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106)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된 길고 긴 금년 장마가 끝나자마자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도시와 마을들은 푹푹 찌는 더위에 헉헉대고 있었지만, 장마 기간 동안 물을 흠뻑 먹은 나무와 풀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초록빛 바람을 불어주고 있었다.

오름 마니아인 나는 싱그러운 초록빛 바람이 불어오는 오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남산봉 전경 
남산봉 전경 

성산읍 신풍리 지경의 남산봉.

남산봉은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지경의 오름으로, 표선면 성읍리에서 중산간동로를 따라 성산읍 삼달리 방향으로 가는 중에 천미천을 지나면 도로 남쪽으로 곧바로 보이는 오름이다.

남산봉은 성산읍 신풍리 지경에 속해있지만, 거리상으로는 신풍리 마을보다는 성읍리 마을에 더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신풍리 사무소에서부 남산봉 정상부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3 km이며, 성읍1리 사무소에서부터 남산봉 정상부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5 km이다.

남산봉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때 정의현(旌義縣)의 현청이 소재하고 있던 곳이 현재의 표선면 성읍리인데, 성읍리에서 보았을 때 이 오름이 남쪽에 있었음으로 인해(실제 방위로는 정의현청인 일관헌에서 볼 때 남동쪽 방향임) ‘앞산또는 남산(南山)’이라 불렸으며, 이 오름에 봉수가 설치되어 있음으로 하여 남산봉(南山峰)’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봉수대에서 망을 보았던 곳이라 하여 망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정의현에서는 이와 더불어 영주산을 뒷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오름에 설치되었던 남산봉수(南山烽燧)는 동쪽의 독자봉수(獨子烽燧), 남쪽의 달산봉수(達山烽燧)와 교신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정상부에는 남산봉수 터가 남아 있다.

남산봉을 찾아가는 길을 신풍리 사무소와 성읍1리 사무소를 기점으로 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산읍 신풍리의 신풍리사무소 앞 사거리에서부터 풍천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450m를 가서 신풍교차로 사거리에 이르면, 북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남산봉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여 약 3km를 가면 신풍레포츠공원 북쪽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서쪽으로 꺾어 들어 농로를 따라 약 520m를 가면 남산봉 탐방로 입구에 이른다.

둘째, 표선면 성읍리의 성읍1리사무소 앞 성읍민속촌 교차로에서부터 중산간동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1km를 가면 남산교 다리에 이른다. 다리 동쪽편에서 냇가를 따라 이어진 소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690m를 가면 오름 서쪽의 삼거리에 이르고, 여기서 동쪽으로 꺾어 들어 오름 남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약 380m를 가면 남산봉 탐방로 입구에 이른다.

남산봉은 전체적인 모양은 약간 타원에 가까운 둥그스름한 모양의 오름으로, 북쪽에서 바라보면 동쪽의 정상부에서부터 북서쪽으로 차차 낮아지다가 북서쪽 봉우리가 약각 볼록하게 보이며, 서쪽의 천미천 너머에서 바라보면 가운데가 약간 볼록하고 좌우로 점차 완만하게 낮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부는 현재 봉수대 터가 남아있는 남동쪽 봉우리이며, 가운데의 원형 굼부리 좌우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점차 낮아지다가 오름 북쪽 능선에 이르러 가장 낮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굼부리는 원형으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굼부리 안쪽은 대나무가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어 우거져 있다.

굼부리를 제외한 오름 전 사면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사스레피나무, 까마귀쪽나무, 식나무, 생달나무 등이 혼효림을 이루고 있고, 큰 키 나무 아래의 지면에는 자금우가 가득 깔려 자라고 있다. 현재 이 오름에는 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 탐방로의 대부분에서 주변 경관을 거의 볼 수 없다.

남산봉 주변의 오름으로는 북쪽으로 영주산, 동쪽에 본지오름, 북동쪽에 모구리오름, 남쪽에 거린오름과 아슴선이 등이 이웃해 있으나 우거지 나무들로 인하여 이 오름에서 주변 오름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남산봉은 그리 높은 오름은 아니지만 주변이 편평한 평지에 솟아있는 오름으로, 나무가 우거지지 않았을 때에는 오름 위에 서면 사방이 환히 보이는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현청이 있는 성읍 마을에서 매우 가까이 있는 오름인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봉수대가 세워져 있었다.

봉수대가 세워져 있었던 대부분의 오름들이 해안에서 3km 이내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름들인 반면, 남산봉수는 가장 가까운 해안에서 약 6.2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세워져 있었던 까닭은 해안 감시보다는 다른 봉수로부터의 신호를 정의현청으로 빨리 전달하기 위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산봉수는 1439(조선 세종 21) 이전에 설치된 정의현 소속 봉수이며, 별정 6, 작군 12명이 교대 근무하였다고 하며, 동쪽으로는 3.9km의 독자(獨子)봉수와, 남쪽으로는 직선거리 4.5km의 달산(達山)봉수에 응신하였다고 한다.

현재 남산봉수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는데, 중심부에서 반경 14.3m 거리에 둑을 돌아가면서 고랑을 두어 이중으로 쌓고, 다시 한 단 높게 반경 16m, 높이 2.5m의 봉우리 모양으로 흙으로 쌓아올린 두 겹의 원형 봉수대이다.

남산봉 탐방을 하기 위해 오름 남쪽의 탐방로 입구로 들어서자, 입구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안쪽에는 넓은 풀밭 공터가 있어서 차를 세우기에 매우 좋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어서 나무 그늘에 차를 세워두고 본격적인 탐방을 시작하였다. 탐방로가 시작되는 곳에는 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올라가기에 어려움이 없었으며, 탐방로 전체가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는 때이지만 탐방로로 들어서자 우거진 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람이 솔솔 불어 시원하고 쾌적하였다. 나무 계단을 올라서 걸어가노라니 경사가 완만한 지점부터는 야자 매트가 깔려 있었고, 삼나무와 소나무 등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탐방로 주변 지면에는 자금우가 가득 깔려 자라고 있었고, 조개풀과 도둑놈의갈고리, 제주조릿대들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7~8분 정도를 걸어 올라서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길은 봉수대가 있는 정상부로 향하는 길이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갔다. 갈림길에서 봉수대까지는 약 110m 정도였다.

봉수대에 이르니 비가 많은 장마철을 지나고 나서 그런지 봉수대 위와 주변이 온통 길게 자란 풀들로 풀밭을 이루고 있었지만, 봉수대는 목책으로 둘러져서 잘 보호, 보존되고 있었다. 봉수대가 제 역할을 하고 있었을 조선시대에는 주변에 나무가 없어서 사방 조망을 훤히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주변 경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봉수대를 지나 다시 북쪽으로 걸어갔다. 온통 숲으로 이루어진 탐방로는 북쪽으로 걸어감에 따라 점점 경사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아 걸어가고 있는 탐방로의 서쪽편에 굼부리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빽빽하게 우거진 숲으로 인하여 굼부리의 모습은 전혀 내려다보이지 않았다.

가장 북쪽 편 지점에 이르자 트레킹 코스 지도가 세워져 있었고 탐방객들이 쉬어 가라고 평상이 놓여져 있었고, 굽부리 안으로 들어가는 탐방로와 북쪽으로 이어진 탐방로가 있었다.

먼저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굼부리 안쪽은 대나무가 온통 우거져서 대나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원래의 탐방로로 다시 돌아와서 굼부리 서쪽편 능선을 따라 이어진 탐방로를 따라 걸어갔다. 서쪽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는 탐방로는 동쪽편과는 반대로 올라갈수록 경사가 점점 높아졌다.

먼젓번의 갈림길에 거의 이르렀을 즈음에 평상이 놓여 있어서 그곳에 잠시 앉아 그 동안 흘린 땀을 식히고 다시 내려갔다.

처음 올라올 때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더니 굼부리 둘레를 따라 탐방로를 한 바퀴 도는 동안에 바람이 나를 따라오지 않아서 후텁지근하고 땀이 많이 났다.

탐방을 마치고 차에 앉아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켜니 그제야 가슴 속으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위치 :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지경

굼부리 형태 : 원형

해발높이 178.8m, 자체높이 54m, 둘레 1,660m, 면적 18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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