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 년의 이야기 (8)

화순 마을의 옛이름은 ‘벗내’다. 안덕계곡을 포함하여 창고천 하류의 물이 흐르는 구간을 가리킨다. 지금의 창고천을 예전에는 벗내라고 불렀다. 창천리는 말그대로  창고천을 줄인 말이다. 그러니까 창고천 하류의 화순리, 감산리, 창천리는 모두 이 하천과 관련된 마을 이름을 갖고 있다. 그만큼 예전에는 하천이 중요한 자연 자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도내 일주를 했는데 당시 유명 관광지라고 하여 둘러보던 장소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제주시에서는 용두암을 가서 용연의 구름다리를 신기하게 건넜던 기억이 있다. 김녕사굴을 갔는데 당시는 만장굴 대신에 사굴을 개방했던 시기였다. 서귀포시내의 천지연폭포는 제주도에서 최고의 관광지였다. 당연히 지삿개 주상절리와 같은 곳은 없었다. 안덕계곡은 당시 유명 관광지로서 반드시 방문하는 장소였다. 이 주변에서는 안덕계곡과 산방산을 방문했다. 

더운 날씨에 예전 계곡의 풍치도 볼겸하여 안덕계곡에 다녀왔다. 산천은 의구한데 방문객은 별로 없었다. 한산한 생태관광지였다. 그도 그럴것이 계곡을 흐르는 하천수가 뿌옇게 오염되어 있었다. 우리 마을의 관광지를 보존함으로써 관광은 영위되며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 하수를 처리해야 한다. 더구나 이곳 안덕계곡은 올레 9코스의 대부분을 지나는 곳이며 국가지정 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377호(안덕계곡 상록수림지대)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문화재 지역에 하수가 흐르고 있다니. 

▲응회암 뚫고 생성된 창고천

창고천은 1100도로변 삼형제오름 앞의 고산습지인 숨은물벵듸에서 발원한다. 한대오름 앞의 급경사면을 굽이쳐 흐른다. 서쪽으로 흐르다 나인브릿지 골프장 아래 화전동 마을인 솔도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평지에서 오름군에 막혔기 때문이다. 광평리를 지나며 핀크스 골프장을 관통한다. 병악오름 옆 상천리를 거쳐 줄곧 남쪽으로 향한다. 창천리를 거쳐 안덕계곡으로 하여 황개창에서 바다와 만난다. 건천으로 이어져 오던 하천은 창천리에서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변한다. 

창고천의 지질은 안덕계곡에서부터 하류지역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 오래된 응회암과 조면안산암을 뚫은 하천의 발달, 하천 주변에서 특징적인 화산체인 군산, 월라봉, 병악과 같은 오름의 존재, 발원지 부근에 형성된 고산습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하천은 창천 마을을 지나며 방향을 틀어 안덕계곡을 향한다. 
이는 대규모의 화산체인 군산과 월라봉 때문이다. 실은 군산과 월라봉의 산기슭을 따라 흐르고 있다. 때로는 조면안산암의 암반과 오래된 응회암을 거센 유수의 작용으로 뚫으며 하천은 바다로 향한다.

월라봉은 아주 오래된 조면암으로 86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조면암의 화산체는 80만년 전의 산방산과 82만년 전의 가파도가 있다. 안덕계곡과 군산을 구성하고 있는 조면안산암도 역시 오래된 암석이다. 이 용암에 관련된 응회암이 하천 주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 두꺼운 응회암을 뚫고 하천 유로는 만들어졌다. 거의 수직의 좁고깊은 계곡을 만들고 있다. 창고천 하구 부근에서는 노두의 대부분이 응회암으로 되어 있다. 

20여년 전, 하천을 조사한 적이 있다. 한라일보에서 주관하는 한라산대탐사의 일환으로 하천을 직접 걸어서 탐사하기로 한 것이다. 강문규 기자가 기획한 일이었다. 5년간 탐사단에 동행하여 16개의 하천을 하류에서 발원지까지 걸어서 조사했다. 조사단에는 식물학자인 김찬수 박사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동행했다.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천 주변의 역사문화 자원은 물론 지질과 생태자원을 동시에 조사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조사를 같이 하게 되어 좋은 점이 많았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조사하는지, 현장에서 자기 분야의 이론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은 새로운 시도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학제간의 연구를 통한 지역학의 근간이 마련된 일이었다. 창고천을 걸으면서 하루는 인근 군산 정상에 올랐다.

마침 이른 봄이어서 그런지 한라산에 영실 분화구에 하얀 눈이 쌓여 둥그렇게 보였다. 매우 뚜렷했다. “저것은 영실이 화산 분화구라는 증거입니다.”라고 무심히 말했다.

나는 당연히 알고있던 사실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기자에게 알려줬을 뿐이다. 다음날 한라일보에 영실은 분화구라고 하는 기사와 함께 사진이 떴다. 기자의 촉이란 이런것인가. 무심하게 말한 것이 기자에게는 새롭게 들리는 모양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하천 조사를 갔는데 비가 많이 와서 하천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당시 강만생 편집국장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우선 점심 먹고 바닷가에라도 가보자고 하여 찾아간 곳이 갯깍 주상절리 였다. 갯깍 주상절리는 이렇게하여 지상에 보도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예전에 서기 1002년의 분화는 비양도이고 1007년의 분화는 군산이라는 말이 있었다. 군산은 실은 아주 오래된 화산체이다. 수십만년 전에 분출한 화산이다. 군산 남쪽의 바닷쪽으로 난 계곡에 가보면 엄청난 규모의 응회암을 볼 수 있다. 응회암의 부서진 부스러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까맣게 빛나는 각진 광물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쉬타이트라고 하는 광물이다. 과거 일본인 학자들은 도내 곳곳을 조사하면서 동네사람들에게서 설화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전설로 전해지던 비양도와 군산의 이야기는 이렇게 하여 소개된 것이다. 

▲창고천 하구 황개창
창고천 하구인 황개창에서는 바닷가로 내려가서 박수기정 아래로 가볼만 하다. 오래된 암석과 함께 주상절리가 볼만하다.

황개창 인근 화력발전소 증설공사에 따른 발굴조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다. 고고학자인 김경주 연구원이 쓴 발굴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곳 황개창 주변은 초기 철기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었다. 아마 하천 주변에 형성된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았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올레코스를 따라서 걸어도 좋지만 황개창에서부터 안덕계곡까지 물길을 따라 걸어올라 보기를 권한다. 

물이 흐르는 하천 계곡은 아름답다. 응회암을 침식시키며 만들어진 하천 바닥과 함께 참게를 비롯한 다양한 담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소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선인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로 마애각도 찾아볼 수 있다. 암반을 정으로 뚫어서 물길을 내어 논농사를 가능하게 했던 김광종의 공덕비도 하천변에 있다. 안덕계곡의 주상절리 암반과 바위그늘집자리 유적이라고 하는 하식동굴도 볼 만 하다. 하천 현벽의 암반에서는 용천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발원지는 어떤가. 

예전 조사 당시에 걸어서 한대오름을 오르니 습지와 함께 주변에 표고버섯 재배장이 있었다. 영실 아래로 이어진 곳이었다. 한대오름 습지로하여 삼형제오름과 노로오름 사이의 고산습지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기가막힌 절경의 고산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곳도 있었구나하며 1100도로 탐라각 휴게소로 탈출한 적이 있다. 이제와서 보니 이곳이 숨은물벵듸였다. 

이렇게 창고천은 지질학 뿐만아니라 역사문화가 흐르는 생태곳간이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월라봉 황개창의 주상절리
월라봉 황개창의 주상절리
안덕계곡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