸쳐서 완만한 편이나 정상부에서 동쪽 바깥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작은 절벽이 형성되어 있다.

오름 전체에 소나무, 삼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사스레피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청미래덩굴, 찔레 등 덩굴과 가시들이 많은 오름이다.

녹산로 변의 번널오름 입구에 이르니 넓은 풀밭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오름 북쪽 기슭의 농로를 따라 걸어갔다. 고사리가 한창 올라오는 무렵이어서 여기 저기서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오름 기슭의 농로 좌우에는 북쪽편에 편백나무가 한쪽으로 줄을 맞추어 자라고 있었고, 남쪽편의 오름 오름 기슭에는 사스레피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라는 사스레피나무들은 줄기가 지면에서부터 한 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줄기로 올라가는 것들이 많았다. 이는 예전에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절에 다른 데는 쓸모가 없었던 사스레피나무를 땔감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밑둥에서 잘라버린 후에, 다시 밑둥의 뿌리 쪽에서부터 새 줄기가 올라와서 자라곤 했던 것들이다. 그러다가 곤로, 난로 등에 석유를 연료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이상 나무를 베지 않아 이제는 밑둥에서부터 자라기 시작했던 줄기들이 제법 많이 자라서 굵어지게 된 것들이다.

탐방로를 향해서 걸어가노라니 가까운 숲에서 삐쪽 삐쪽 삐쪽 삐쪽 새소리가 경쾌하게 들라고, 멀리서는 호~호로록 휘파람새 소리가 들려왔다.

번널오름 정상부에서 바라본 풍광
번널오름 정상부에서 바라본 풍광
번널오름 북동쪽 봉우리

 

오름 북쪽의 탐방로 입구에 이르러 오름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나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탐방로가 시작하는 지점부터는 소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터널 속 같은 길이 뚫려 있어서 그 속을 통해서 올라가는 느낌이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널찍한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서 오름 중턱 정상부 가까운 쪽으로 올라서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숲길 탐방로는 끝나고 햇빛이 환히 비쳐들었지만 그 또한 주변을 조망하면서 올라갈 수 있어서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병곳오름이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고, 참식나무와 식재한 듯한 때죽나무가 새잎을 가득 달고 있었고, 비목나무도 새잎과 함께 노르스름한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청미래덩굴이 연둣빛 새잎을 내고 더불어 노랗고 앙증맞은 작은 꽃송이들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보리수나무도 작은 꽃송이를 가지마다 온통 매달아 나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정상부인 북동쪽 봉우리에 올라서니 산화경방초소가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은 말끔하게 풀이 베어져 있었으며, 산화경방초소 뒤편의 사스레피나무들이 깨끗이 손질이 되어 있어서 마치 어느 집 정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상에서는 동서남북 사방이 전혀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조망이 되었다. 동쪽으로는 설오름과 갑선이오름, 북동쪽으로는 따라비오름과 모지오름, 새끼오름, 북쪽으로는 가시리 풍력발전단지와 큰사슴이, 족은사슴이, 남쪽으로 병곳오름, 서쪽으로는 물영아리와 여문영아리들이 크고 작은 모습으로 점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북서쪽으로는 한라산 정상부와 그 아래로 수많은 오름들이 바라보였다.

정상부에서 지형을 살펴보니 봉우리는 산화경방초소가 있는 주 봉우리가 북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남서쪽 방향에는 야트막한 낮은 봉우리가 있어서 이 오름의 두 개의 봉우리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주 봉에서 동쪽으로는 약 10미터 정도 되는 바위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경사가 가파른반면에 서쪽으로는 능선이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남서쪽 봉우리에서 약간 높아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정상부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탐방로를 따라 내려갔다. 온통 숲속인 탐방로를 따라 내려가니 거의 다 내려간 곳 쯤에 북동쪽 봉우리와 남서쪽 봉우리 사이에 골짜기를 만들며 내려오는 조그만 도랑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름 남쪽으로 다 내려온 다음 오름 남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비포장 농로를 따라 녹산로로 나왔다. 그리고는 북쪽 농로를 따라 북쪽 탐방로 시작점으로 다시 가서 이번에는 남서쪽 봉우리에 올라갔다. 남서쪽 봉우리로 올라가는 탐방로는 원래 탐방로가 없는 곳이었는데,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제거하여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 남서쪽 봉우리 바로 아래까지 만들어져 있어서 그 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다.

남서쪽 봉우리에 올라서니 사방이 훤히 터진 풀밭이 형성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키 작은 소나무와 사스레피나무, 청미래덩굴 등 키 작은 나무와 덩굴들이 자라고 있었다. 큰 나무들이 없어서 사방 전망이 잘 보였다. 남쪽으로 바로 가까이 병곳오름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었고 설오름과 갑선이오름이 바라보였으며, 북동쪽 봉우리도 이곳에서 바라보였다. 또한 북서쪽으로는 한라산 정상부와 물영아리, 여문영아리들이 바라 보였다.

오름 탐방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고사리를 꺾으러 간 사람들이 고사리가 가득 들어있는 망태를 메고 환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위치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지경

굼부리 형태 : 원추형

해발높이 272.3m, 자체높이 62m, 둘레 1,299m, 면적 12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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