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59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 허가 청원 소송이 제기되자 슈만의 스승이 자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슈만 에 대한 방해 공작을 집요하게 펼쳤 다. 미성년자인 클라라를 꼬드겼다 는 증거로 클라라의 일기장을 증거 물로 제출한다거나 클라라의 연주회 장에서 슈만에 대한 비방의 글을 실 은 유인물을 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슈만 편에서도 그를 옹호하는 사 람들이 좋은 증언을 해 줌으로써 1 년여 간의 소송은 결국 슈만과 클라 라의 승소로 결론이 났다.

소송에서 이긴 그들은 드디어 클 라라가 21세가 되던 해 라이프치히 근교 셰네펠트교회에서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클라라의 일 기장을 보면 오랜 세월 슈만을 사랑 했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 새로운 출 발을 기대하지만, 두려움과 무거운 책임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슈만은 승소 후 기쁜 마음을 담아 미래의 아내 클라라를 위한 노래를 작곡하는 데 그 유명한 ‘헌정’이 포 함된 ‘미르테의 꽃’이다. 또한, 결 혼 직후에는 ‘아름다운 5월에’라는 곡이 포함된,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한 연가곡 ‘시인의 사랑’ 등 무려 100여 곡을 작곡하였다. 이후 멘델스존이 지휘한 교향곡도 큰 성공을 거두며 계속해서 폭넓고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당대 유명한 음악가들과의 교류를 하는 등 거장 으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한편, 슈만과 클라라 사이에 연이 어 자녀들이 태어나 다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고 슈만의 위상도 날로 높 아지자 그의 스승이자 클라라의 아 버지인 비크는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들에게 화해를 청했다. 그래서 스승인 장인과의 껄 끄러운 관계도 회복이 되어 이제는 무엇하나 걱정이 없는 행복한 날들 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날들만 계속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앞날 에는 슈만의 우울증이라는 변수가 늘 도사리고 있었다. 전에도 슈만은 형제들이 연이어 사망하자 그 충격 으로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우울증이 다시 재발한 것이었다. 거기에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을 맡은 것은 이 우울증을 더 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단원들과의 음악적인 마찰은 슈만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되었고 결국, 슈만은 엄동설한 한겨울 짧은 유서 를 남기고 라인강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다행히 지나가던 어부들이 그 를 발견하여 겨우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이후 2년여의 투병 후 1850년 7월 29일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 났다. 그들은 클라라가 16세 즈음 본격 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은 이 래 20여 년간 애틋하면서도 불안 한 사랑을 이어왔다.

슈만의 마음속 에는 늘 우울증이란 어우둔 그림자 가 있었고 그것을 아는 클라라 또한 불안한 사랑을 이어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순수한 사랑과 한결 같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 히, 브람스의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구애를 단순한 호의 이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슈만에 대한 사랑과 순 결을 지킨 클라라의 절개와 숭고함 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순수하게 아름다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승직  지휘자/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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