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26)_송영미 수필가

송영미 수필가
송영미 수필가

세상이 물에 잠겼다. 눈물과 빗물이 뒤엉켜 삶을 잠식시킨다. 사는 게 뒤숭숭하다. 장마의 폭우는 괴물이라 칭할 정도다.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은 존재하기에 슬쩍 꼬리를 내린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보여 주는 빛의 파동에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축축한 마음을 말리려면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내 보폭만큼의 에너지이어도 좋은 기운이 파생될지 모른다. 누구를 의식하여 꾸미지 않아도 본래 모습대로 홀가분하게 걷는다. 하늘과 바다는 경계를 허물고 싶었는지 맞닿은 자국이 희부옇다. 저 광대무변은 작은 가슴팍 하나도 간수 못 하는 미물인 나를 거들어 주는가, 모처럼 가슴이 탁 트인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친다. 응어리가 부서져 허공으로 치솟을 땐 후련하다. 파도는 온갖 말을 하며 시름을 덜어내는데 나는 많은 말들을 가슴에 담아 두어 묵직하다. 진정성 없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관계 속에서 함구해 버린 일들이 꿈틀거린다. 걸으면서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려 하지만 쉬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으며 기분 좋았던 일과 머릿속에서 버무려 낸다. 중화시켜서 묵인할 건 과감히 묻어버리기로 한다.

커플 티를 입은 젊은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뒤처져 느리게 걷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사진을 찍는 그들은 햇살 한 줄기 들어갈 틈 없이 밀착된다. 힐끔 눈길이 닿았는데 눈이 부시다. 누가 뭐래도 젊음은 좋은 것이네.

얼마 전 심심풀이로 핸드폰 셀카를 찍었다.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삭제 키를 누른다. 디지털 세상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후로 사진 찍기가 싫어졌다. 축 처지고 있는 뺨을 손으로 슬쩍 올려 본다. 나도 풋풋한 시절은 있었는데, 다독이려 하지만 쓸쓸한 일이다.

파란색 화살표가 갈 길을 지시한다. 낯선 길이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하게 해주어 헤매지 않고 방향을 잡는다. 때로는 나무에 메어 놓은 끈을 보며 낯선 길을 추스르고, 주황색 화살표에 이끌려 되돌아가는 길이 불안하지 않다.

지난날 목표 지점은 아득한데 안간힘을 쓰며 끌어당겨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낮추지도 못하고 무지하게 달려들었건만 결국 이룰 수 없었다. 그 시절 누군가 올레길 표식처럼 나를 인도해 주고 이끌어 주었으면 먼 길을 돌아오느라 힘들지 않았을 텐데.

깎여지고 부서진 인고의 세월을 껴안고 서 있는 바위들. 저 절대 고독 앞에 나는 아직 살만하지 않은가. 발길을 옮기니, 자연이 빚어놓은 장관을 안전하게 볼 수 있도록 철책으로 빙 휘감아 놓았다. 파도의 탄식이 머물러 협곡을 이룬 지점에 눈길이 닿는다. 소용돌이는 온데간데 없고, 평정을 이룬 초록빛 물의 깊은 속을 가늠하기엔 나는 얄팍하기만 하다. 아득한 벼랑 끝에 서서 후들거린 시절도 있었다. 저 철책처럼 나를 둘러싼 신의 구원이 있지 않았는가. 신의 자비로 여기까지 다다랐으니 감사한 일이다.

버겁지 않은 길을 가뿐하게 걸었다.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또 다른 계획을 구상한다. 오늘 같은 날은 귀빈처럼 나를 우대해 주련다. 과대 포장은 싫지만 때로는 격식을 차리고 싶다. 잘 차려진 정찬으로 마음부터 충만해진다. 식당 안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가끔은 이렇게라도 사람들을 만나면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아도, 외양으로 그들 관계를 짐작하며 주섬주섬 들려오는 이야기에 심심치 않다.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한 사람 삶이니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따뜻한가.

돌아오는 길, 바람에 꺾이지 않으려 땅에 납작 엎드려 핀 풀꽃의 지혜도 만난다. 파르르 떨며 비바람을 견디는 강인함에 햇살이 따사롭게 힘을 보태준다. 이름을 몰라도 꽃이기에 마음으로 부르고 눈으로 응시한다.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피어 있다. 오가는 올레꾼들의 발길에 행여 짓밟힐까 봐 가시덤불이 보호자가 되어준다. 얼마나 애잔한가. 나 누구에게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내어준 적 있는가.

수해 현장의 참담한 현실을 견디는 이들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사소한 일 앞에서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뉴스 속, 침수 장면이 섣부른 말은 하지 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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