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년의 이야기(4)

제주 해안 따라 일출봉·송악산 등 10여개 수성화산체
하논 마르, 지하로 깊게 패여 다양한 지질구조 관찰 가능
분화구 안 화구구 존재, 제주 수성화산 특징 중 하나

마르(maar)는 물이 없어도 된다. 마르의 기원지인 독일 불칸아이펠에 가본적이 있다. 규모가 큰 호수를 갖고 있는 마르도 몇 개 있지만 대부분의 마르 분화구는 물이 없는 그냥 함몰지 형태의 분화구였다. 마르 분화구는 수성화산활동의 산물이다. 제주에는 해안선을 따라 10여개의 수성화산체가 있다. 성산일출봉을 비롯하여 송악산, 수월봉 등이 이에 속한다. 수성화산이란 지하에서 상승하는 마그마가 물과 만나서 폭발적인 분화를 하는 화산이다. 수증기성 화산활동을 하며 분화구는 매우 크다. 제주에서 수성화산체들이 주로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이유는 지하에서 풍부한 지하수와 마그마가 만났기 때문이다. 반면 지하수가 분포하는 곳일 경우에는 중산간지역에서도 수성화산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제주에도 중산간지대에 수성화산체들이 존재한다. 수성화산은 형태적으로 응회구(tuff cone)와 응회환(tuff ring)으로 구분한다. 응회환이 응회구에 비하여 분화구가 넓고 완만하다. 성산일출봉은 응회구이며 송악산과 수월봉은 응회환이다.

응회환은 산체가 완만하며 주변 수 킬로미터에 걸쳐 산체가 분포한다. 화산은 주로 지표면 위에서 어느 정도의 산체 높이를 갖는다. 이 응회환 중에서 특이하게도 지형적으로 분화구 바닥이 지표면 보다 밑으로, 지하로 깊게 패인 형태의 화산체가 있다. 이런 화산체를 마르라고 한다. 하논 마르에 가보면 이런 지형적 특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예전 서귀포시내에서 서쪽으로 난 일주도로는 삼매봉 산허리를 자르면 개설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거대한 규모로 움푹 패여있는 하논 분화구와 삼매봉 오름을 관통하는 도로는 이렇게밖에는 만들 수 없었다. 지금은 우회도로 형식으로 하논 분화구 북측으로 새로운 길이 나있다. 호근마을 입구로 나 있는 서귀여중 앞 도로에 하논 방문자 센터가 있다. 이 도로에 서서 보면 과연 마르 지형의 실체를 실감할 수 있다. 주변 도로가 나 있는 지표면에 비해 거의 백미터에 이르는 깊이로 분화구는 깊게 패여 있다. 이것이 응회환 중에서 마르 분화구의 본 모습이다.

하논 마르는 지하로 깊게 패여 있기 때문에 화구벽 안쪽에서 다양한 지하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하논은 분화 당시에 기존에 분포하고 있던 암반을 부수며 폭발했다. 각시바위 조면안산암이라고 부르는 용암의 노두가 관찰된다. 탐방객센터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분화구 바닥 가까이에서 관찰되는 암석이다. 이 용암은 한라산 조면암이며 76,000년 전에 분출한 용암이다. 그러니까 화논 분화구는 이 용암을 뚫고 분출한 것이다. 그 위에는 하논 응회암이 5070 미터 두께로 분포한다. 응회암층은 층리를 보이며 화산재를 위주로 하나 암편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 화산쇄설암이라는 용어가 있다. 수월봉 화산쇄설층이란 표현을 아직도 쓰고 있다. 응회암은 무엇이고 화산쇄설암은 무엇인가. 화산쇄설암은 한자 뜻대로 하면 화산 물질이 부서진 부스러기라고 할 수 있다. 온전히 일본식 한자이고 일본 지질학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반면 응회암이란 화산재가 굳어진 화산물질을 통째로 가리킨다. 화산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갈을 포함한 다양한 화산물질을 포함한다. 수월봉 노두에서 보면 아름다운 층리 구조를 보이는 화산체 단면에 엄청나게 큰 바위덩어리들도 밖혀있지 않은가. 이러한 화산재를 주체로 한 화산퇴적층을 응회암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터프(tuff)라고 부른다. 화산재의 총칭이다. 일본에서도 쓰지않는 용어를 우리가 아직도 쓰면 되겠는가. 앞으로 수월봉을 비롯한 수성화산 퇴적층은 모두 응회암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하논 분화구 분출시에 용암은 분화구 안에서 시추를 통하여 확인된다. 지하 415 미터 사이에 용암이 분포하고 있다. 분화구 내에 고여있는 용암의 형태이다. 분화 당시에 용암 호수를 상상하면 된다. 특이하게도 하논 마르는 분화구 안에 화구구(火口丘)를 갖고 있다. 보롬이라고 부르는 알오름이다. 보통 마르 분화구에는 화구구가 없다. 유독 제주에서만 수성화산 활동시에 육상화산으로 전환되는 화구구가 존재한다. 송악산에서 보면 수성화산임에도 불구하고 화산체 중앙에 완벽한 형태의 분화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제주 수성화산의 특징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논 주변의 서귀포 해안지역은 수십만년 전의 오래된 지질로 되어 있다. 하논 분화구가 폭발하던 수만년 전에는 한라산조면암이 펼쳐진 넓은 호수의 저습지였을 것이다. 적어도 3만년 전에 하논은 분화했다. 당시는 빙하기였다. 직경 1 킬로미터가 넘는 대규모 분화구가 마르의 형태로 지하에 뻥 뚫렸다. 1만년 전까지 이어진 빙하 최성기에 이 곳은 퇴적의 장소였다. 당시에 식물들의 화분과 포자가 분화구 바닥에 켜켜이 쌓인다. 황사와 같이 바람에 날리는 모든 물질이 이곳에 퇴적되었을 것이다. 다른데로 도망갈 일이 없으니까. 분화구 바닥을 약 15 미터 뚫어서 분화구 바닥의 퇴적물을 조사했다. 지하 약 3 미터 아래에서 12,000년 전의 빙하기 식물의 꽃가루(화분)가 출토되었다. 빙하기 당시 평균기온은 3도 였다. 빙하기 당시 제주도를 비롯한 주변지역에서 빙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빙하기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고 있었을까? 유일한 단서는 화석인데 이는 모두 하논 분화구 속의 퇴적층 속에 저장되어 있다. 고기후를 연구하는데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오백년 전까지 이곳에 호수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 분화구는 호수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하논에서도 분화구 바닥 북측에서 용천수가 흘러나와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몰망수와 같은 풍부한 용천수 때문에 논농사가 가능했다. 그러나 과거 조선시대에 호수였다는 기록은 없다. 불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복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북아일랜드의 자이언츠 코즈웨이에 간 적이 있다. 해안을 따라 주상절리가 절경인 곳이다. 1960년대 이곳에도 관광을 위한 호텔 건설이 추진되고 있었다. 영국 정부에서 관심은 별개였다. 영국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이곳을 사들였다. 단지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의 시작이었다. 하논 마르에서 정치는 필요없다. 개발은 절대 안된다. 이제 서귀포 시민들이 나서야할 때다. 서귀포시민들과 제주도민들이 힘을 모아 지역의 중요한 지질유산을 지켜야 한다. 하논 마르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최적지라고 본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 소장

 

하논 분화구 전경
하논 분화구 전경
하논 물방수, 풍부한 용천수 덕분에 논농사가 가능했다.
하논 물방수, 풍부한 용천수 덕분에 논농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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