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오름이야기(105)

요즘 제주섬 남서부 지역 교통의 중심지를 꼽으라면 당연히 안덕면 동광 마을을 들 수 있다. 동광 마을의 육거리는 사통팔달,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임에 틀림없다. 제주에서 대정을 연결하는 평화로, 한림과 창천을 연결하는 한창로로 지나고 있으며, 육거리는 북서쪽으로 제주, 북동쪽으로 한림, 서쪽으로 영어교육도시, 남서쪽으로 대정, 남쪽으로 창천, 동쪽으로 상천리와 연결되는 여섯 개 도로의 분기점이 됨으로, 명실상부하게 교통의 중심지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밝은오름 전경
밝은오름 전경
밝은오름 정상부
밝은오름 정상부

이 마을 바로 남쪽, 평화로와 한창로가 교차하는 지점 아래에 작은 오름 하나가 있는데, 이 오름이 밝은오름이다.

밝은오름이라고 이름 붙여진 오름은 제주시 해안동 지경의 밝은오름, 한림읍 금악리 지경의 밝은오름, 한림읍 명월리 지경의 밝은오름, 한림읍 상명리 지경의 밝은오름, 안덕면 동광리 지경의 밝은오름 등 5개나 된다.
그 중 안덕면 동광리 지경의 밝은오름은 안덕면 동광리 마을 근처의 평화로가 모슬포 방향과 서귀포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점, 동광육거리의 남쪽편에 위치해 있다.

▲환하고 밝게 보여 ‘밝은오름’
‘밝은오름’이라는 이름은 환하고 밝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벌근오름’이라고도 하는데, ‘벌근’은 ‘밝은’의 제주어이다. 한자로는 ‘明岳(명악)’이라 표기하고 있다.

밝은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동광육거리에서 서귀포, 창천 방향으로 약 750m를 가면 오른쪽으로 오름으로 들어가는 농로가 있으며,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넓은 굼부리에 도착하게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동광 육거리에서 남서쪽 모슬포 방향으로 동광로를 따라 약 280m를 가면 동광리 복지회관이 있으며, 그 앞을 지나 직진하여 다시 약 360m를 가면 동광로 92번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 삼거리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꺾어 내려가다가 평화로 아래 굴다리 2개를 연속으로 지나서 약 520m를 가면 오름 서쪽 기슭에 이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오름 정상부인 남서쪽 봉우리로 올라갈 수 있다.

▲밝은오름의 특징
밝은오름이라고 이름 붙여진 5개의 오름들은 모두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오름의 자체 높이가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오름들이며, 둘째는 모두 말굽형 오름이며, 셋째는 대부분 마을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오름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밝은 오름들을 탐방했을 때도 모든 밝은오름이 일부는 숲이 우겨져 있었고, 일부는 경작지, 혹은 묘지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아마도 나무와 나뭇잎들을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기에는 이 오름들이 모두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오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오름의 모습이 마을에서 바라볼 때에 사방이 환히 트여 드러나 보인다고 하여 ‘밝은오름’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동광 마을의 밝은오름도 자체 높이는 높지 않는 40m 밖에 되지 않으며, 북쪽으로 터진 넓은 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굼부리는 거의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어서 굼부리의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오름의 능선은 한창로에 면한 큰 도로 쪽에서부터 남쪽으로 휘어돌며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경작지가 조성되면서 끊어진 부분을 지나 다시 굼부리 북쪽으로 낮은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

▲풀숲 헤치며 오름 정상으로
이 오름은 마을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찾기 쉬운 곳에 있기는 하지만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로 특징이 있거나 경관이 좋은 오름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오름이다. 그래서 이 오름을 탐방하기 위해서 찾아갔을 때는 탐방로가 없어서 어디로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올라가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굼부리 안쪽으로 가서 오름의 모습을 살펴보고 경작지 안에 있는 묘지의 묘비들을 살펴보았다. 오름의 일부분은 개간되어서 나무 묘목들을 키우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었고, 일부는 묘지로 조성된 곳이 보였다. 묘지 조성 부분 외의 지역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작지 안에 있는 한 묘의 묘비는 최근인 서기 2000년에 세운 묘비로 이 묘비에는 東廣里 明岳이라 새겨져 있었으며, 또 하나의 제법 오래된 묘인 듯 보이는 淑夫人 金氏의 묘비에는 乙卯秋에 세웠다고 기록되었으며, 역시 이곳에도 明岳이라 새겨져 있었다. 묘비에 淑夫人이라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후반기로 짐작이 되므로, 을묘년을 서기로 계산해 보았을 때 1735년, 1795년, 1855년, 1915년 중 어느 해 일 것이다.

경작지를 지나 오름 동쪽 기슭으로 가서 올라갈 만한 지점을 겨우 찾아서 올라갔다. 우거진 풀숲과 가시덩굴들이 길을 가로막아 덩굴과 풀을 헤치며 올라가야만 했다.
동쪽 기슭에서부터 정상부를 향해 덤불을 헤치며 올라가던 중에 있는 淑夫人 淸州 韓氏의 묘는 2007년에 세운 묘비로, 이곳에는 안덕면 동광리 明岳이라 쓰고 괄호 하여 (밝은오름)이라고 새져져 있었다.

남동쪽 봉우리에 올라섰다. 봉우리 주변 숲은 발 디딜 틈 없이 우거진 각종 나무와 덤불들이 가득하였는데, 참식나무, 소나무, 팽나무들과 그 아래에는 까마귀쪽나무, 청미래덩굴, 찔레덩굴, 사스레피나무, 초피나무, 꾸지뽕나무, 쥐똥나무, 팔손이, 으름덩굴, 누리장나무, 보리밥나무, 가새뽕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바닥 면에는 여뀌, 천남성, 자금우들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담쟁이와 줄사철나무 등 덩굴 식물들이 커다란 소나무를 줄기줄기 감고 올라가 있었다.

남동쪽 봉우리에서 정상부인 남서쪽 봉우리를 향해 가는 길도 온통 덩굴이 우거져서 덤불을 헤치면서 천천히 올라가야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주변의 원물오름과 거린오름과 북오름은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마을에서 가까운 이 오름은 탐방로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마을에서 가까운 이곳에 탐방로를 만들고 우거진 숲속에 벤치 쉼터 등을 마련하여 오름 북쪽에 이미 조성되어있는 IUCN 기념숲 공원과 이어서 탐방을 하도록 하면 아마도 인기 있고 아늑한 마을 사람들의 쉼터와 휴식처가 될 것이다.’

우거진 숲을 헤치고 서쪽 정상부 쪽으로 빠져나오니, 북쪽 정상부 주변은 그리 넓지 않은 경작지가 펼쳐져서 진짜 밝은오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경작지에는 메밀을 심어서 메밀꽃들이 피어 있긴 하지만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메밀 줄기들 사이로 잡초들이 오히려 더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경작지 서쪽편 어느 지점에서는 갑자기 시야가 확 트여서 큰 나무들 사이로 북쪽편과 동북쪽 편의 오름들이 바라보였다. 한라산 정상부도 안개에 덮인 채로 흐릿하게 바라보였고 여진머리와 족은오름, 원물오름, 감낭오름, 믜오름들이 바라보였다.
서쪽 기슭으로 내려와 남쪽 기슭의 경작지를 따라 동쪽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름 북쪽의 IUCN 기념숲 공원을 찾아갔다.

IUCN은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이니셜로, 이 공원은 지난 2012년 제주에서 WCC(세계자연보전총회) 유치 시 제주도가 IUCN과 약속한 사업으로 19억9200만원을 들여 평화로와 한창로 등의 교차점 주변 6만7772㎥의 공한지에 조성한 공원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공원과 밝은오름을 연계하여 탐방로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려 집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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