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의 마음시 감상(109)

능소화

정호승

 

동백도 아니면서

너는 내가 꼭

헤어질 때만 피어나

동백처럼

땅에 툭 떨어지더라.

 

너는 내가 꼭

배고플 때만 피어나

붉은 모가지만 잘린 채

땅에 툭툭 떨어져

흐느끼더라.

 

낮이 밤이 되기를 싫어하고

밤이 아침이 되기를 싫어하는

모든 인생은

점점 짧아지는데

너는 내가 꼭 넘어질 때만 떨어져

발아래 자꾸 밟히더라.

 

내가 꼭 죽고 나면

다시 피어나

나를 사랑하더라.

사진=pixabay.com
사진=pixabay.com

<마음시 감상>

시인 문상금

채 여름이 오기 전 붉은 꽃들이 한 무더기 피어났다, 늦은 동백인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능소화 꽃무리가 하늘하늘 피어났다. 한참 전 꽃 진 동백나무를 기대고 능소화 덩굴 꽃 가랑이 벌리고 아등바등 기어오르네. 무엇이든 타 감고 기어 올라가야지.

악착같은 능소화, 동백도 아니면서 너는 내가 꼭 헤어질 때만 피어나, 배고플 때만 피어나 붉은 모가지만 잘린 채 땅에 툭툭 떨어져 흐느끼더라.

모든 인생은 짧아지는데 너는 내가 꼭 넘어질 때만 하필 떨어져 발아래 밟히더라. 붉디붉게 짓밟히더라, 내가 죽고 나서도 다시 피어나 그 사랑하는 마음 꽃으로 보여 주어라.

툭툭 떨어져 되살아나는 통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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