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년의 이야기 (3)

지금부터 3600년 전, 송악산이 바닷속에서 폭발했다. 3600년 전이라고 한다면 역사시대 2000년을 빼고나면 기원전 1600년 전의 이야기다. 신석기 시대 최후기에 해당된다. 청동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송악산은 폭발했다는 말이다. 송악산 화산재가 이동되어 해안가에 쌓인 퇴적층이 하모리층이다. 순서대로 하면 송악산이 폭발하고 이어서 파도에 의해 부서진 화산재가 바닷물과 함께 인근 해안가로 밀려와 쌓인다. 지질학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한순간으로 본다. 실제적으로 하나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지는 형성과정은 짧게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수백년이 걸린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주도에서 오름이라고 하는 단성화산체는 보통 몇년에서 수십년이라는 화산활동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여간 당시에 송악산이 분출할 때 인근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사람발자국 화석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바닷속에서 분출한 송악산

당시의 상황을 좀더 쉽게 이해해 보자. 우선 당시 송악산 주변의 지형 환경을 상정해야한다. 바다는 어디에 있었고 육지에는 어떤 환경이었는가. 2, 3만년 전에 분출한 광해악 현무암이 해안가에 펼쳐져 있었다. 이 용암은 빌레용암으로 표면에 주상절리를 보이며 현재 산이수동 해안가에서 관찰할 수 있다. 송악산 배후의 육지에는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고 보다 육지쪽으로 암석으로된 해안선이 분포해 있었다. 현재와 같은 매우 평탄한 해안단구의 모습은 송악산이 분출하고난 다음의 일이다. 송악산 인근 해안가는 광해악 현무암이 분포하는 얕은 바다였다. 송악산이 갑자기 분화활동을 시작했다. 바닷속에서 매우 폭발적인 수성화산활동을 했기 때문에 화산체를 이루고 있는 화산체 외륜의 응회암은 채 굳어지기도 전에 강한 파도에 의해 부셔져 버린다. 그래도 연속적인 분화활동은 넓은 분화구를 갖는 응회환을 만든다. 화산활동의 끝마무리에는 육성화산 활동을 하여 깊이 69 미터의 분화구를 갖는 이중화산을 만들었다.

육상화산활동의 산물인 분화구와 붉은 송이와 까만 송이가 분화구 주변에서 흔하게 관찰된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얼마되지 않은 빨간 송이로 된 분화구는 원래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송이로 이루어진 오름이어서 송이오롬이라고 불렀다. 후에 빨간 송이를 한자화하면서 송악산(송악산)이라고 썼다. 송이오름하고 송악산은 한자적 의미로 전혀 다르다. 하기야 스코리아를 가리키는 송이를 한자로 어떻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름을 지었던 당시 유식했던 학자들의 고충도 이해될 것 같다.

바닷속에서 분출한 송악산은 강한 파도에 의해 응회암이 부셔져서 인근 해안가로 흘러간다. 마치 흙탕물과 같은 모습이었다. 해안가의 광해악 현무암 암반을 덮으며 쌓인다. 전체 두께는 4미터에 이른다. 화산재 형태의 얇은 재동 퇴적층과 스코리아로 이루어진 붉은 퇴적층이 송악산 인근 해안가에 넓게 퍼진다.

사계 포구에서는 검붉은색의 송이로 이루어진 퇴적층이 있다. 파도에 의해 쉽게 부서진다. 이곳에서 파도가 치는 해안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하모리층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퇴적층은 동쪽 해안으로 화순해수욕장에서부터 서쪽 해안으로는 모슬포 운진항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운진항과 화순해수욕장의 황우치 해변에서는 조개껍데기들이 이 층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당시 해안가에 살았던 조개 껍데기들이다. 송악산 뒤편의 육지부로는 마치 갯벌과 같은 지형이었다. 화산재와 재동 퇴적층이 쌓이면서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는 조간대의 모습이었다. 이 갯벌에 해안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새들이 찾아온다.

하모리층 발자국 화석

하모리층에서는 사람발자국 화석 뿐만 아니라 마치 말과 같은 매우 큰 동물의 발자국과 사슴발자국이 많이 발견된다. 갯벌에 살았던 생물흔적화석(trace fossils)과 새발자국 화석도 많이 발견된다.

이 생물흔적화석의 수직 서관은 조간대 갯벌에 사는 종들이다. 퇴적환경이 갯벌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갯벌에 무수히 찍혀있는 발자국 화석들은 모두 당시에 갯벌에서 움직였던 생물들의 흔적이다.

갯벌에 찍힌 발자국화석은 보통이면 파도에 의해 바로 없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찍힌 발자국화석들은 밀물에 의해 바닷물에 코팅되고 잇따라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밀려와서 이 화석들 위를 덮어버린다. 이른바 화석이 만들어지는 화석화 과정이다. 이렇게 화산지대는 화석으로서는 불모지이지만 이렇게 수성화산이 발달한 곳에서는 이외로 많은 화석이 보존되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발자국과 함께 무수히 찍혀있는 사슴발자국이다. 족히 수천개가 밀집되어 있다. 사슴 무리들과 사람들의 발자국. 바닷가에 앉아 당시의 모습을 그려본다. 이곳은 갯벌이 넓게 펼쳐진 해안선 조간대 였다. 수천개의 무리를 이룬 사슴발자국 화석들과 사람들의 발자국. 한라산에서 곶자왈 숲을 이동 통로로 하여 지금도 이곳 해안까지 내려오는 노루들. 그렇구나. 당시 3600년 전에 사슴들은 이곳 해안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당시 신석기 말기에 수렵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사슴을 사냥했을까. 아마 무리를 지어 사냥감인 사슴들은 바다로 몰았으리라. 차박차박한 갯벌 속에서 이들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으리라. 이렇게 바다로 몰아놓고 가까운 거리에서 활이나 창으로 쏘아서 사냥을 했구나. 이 발자국 화석들은 그 사람들과 사슴들의 발자국인 것이다.

사구층 속 선사인의 흔적

이곳 사계 해안도로에는 모래 언덕인 사구가 길게 분포한다. 사구층 속에 상모리유적이 있다. 2300년 전의 패총 유적이다. 패총에는 전복을 비롯하여 당시 이들이 잡아먹고 버린 동물의 유해들이 섞여 있다. 사슴의 뼈와 멧돼지의 이빨들이 출토된다. 그렇구나. 이곳은 당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선사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역사에 없는 선사시대 제주의 모습이 여기서 그려진다. 송악산에 올라서면 서쪽 먼곳으로 고산 수월봉이 보인다. 1만년 전의 고산리유적이 있는 곳이다. 1만년 전부터 이어진 신석기시대에 제주에는 송악산과 같이 수많은 젊은 화산들이 폭발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 흔적을 화석으로 남기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화산활동. 제주의 선사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수많은 화산들이 폭발했으며 사람들은 화산과 함께한 삶이었던 것이다. 화석은 말이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과학적 질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송악산 새발자국 화석(3600년 전)
송악산 새발자국 화석(3600년 전)
하모리층의 사슴발자국 화석
하모리층의 사슴발자국 화석
송악산 응회환 단면 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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