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리 이웃들] 오순명 정방4·3유족회장

4·3 당시 부모 모두 잃어
‘연좌제’로 어려움 겪기도
추모·위령공간 조성 기여
추모관 건립 등도 구상 중

오순명 정방4·3유족회장
오순명 정방4·3유족회장

29일 서복전시관 내 불로초 공원에서 제주 4·3위령 공간 제막식이 열렸다. 이 공간은 기존 다른 지역 위령비와 달리 현대식으로 만들어 문을 여는 구조로 설계됐고, 물줄기 형상과 쉼터가 있어 제주 4·3에 대해 모르는 젊은 층과 관광객들도 쉽게 다가가게 한다.

오순명 정방 4·3희생자 유족회 회장(80)2015년부터 서귀포지역 최대 4·3학살터인 정방폭포 인근에 위령공간 조성을 위해 앞장섰다.

오 회장은 5살 어린나이에 4·3사건으로 모두 부모를 잃었다. 조모 손에 자라던 오 회장은 자식들도 잡아간다는 소식에 외조모에게 보내져 새우잠을 자며 숨어 살기도 했다. 어느날 동네사람이폭도새끼야 저리 비껴라는 말은 사회공포증까지 생겼다.

오 회장은 고교 졸업 후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낸 입학원서와 진학하라며 용기를 주는 편지는 교육대학교 진학을 이끌었다. 진학 후, 어렵게 교대를 졸업했지만, 오 회장은 연좌제로 발령을 받을 수 없어 교단에 설 수 없었다. 희망의 절벽 앞에선 오 회장은 젊은 나이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교단에 선 오 회장은 4·3사건 진상조사로 희생자 유가족 신고 기간이 있었는데도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과정에서 잊혀져 가는 상처가 살아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세월이 흘러 오 회장은 42년 간 교직을 마치고, 우연한 기회에 4·3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이 모임의 유가족들은 시내 학교에 4·3명예교사로 나서게 된다. 오 회장은 자신의 겪은 4·3사건을 학생들에게 이야기 한 후, 4·3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학생들과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싶었지만, 정방폭포 인근에는 위령비가 없었다. 이는 오 회장이 정방유족회 창립과 위령공간 조성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2015년부터 정방유족회가 추진한 위령공간 조성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주민들이 반대로 번번히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좌절한 오 회장은 위령공간 조성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 유족이 위령비에서라도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며 위령공간 조성에 대한 희망은 오 회장을 다시 일어서게 했다.

요즘 오 회장은 정방폭포 인근에 영상자료실 등을 갖춘 4·3희생자 추모관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주4·3이 아픈 역사를 깊이 느끼게 하고, 후손들에게 교육의 장을 마련해 다시는 슬픈 역사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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