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년의 이야기(2)

강순석 소장
강순석 소장

시인에게서 그리운 바다로 불리게 된 성산, 성산일출봉으로 다가간다. 바닷속에 커다란 성채가 올라와 서 있는 모습이다. 성곽이 바닷속에 서 있는 오름이라 하여 성산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오름을 성산오롬이라 불렀다. 제주사람들은 서 있다사 있다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성이 사 있는 오름이라는 말이다. 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성산(城山)이라고 했다. 제주에서는 산을 오롬이라고 했고, 성산 역시 오름이다.

 

성산일출봉 생성 과정

마치 성곽과 같은 모양의 성산일출봉 응회구의 분화구
마치 성곽과 같은 모양의 성산일출봉 응회구의 분화구

성산 해안에 성채처럼 선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에 바다에서 분출했다. 분화 당시 성산일출봉 분화구는 바닷속에 있었다. 아마 수심 23m 정도의 얕은 바다였을 것이다. 바다 속 지하에서 마그마가 물과 만나 폭발적인 수증기성 분화활동을 시작했다.

화산재층은 순식간에 높이 180m의 화산 성채를 만들며 육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화산체의 주변으로 수 킬로미터 거리로 화산재가 먼지 구름 형태로 빠르게 흘러가 쌓이게 된다.

그러나 성산일출봉 분화구는 바닷속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도에 의해 오름의 몸이 되어야 할 화산재 퇴적물은 대부분 유실되고 분화구 중심부에서만 화산체의 형태가 남게 된다. 성산일출봉이 현재 99개의 봉우리로 마치 왕관 모양의 성채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이러한 당시의 해양환경에서의 화산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성산일출봉은 해안선에 접하고 있어서 강한 파도와 바람에 의한 침식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가파른 절벽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침식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직의 해식애가 성산일출봉의 외벽을 이루고 있다. 성산일출봉의 외벽 낭떠러지를 따라서 해안선을 휘돌아가면서 관찰할 수 있는 지질 노두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곳은 분화구 내부 지층에서 부터 가장자리 지층까지 화산체의 단면을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어 수성화산의 내부구조를 연구하는데 좋은 장소다. 높이가 180m, 분화구 직경이 약 600m, 분화구 바닥의 해발고도는 90m이며 정상에 남아있는 분화구의 모습이 특징적이다. 하와이 다이아몬드 헤드에 가본 적이 있지만, 세계 어디서도 이렇게 완벽한 형태로 바다 속에서 올라와 서 있는 수성화산체를 본 적이 없다. 이 화산체의 지질학적·경관적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젊은 신양리층

성산일출봉 가는 길에서 광치기 해안으로 내려간다. 여기선 썰물 때 드러나는 넓은 조간대가 장관이다. 얕은 노두로 완만한 경사로 바다 쪽으로 나가있던 신양리층이 물속에 잠겼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1972년 서울대 지질학과 김봉균 교수가 명명했고, 유공충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신양리층을 한국에서 유일한 신생대 제4기층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퇴적층인 것이다. 후에 이곳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조개껍데기 화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4,460년 전에 살았던 조개임이 밝혀졌다.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에 따른 연대측정이다. 이 신양리층은 성산일출봉 응회구의 응회암이 부서진 물질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신양리층에 포함된 조개껍데기는 당시에 살았던 해양생물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성산일출봉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신양리층 패류화석
신양리층 패류화석

우묵개와 오정개

성산일출봉 동쪽 해안을 따라 우묵개오정개가 있다. 20년 전에 제주도 해안을 한 바퀴 걸으며 지질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성산포 오정개 해녀탈의장에서 바닷가로 내려갔었고, m 높이의 암반이 해안가를 따라서 성산포항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관찰했다.

이 용암은 성산일출봉에서 분출된 용암이다. 용암류 사이에 2030cm 두께의 송이층이 보였다. 당시 용암 분출 당시에 송이도 분출했던 것이다. 대부분 수성화산은 응회암뿐만 아니라 후차적으로 용암과 스코리아를 분출한다. 송악산에서도 수성화산 분화구 안에 송이로 이루어진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암반 사이의 송이층은 바닷물에 씻겨 안쪽으로 깊게 패여 있었다. 그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안쪽을 살펴보았다. 붉은 송이층 사이에 하얀 뼈가 보였다. 채취하여 박물관에 가져와서 확인해 보니 새의 골격과 사슴의 이빨이었다. 무슨 새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5000여 년 전에 성산일출봉이 분출했던 당시에 이곳은 사슴이 뛰노는 장소였고 지금처럼 해안가는 철새도래지였을 것이다.

 

성산일출봉을 육지와 연결시켜 주는 육계사주
성산일출봉을 육지와 연결시켜 주는 육계사주

일출봉을 연결한 육계사주

이제 성산일출봉을 오른다. 정상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오름 군락 너머의 한라산을 바라본다. 성산일출봉을 육지와 연결하는 모래언덕인 육계사주가 길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성산일출봉은 섬이었던 것이다. 사주(sandbar)는 해안선과 평행하게 바다 속에서 길게 만들어진다. 고성리와 오조리 해안에서 볼 때 바닷속에서 해안선과 평행하게 만들어진 모래톱이 현재의 육계사주에 해당한다.

이 내수면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산 갑문과 터진목이라고 부르는 수로에 의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5000년 전에 성산일출봉이 분화하면서 이 일대의 해안선에는 역동적인 지형 변화가 일어났다. 성산일출봉이 분화하고, 신양리층이 퇴적되고, 육계사주를 만들고, 뒤이어서 사구를 만드는 해안지형의 변화가 이곳에서 발생한 것이다. 5000년이라는 시간은 지질학적으로는 현재에 해당한다. 그 최근에 이곳은 역동적인 해안지형의 변화를 겪었다. 이렇게 최근까지 고지형을 변화시킨 사례는 매우 드물다.

지금부터 5000년 전이라고 하는 시기는 신석기시대 중기에 해당한다. 바로 이 시기에서부터 제주도 전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제주의 고고학적 발굴 유물들은 대부분이 이 시대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 성산일출봉이 해안가의 얕은 바다에서 폭발적인 분화를 시작한 때에 인근 육지인 오조리 해안에서는 당시 선사인들이 이 광경을 직접 목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이곳 해안에서 살아가던 선사인들은 성산일출봉의 화산분화과정을 보았을 것이다. 다만 역사 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지 못할 뿐이다.

제주 화산의 특징은 이처럼 최근세까지 이어졌던 화산활동이라는 점에 있다. 바다 속에서부터 거대한 성채가 서게 된 과정들, 성산일출봉이 폭발하는 화산활동을 해안가에 서서 두려움과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사람들, 당시 이곳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을 떠올려 본다. 이것이 세계자연유산 제주가 세계에 내놓아야 할 화산 연구의 주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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