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23) 이옥자 수필가

이옥자 수필가
이옥자 수필가

환경에 관심 가지고 강사가 되면서 나름의 원칙을 하나 세웠다. 자신 있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쯤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면목이 선다밥할 때 첫물은 버리고 두, 세 번째 물 삼다수 병에 70% 담고 EM10%에 설탕 한 숟가락 넣어 거꾸로 세워 두면 발효액이 완성된다.


이걸 모아두었다가 우영팟에 음식물 버릴 때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친환경 비누를 만든다. 폐식용유와 가성소다 그리고 발효액이면 너무나 훌륭한 비누가 탄생한다. 목욕은 물론 설거지용으로 일부 소비되지만 대부분 빨래할 때 사용한다. 손빨래는 몇 가지 이익을 남기게 한다. 물 아끼고 시간 절약에 운동할 걱정 덜며 친환경 비누 사용으로 자연에 기댈 수 있게 만든다.

단독주택 마당 있는 집이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새벽 빨래 방망이 소리는 우리 집 식구들 깨우는 자명종이다. 박박 비누칠하고 방망이로 힘껏 두들기는 동안 내 안의 잡념은 거품처럼 올랐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헹굼이 거듭될 때마다 맑아지는 물처럼 삶도 연륜이 더할수록 맑아지고 싶다. 마지막 헹굼은 식초 몇 방울 섞으면 섬유유연제가 무색해진다.

구겨지지 않게 탁탁 털어 젖은 빨래를 물 뚝뚝 흘리며 널어보면 알게 된다. 하는 일을 실제로 즐겁게 할 때, 현재의 순간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자신이 하는 일을 기쁘게 하는 능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고 빨래처럼 비누칠하고 먼지 털어내 헹궈 햇살과 바람에 바짝 말리면 덩달아 새로 태어난다.

햇살과 바람 없고 구름만 잔뜩 몰려 있으면 옷에서 냄새가 나는 듯 코를 옷에 박고 킁킁거리면 마음까지 흐려진다. 어쩌다 옥상에 빨래 널어두고 갑자기 비가 와 젖어 축 늘어진 옷들을 보면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을 원망해진다. 이불이나 카펫이 젖은 날엔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집에 있으면서 비가 오면 살펴봐야 정상아니냐고 눈 동그랗게 뜨고 한소리 했더니 우리 남편 말이 가관이었다. ‘비가 내게 신고하지 않아서 몰랐는데라고 미안함이 전혀 없었다. 빨래하고 널고 개고 하는 일은 오로지 아녀자의 몫이다.

아들이 결혼 준비할 때 여자로서 당부했다. ‘설거지와 빨래 널고 개기는 여자의 전용 일거리가 아니니 남자가 해줘야 사랑받는다라고 했더니 아주 당연히 청소까지는 물론 음식도 해야 사랑받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아주 슬펐다. 아들 낳고 기쁨의 눈물을 쏟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대우받는 세상이 된 것을 엄마로서 마음이 휑하여졌다. 세상이 변하여 당당하게 서로를 보일 수 있는 그들에게 이해 바랄 필요는 없다.

손빨래는 나름의 휴식이다. 새벽 기운이 눈과 코와 귀로 음미 되고 스며든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대해 우주가 내게 손길을 내밀어 준 것에 대해 저절로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당연한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고마운 마음은 더 커진다. 자기 몸 사용할 줄 알고 자기 몸의 주인이 되는 것 같아 대견해진다. 쪼그려 앉아 빨래할 수 있는 다리와 허리가 너무나 고맙다.

나이 들수록 몸 무사한 것에 고마움이 커진다. 작은 감사 속에 더 큰 감사를 만들어 내는 씨앗이 움튼다. 휴식을 잘하면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빨래는 꼭 하는 좋은 버릇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시어머니 소품에서 방망이와 빨판을 사용하며 늘 어려웠던 고부의 관계가 합리적 교류로 불행한 관계의 걷어차기로 골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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