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

요즘은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비 내리는 날이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엔 한라산에 엄청난 폭우가 내리기 도 했다. 그래서인지 서귀포 엉또폭포를 보려는 많은 구경꾼이 한꺼번에 몰려 폭포 입구엔 폭포만큼이나 엄청난 차량 행렬이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엉또폭포 특성상 순간을 놓치면 기 회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오면 무조건 떠오르는 쇼팽의 Prelude in D flat major Op.28 No.15 일명 ‘빗방울 전주곡’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여태껏 비 가 와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없는 명곡이다. 게다가 이 곡을 말할 때 쇼팽과 조르즈 상드와의 사랑 이야기를 뺀다면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방이 아닐 수 없다.

쇼팽은 당대 최고의 스타 피아니 스트인 리스트와도 매우 절친한 사이였는데 리스트의 연인이었던 ‘마 리다구’ 부인의 살롱에서 조르즈 상 드를 처음 만나게 된다. 처음엔 그저 그런 사이였지만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친 2년 후 드디어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쇼팽보다 6살 연상인 조르즈 상 드는 당시 두 아이의 엄마였고 매우 화려한 연애 경력이 있었던 터라 파리 사교계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쇼팽과의 열애를 반기지 않았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폐결핵을 앓던 쇼팽은 사람들의 눈도 피 하고 요양도 할 겸 스페인의 마요르 카섬으로 떠나게 된다.

행복한 날들 을 기대하며 떠났지만 마요르카섬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다지 날 씨도 좋지 않았고 주민들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 쇼팽은 정신적 육체 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거기에 이미 도착했어야 할 피아노마저 세관 문제로 인해 늦어지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르즈 상드는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게 되는데 마 침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막혀버리고 만다. 쇼팽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상드를 그리워하며 이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쇼팽이 세상을 떠난 6년 후 조르즈 상드는 자신의 일화가 담긴 자서전을 썼는데 그 속에 이런 글이 담겨 있다 고 한다. ‘나는 쇼핑을 하기 위해 아들 모 리스와 함께 외출했다. 그런데 비가 매우 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난 급류로 길이 모 두 막혀버렸다. 그래서 돌아오느라 평소보다 몇 시간 늦게 집에 도착 했다.

장대같이 내리는 비가 지붕의 기왓장을 요란하게 때리고 있었다. 쇼팽은 아주 슬픈 표정으로 피아노에 앉아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피아 노를 치고 있었다. 그는 눈물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 비에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소.” 이처럼 빗방울 은 쇼팽의 가슴속에서 눈물로 변했 던 것이다.’ 참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사실, 이 때 쇼팽이 쳤던 피아노곡은 15번 곡 이 아닌 6번 곡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근거 로 6번 곡과 도입부가 비슷한 15번 곡에 ‘빗방울 전주곡’이란 부제를 붙였다고 한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했던 쇼팽은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유언대로 그의 심장만이 조국으로 돌아와 성 십자가 교회에 묻혔다. 이렇게 보면 슈만도 그렇고 쇼팽도 그렇고, 천재들은 그리 행복 한 삶을 살진 않는 것 같다. 물론 극히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벌써 열 번은 족히 넘게 반복되는 것 같다. 짧은 빗방울 전주곡이….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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