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104)

신문에 오름을 하나씩 소개하는 나를 보고 어떤 이들은 내가 오름에 대해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것 저것 오름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내게 어느 오름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글쎄, 모든 오름이 다 좋지 뭐.’하며 얼버무리곤 한다. 그러나 사실 내가 좋아하는 오름이 몇 개 있기는 하다.

그 중에 하나가 어점이오름이다.

어점이오름은 그리 큰 오름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이어서 인위적인 때가 묻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나를 맞이해 주기 때문이다. 이 오름에 가면 나는 사람 사는 곳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다녀간 때가 거의 묻어있지 않는 순수한 자연 속에 한없이 파묻히다 오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점이오름이 어디에 있는 어떤 오름인지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제4산록교에서 바라본 어점이 오름
제4산록교에서 바라본 어점이 오름
어점이 오름 정상부 바위
어점이 오름 정상부 바위

어점이오름은 서귀포시 영남동 지경의 오름으로, 산록남로보다도 더 북쪽의 수림 속에 깊이 위치해 있는데, 주변의 오름과 기타 주요 지점에서부터의 직선거리는 아래와 같다.

시오름 정상에서부터 서북서 방향으로 약 1.8km, 법정악 정상에서부터 동쪽 방향으로 약 2.8km, 무오법정사 주차장에서부터 동북동 방향으로, 2.5km, 어점이오름 정상에서부터 산록도로 정남방 지점까지 약 2.2km

이 오름의 이름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름의 정상부에 큰 바위들이 많이 있음으로 보아 예전에 오름에 나무들이 많지 않았을 때에 멀리서 이 오름을 바라보면 정상부의 큰 바위들이 점처럼 보임으로 인하여 ()라고 하고, 그 앞에 어조사()를 넣어서 어점이로 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자로는 어점이악(於點伊岳)’으로 쓰고 있다. 실제로 산록남로의 제4산록교 다리 위에서 어점이오름을 바라보면 한라산 백록담 남서쪽에 맑은 하늘 아래 뾰조록이 솟아있는 작은 오름을 볼 수 있는데, 나무가 거의 없었을 당시에 이 오름을 바라보면 봉오리 위에 얹혀있는 큰 바위들이 하나의 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오름 동쪽 입구에 누군가가 등반로 입구를 안내하느라고 붙여놓은 코팅지에는 어재미 등산로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어점이오름을 부르는 발음이 어재미로 비슷하게 잘못 부른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점이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산록남로의 서귀포치유의 숲 입구에서부터 서쪽으로 산록남로를 따라 약 3km를 가면 제주아이브 리조트(Jeju I’ve Resort) 입구 삼거리에 이르며, (산록남로와 1100도로가 만나는 구 탐라대학교 사거리에서부터 산록남로를 따라 동쪽으로는 약 3.5km) 여기에서 서쪽으로 190m를 가면 북쪽으로 이어지는 소로 입구의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는 임도가 시작되는데, 걸어서 약 50분 정도를 올라가다가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을 만나서 관통하여 계속 북쪽으로 10분 쯤 더 올라가면 어점이오름 동쪽 기슭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약 7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둘째,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의 무오법정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오름 북쪽편까지의 중간 지점에 위 첫째 번에서 안내한 임도와 만나게 되고, 임도와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10분쯤 걸어가면 어점이오름 동쪽 기슭에 이른다.

어점이는 원추형 오름으로 자체높이는 45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오름이지만, 해발 높이가 820m에 위치한 오름이어서 주변은 온통 짙은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지 주변 가까이 있는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북쪽편에 있는 버섯재배장과 동쪽 기슭을 지나는 임도와 남쪽으로 지나는 한라산 둘레길 뿐이다. 동쪽에는 1.8km 지점의 시오름, 서쪽에는 2.8km 지점의 법정이오름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름으로 그 외에 주변에 다른 오름은 찾아볼 수 없다.

어점이오름은 원추형 오름이나 정상부가 ㄱ자로 휘어져 있는 부분부분에 큰 바위들이 가득 널려있고, 바위틈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바위를 감싸고 자라서 커다란 석부작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정상부에서 북사면의 경사가 약간 높으나 나머지 방향의 경사면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장마 날씨가 시작되기 직전, 맑은 날을 택하여 어점이오름을 다시 찾았다.

산록남로변의 어점이오름 방향으로 올라가는 임도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올라가기 시작하여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을 만나는 지점까지 약 45분이 걸렸다.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식히며 갈림길에 잠시 앉아있는데 마침 한라산 둘레길을 걷는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들이 주시는 사탕을 받아 먹으며 더위 먹은 기력을 회복했다.

그분들과 헤어지고 둘레길 갈림길을 지나 다시 10분쯤 오르자 임도 한쪽에 어재미 등산로라고 쓰인 조그만 안내판이 길가 나무에 묶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곳이 어점이오름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등반로 시작점이다.

그곳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어점이 오름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등반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도 않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었지만 휴대폰의 지도에 의지하고 지형을 살펴보며 정상부를 향하여 나아갔다.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지만 나뭇가지를 조금씩 헤치고 올라가는데 큰 장애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정상부에 오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5분여 만에 정상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정상부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이어지다가 다시 동서로 길쭉하게 이어진 지형에 큰 바위들이 상당히 많이 널려 있었고, 그 바위 주변과 정상부 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낙엽이 많이 깔려 있어서 편안하게 앉아 쉴 수도 있었다. 마침 화창한 날씨여서 나뭇가지 사이로, 낙엽 위로 비쳐드는 햇살이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싱그런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와서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금세 씻어 주었다.

이 정상부의 바위들이 이곳에 나무가 없었을 때는 멀리서 보았을 때 산 위에 점이 찍혀있는 것 같아서 점이라고 불렀고, 그 앞에 어조서가 븉어서 어점이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정상부 주변의 나무들을 살펴보았더니 가장 많이 보이는 수종은 동백나무였으며, 사스레피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굴거리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여느 오름에서 흔히 보이던 소나무와 삼나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면에는 천남성과 큰천남성, 그 외에 이름 모를 사초 종류들이 많이 보였다.

서쪽 기슭으로 내려가 보았다. 서쪽 기슭에도 수많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것이 보였는데, 정말 어점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오름이다. 서쪽 기슭에 잣성 돌담이 길게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잣성이 아마도 상잣성일 것으로 보이는데, 잣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에전에 이 일대까지도 목축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다시 정상부로 올라가서 굵은 나무 둥치에 기대어 푹신한 낙엽 위에 앉아, 싱그런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초여름의 산바람을 맞으며 19년 전인 2004년 끝 무렵 처음 이 오름을 찾았을 때 이곳에서 쓴 시 한 편을 다시 기억하여 읊어보았다. 주변의 산새들과 나무와 풀과 바위들이 모두 귀 기울여 내가 낭송하는 시를 듣고 있었다.

[어점이에서 ***** 한 천 민

깊은 숲길 따라 걸으면 / 가슴으로 스며드는 적막 / 까마귀 울음만이 적막을 깨는 돌길을 따라 / 어점이에 오르다 // 어점이에는 오르는 것이 아니다 / 어점이가 가슴으로 나를 맞는 것이다 / 그래서 내가 어점이에게 안기는 것이다 // 한라산 중턱 작은 점 어점이에서는 / 바람조차 숨을 멈춘다 // 이곳에는 / 온갖 지친 것들이 다 찾아온다 // 지폐 한 장 필요 없고 / 아옹다옹 다툼 없고 / 취하여 비틀거림 없고 / 삶의 지친 찌꺼기들이 / 따라오지 않는 곳이다 // 이곳에 혼자 앉으면 / 나 또한 작은 점인 것을 // 바위 위에 자라는 나무와 / 낙엽 틈새 돋은 이끼와 / 아직 흰 빛이 남은 잔설과 / 내가 / 모두 하나의 작은 점인 것을.]

 

위치 : 서귀포시 영남동 지경

굼부리 형태 : 원추형

해발높이 820.1m, 자체높이 45m, 둘레 784m, 면적 4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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