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황우지 전적비 정비]
황우지 해안가 작전 현장
최근 전적비 정비 마무리
고 안병하 경찰 진두지휘
고 김수만씨 등 시민 부상

▲작전명 ‘독 안의 쥐’
1968년 8월 23일 밤 10시 30분, 작전에 투입된 경찰 요원들은 제주 서귀포 해상 700m 지점 바다 무장 공작선의 침투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북한이 밀파한 무장 공작선에는 81mm 곡사포와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북한 753부대 소속 14명이 타고 있었다. 최고속도 35노트, 75톤, 16인승 공작선은 서귀포 앞바다를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 한 명이 간첩 접선자로 위장해 절벽 밑 바위에 숨어 있었다. 공작선이 나타나자 미리 입수한 지령문에 따라 돌을 세 번 두드렸다. 공작선에서 검은 고무보트 1척이 내려졌다. 2명의 공작원이 보트를 타고 와 서귀포 서남방 속칭 ‘황우리 절벽’ 20m를 거미처럼 기어올랐다. 밤 10시 45분, 한발의 조명탄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서귀포 해안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무장간첩 1명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다른 한 명은 가까이에 있던 토굴로 피신했다. 경찰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는 등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마침내 사살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한명(서귀포경찰서 소속 정00 순경)이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무장공비의 총격에 안 총경 바로 곁에 있던 무전병의 무전기가 관통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됐다. 북한 무장 공작선은 빠르게 도주했으나 해상에 미리 포진해 있던 우리 군함과 경비정에 의해 서귀포 남동쪽 30마일 해상에서 나포됐다. 이때 무장공비 10명이 배에서 사살됐고, 바다로 뛰어든 2명은 생포했다.(‘불멸의 경찰 이곳에…’에는 사살된 공비가 10명으로 기재됐지만, 당시 12명의 공비가 사살됐고, 2명은 생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교육원 발간 ‘불멸의 경찰 이곳에 영원히 살아 숨 쉰다’ 내용 발췌-

▲경찰부터 시민까지 ‘숨은 영웅’
서귀포 무장간첩 소탕 작전은 군인 출신 경찰이 진두지휘했다.

서귀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1968년 서귀포 황우지 간첩선 섬멸 작전 현장 지휘자는 1962년 당시 군 간부를 총경 특별채용할 때 경찰로 입문한 안병하 총경이다.

안병하 치안감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경찰로부터 총기를 회수하는 등 시민을 돌봤던 ‘인권 경찰’로 평가받는다.

안병하 치안감은 5·18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강압에 의해 사표를 제출하고 경찰을 떠났다. 안병하 치안감은 고문 후유증 등으로 1988년 10월 10일 향년 60세로 사망했다.

이후 고 안병하 치안감은 2015년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 전쟁영웅’에 선정됐고, 2017년에는 ‘경찰 영웅 1호’에도 선정됐고,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계급 특별 승진했다.

고 안병하 치안감 이외에도 당시 서귀포 제일사진관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고 김수만씨도 숨은 영웅이다.

고 김수만씨는 당시 경찰 요청으로 공비 소탕 작전 현장 등을 사진으로 촬영하던 중 수류탄 파편에 다쳤다.

1988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민간인이란 이유 등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2005년 11월 고 김수만씨가 사망한 이후 유족들이 2008년 제기한 국가유공자 재신청을 통해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당시 작전 중에 총상을 입었던 서귀포경찰서 소속 순경은 정종배씨로, 1967년 3월 순경으로 경찰로 입문했고, 1968년 황우지 무장간첩 소탕 작전에서 총상을 입었다. 정종배씨는 지난 2002년 12월 31일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방범과장(경정)으로 퇴직했다.

▲호국 전적지 관리 강화
서귀포경찰서를 지난 2005년 황우지 해변 인근에 전적비를 설치했다.

황우지 전적비는 제주 올레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올레 7코스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전적비 설치 이후 사실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전적비 앞을 지나는 올레 탐방객도 황우지 해안이 50여년 전에 무장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던 곳이란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6·25 전쟁 이후 최대 대간첩 작전으로 평가받는 황우지 작전에서의 경찰 영웅과 시민 영웅의 업적도 숨겨졌었다.

경찰은 황우지 전투에서 다친 순경을 찾기 위해 비슷한 연령의 퇴직 경찰관과 마을을 찾아다니고, 당시 신문기사 등을 확인하면서 정종배씨를 확인했다.

또한 정종배씨를 찾는 과정에서 현재 서귀포시청 인근 ‘동남칼라’를 운영했던 당시 사진사 고 김수만씨도 찾아냈다.

이에 따라 서귀포경찰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경찰과 시민을 기억하고, 호국 전적지를 소중히 관리해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홍보해야 한다고 판단해 황우지 전적비를 정비했다.

서귀포경찰서는 6월 5일 황우지 해변 전적비 앞에서 전적비 재정비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치열했던 역사 현장 잊히지 않길 바랄뿐”

[인터뷰 / 오충익 서귀포경찰서장]

“중요한 건 역사,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해 두면 후배들도 과거를 교훈 삼아 경찰업무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에도 좀 더 관심을 두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충익 서귀포경찰서장은 1968년 서귀포 황우지 해변에서의 무장간첩 소탕 작전이 잊히는 것을 걱정했다.

군인과 경찰, 민간인까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냈던 현장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이 아닌, 관광지나 물놀이하기 좋은 곳으로만 알려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충익 서장이 황우지 전적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서귀포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을 맡던 18년 전인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동규 서귀포경찰서장이 황우지 해안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사명을 다한 군과 경찰의 수훈 등을 기리기 위해 전적비를 설치했다.

올해 서귀포경찰서장에 취임한 오충익 서장은 취임하자마자 18년 전 당시 김동규 서장이 세웠던 황우지 전적비를 찾아갔다. 하지만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다 보니 관광객과 시민들이 전적비를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경찰은 물론 역사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나섰던 시민도 다쳤던 역사적인 현장임에도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던 오충익 서장은 전적비 정비를 지시했다.

오충익 서장은 “2005년 당시 황우지 전투 현장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당시 김동규 서장이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전적비라도 설치해야 한다며 전적비를 세웠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전적비 제막 기념식도 하고 했는데 경찰서장에 취임한 이후 현장을 찾아가 보니까 전적비 내용을 읽는 사람이 없더라”며 “이 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정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