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 년 이야기 (5)

범섬 전경
범섬 전경

 

서귀포 앞바다에 범섬, 문섬, 섭섬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너무 삭막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서귀포칠십리 해안은 이 세 개의 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섬은 모두 같은 종류의 암석과 지질로 되어 있다. 조면암의 용암돔(lava dome)으로 각각의 섬은 독립된 화산체이다. 하나의 오름이다. 마치 산방산과 같은 경우이다. 제주도가 대륙붕 상에서 화산활동으로 육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화산활동 초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00만년 전에 서귀포층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오래된 수성화산들과 함께 이 섬들이 만들어졌다. 80만년 전 이곳 서귀포 해안과 산방산 주변에서 조면암의 용암돔들이 만들어졌다. 제주도 형성 초기에 지질활동은 바로 이곳 서귀포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서귀포 앞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이 섬들은 모두 같은 모습이다. 조면암의 주상절리가 특징적이다. 주상절리는 바닷속에서 파도에 의해 침식 받은 결과이다. 주상절리 기둥에는 마치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여있다. 풍화혈 구조(tafoni)라고 한다. 염분을 머금은 바닷물과 바람이 만들어낸 암석의 풍화산물이다. 조면암 암벽의 깍아지른 섬의 지형에 대하여 섬을 한바퀴 돌아가며 파식대지가 발달한다. 파식대지는 파도가 만들어 놓은 구조이다. 이곳을 따라 섬 주위를 걸어다닐 수 있다.

범섬 해식동굴
범섬 해식동굴

 

범섬은 법환 마을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호랑이와 같이 생겨서 이름 붙여졌다. 80미터 높이의 깍아지른 절벽이 섬 주위를 돌아가며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섬에 올라가 보면 상부면은 평탄하다. 예전에 법환 마을 주민이 여기서 살았다. 우물은 물론 밭도 있다. 범섬 위로 올라가는 대정질에는 수직절벽의 암반에 쇠막뚝이 밖혀있다. 건장한 젊은이가 아니고서는 감히 이 쇠코쟁이를 붙잡고 암벽타기를 감행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곳이다. 이러한 절해의 자연적 요소를 이용하여 목호들은 이 섬에 최후의 보루를 마련했던 것이다. 법환 마을과 함께 범섬은 1374년 최영 장군이 목호의 잔당을 처단하여 몽고 지배 1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곳이다. 범섬은 높은 주상절리 해안단애와 함께 해식동굴이 일품이다. 범섬 콧구멍, 큰항문이도, 작은항문이도라고 부르는 해식동굴은 모두 규모가 웅장하다. 섬의 서편으로는 새끼섬을 달고 있다. 새끼섬은 경사진 침식면 상에 드러난 주상절리의 단면이 특히 아름답다. 섬 남쪽에 발달된 큰항문이도해식동굴은 크기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동굴 천장에서 보이는 주상절리 단면 역시 절경이다.

범섬 황개창의 풍화혈 구조

문섬의 하부에는 식생이 빈약한 반면 주상절리와 함께 풍화혈구조가 특징적이다. 연분홍으로 빛나는 조면암의 하부에 큰 구멍들이 숭숭 뚫여있다. 문섬 서편 황개창으로 배를 접안하여 섬에 상륙할 수 있다. 황개창은 황색 빛깔의 암반으로 된 작은 포구라는 뜻이다. 섬에는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보리밥나무와 큰보리장나무 군락이 있으며 흑비둘기 서식처인 후박나무도 자생하고 있다. 문섬에도 새끼섬이 있다. 수직으로 서있는 주상절리 기둥들이 일부 남아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마치 돛단배의 돛 모양과 흡사하다. 파식대지가 넓은데 이곳에서는 언제나 스쿠바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서귀포 연산호 군락을 스쿠바로 관람하는 최초의 장소가 여기다.

 

보목 마을에서 손에 잡힐것같이 섭섬은 가까이에 있다. 저녁 노을이 비추는 섭섬은 핑크빛으로 빛나는 조면암의 주상절리가 특히 아름답다. 주상절리 암반 아랫부부은 파식대지와 함께 암석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여있어 마치 벌레 먹은 나무와 같은 모습이다. 이는 풍화에 약한 조면암질 용암이 바닷속에 위치하고 있어 암석이 물리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풍화혈이다. 문필봉이라 부르는 섭섬의 뾰족한 봉우리들은 주상절리가 침식에 저항하며 견뎌서 남아있는 것들이다. 섭섬 서측에 배 대는 곳을 황개라고 한다. 이 계곡을 통하여 천연기념물인 파초일엽 자생지로 가는 작은 길이 나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파초일엽 자생지이다. 섬 속은 울창한 삼림지대를 방불케 한다. 섬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파르다. 해발 150여 미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마치 밀림을 탐사하는 것과 같다. 섬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담팔수나무, 아왜나무 등의 상록수림으로 덮여있다. 하층 식생으로 반쪽고사리, 가는쇠고사리, 홍지네고사리 등 많은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파초일엽 자생지 일대에는 특히 양치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 이곳을 걸어가다보면 노란색 뱀인 대륙유혈목이가 지천으로 발에 밟힌다. 천적이 없는지 수많은 뱀들을 보면서 섬에서 고립된 특이한 생태계를 떠올린다.

 

볼래낭개라고 부르는 보목마을 포구에 가면 자리돔이 넘쳐난다. 자리돔은 아열대성 어종이다.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종이다. 섭섬과 지귀도 인근에서는 자리잡이가 한창이다. 서귀포 앞바다가 자리돔을 비롯한 연산호 군락의 보고가 된 이유는 이들 섬들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남쪽으로 태평양으로 열려있는 서귀포 앞바다는 태풍의 길목이다. 따뜻한 쿠로시오 해류가 연중 공급된다. 여름철 태풍시에는 열대지방인 필리핀 해역에 사는 어종들이 플랑크톤과 함께 순식간에 이곳 서귀포 앞바다로 이동한다. 이들은 여기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서귀포 앞바다에서는 이렇게 남쪽바다로 부터의 선물인 다양한 열대성 해양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다. 아마 미기록종들이 족족 발견될 것이다. 이들 섬들과 주변 해역의 연산호 군락은 모두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모두 이곳 서귀포 앞바다를 북한계선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만 서식이 가능한 것이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한 이 해역은 우리나라의 보물이다. 특히 풍부한 해양생물과 종다양성은 이들 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제주화산체의 경계를 가늠해 보자.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는 화산체의 바다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 해저지형을 상정해야 한다. 바닷속 수심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한라산에 유출된 용암류는 어디까지 도달한 것일까. , 화산체의 규모는 어디까지일까. 서귀포 앞바다에서 점차 깊어지는 수심은 범섬 주변에서 130 미터에 이른다. 섬 주위를 돌아가며 형성된 골짜기가 존재한다. 여기까지가 제주화산체의 경계이다. 이 깊은 골짜기를 따라 조류는 흐른다. 서귀포에서 보면 들물은 동에서 서로, 썰물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매우 빠른 조류가 통과하는 지역에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지상에 드러난 섬의 모습만 보고 있지 그 아래 바닷속의 지형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서귀포 앞바다에서 섬들의 모습과 함께 바닷속 지형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이 섬들이 서귀포 연안 환경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따뜻한 남쪽나라, 서귀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경관 요소는 다름아닌 이 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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