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100만년 이야기 (9)

산방산 용암돔과 용머리 응회환
산방산 용암돔과 용머리 응회환

산에 방이 있어 산방(山房)이라 했다. 산방굴사가 방인 셈이다. 산세가 영험하니 산이라고 따로 불렀다. 산방산의 어원이다. 

제주시에 살고있는 나는 주말마다 노부모를 방문하기 위하여 차를 몰고 서귀포 고향으로 간다. 한시간 정도 운전하고 가는 길은 꽤 먼 귀향길이다. 육지에서 라면 추석이나 설 명절에 서울에서 고향가는 길에 비길만 하다. 정체로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녹초가 되는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같은 느낌이다. 

평화로를 달리며 한라산을 비껴 넘어서면 원물오름 아래로 남쪽 바다가 펼쳐진다. 먼저 바다 앞에 웅장하게 우뚝 선 암석 덩어리 산체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산방산이다. 바다는 눈부시게 빛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들어선 느낌이 물씬하다. 이때부터 마음은 벌써 고향을 느낀다. 산방산은 절경이다.

하나의 암석 덩어리가 사계리 해안평야에 우뚝 서있다. 경이로운 화산 풍경이다. 나는 여기에서부터 화산을 느낀다. 
보통 사람들에게 제주가 화산이라는 사실을 어디서 느낄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는 일단 머뭇거린다. 이들은 화산을 직접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화구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시뻘건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 폭발 장면을 한번도 체험한 적이 없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는 하와이와 같은 활화산지대의 멋진 장면을 본 것이 전부다. 

이들은 화산폭발 장면을 보면서 매우 웅장하고 아름답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화산이 폭발하는 곳은 완전 지옥이다. 지옥과 같은 그림을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보고 있다. 실제로 제주에서도 1000년 전까지는 이런 활화산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페이스북에 페친이 이런 내용을 올렸다. ‘한라산은 활화산이며, 다시 폭발할 수도 있다’라는 중앙지 기사에다가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둥.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람은 보통 학술적인 내용에 몰입하다보면 그 속으로 빠질 수 있다. 학술적인 내용과 현실적인 사회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나 지질학은 인간세계와는 전혀 다른 46억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시간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지질학적 시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간의 과학인 지질학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활화산이라는 정의가 최근 만년 이내의 화산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지하 깊은 곳에 마그마방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지질학계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야할 사항이다.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기사화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학문과 매스컴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가까이하면 안된다. 10여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백두산이 곧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지질학자들의 주장으로 백두산 아랫마을인 이도백하에서는 건설 중에 있던 관광호텔 공사가 멈춰섰다. 지금도 앙상하게 골조만 남아있다. 수년내에 폭발한다고 하는 화산은 아직까지 터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학술과 실제의 차이다. 물론 백두산은 지하에 살아있는 마그마가 존재하고 있어 조만간 폭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도 과거 1000년 전의 대규모 폭발을 운운하며 영화까지 만들며 공포감을 조성할 일은 아니다. 다만 화산은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영향은 화산체 주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제주 한라산은 화산폭발의 징후가 전혀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서 화산폭발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한라산과 같은 제4기 화산은 보통 화산활동 후에 지하가 급격히 식어버리는 특징이 있다. 제주도가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지하수인 시원한 삼다수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간혹 사람들이 온천 가능성에 대하여 물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주는 근본적으로 지하에서 마그마에 의한 온천은 불가능하다. 

▲바위에 뚫린 구멍, 풍화혈

산방굴사로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조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 바위에 큰 구멍이 뚫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풍화혈(tafoni)이라고 한다. 암석 표면이 마치 벌레가 먹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하다. 바닷물과 바람이 만들어 놓은 풍화의 결과물이다. 차별침식으로 한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만들어 놓은 구조이다. 가까이가서 보면 주변에 마치 시멘트 가루와 같은 암석 부스러기인 돌가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풍화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굴사는 산방산 중턱의 해발 150미터에 있다.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하는 물방울이 암석 틈에서 똑똑 떨어지고 있다. 풍화혈을 만드는 과정을 이 물방울이 가속화 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큰 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굴을 해식동굴이라고 했다. 제주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과 이곳을 걸어올랐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해식동굴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만약에 해식동굴이라고 한다면 150m를 산방산이 융기해야만 한다. 융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풍화혈 앞의 돌가루와 함께 굴사 절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각이 결정적이었다. 
명승지인 이곳 굴사에는 많은 이들이 방문한 후에 암벽에다 마애명을 새겨 놓았다. 그 마애각이 풍화를 받아 글씨가 반쯤 닳아 없어진 것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수백년이라는 세월에 이 정도의 풍화 속도라면 굴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해식동굴은 파도에 의해 해안선 부근에서 형성된다. 만약에 해식동굴이라면 굴사는 150m를 융기해야만 한다. 그런 흔적은 없다. 대신에 산방산에는 대규모의 수직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주상절리는 파도가 치는 바닷가여야 한다. 그래야 주상절리가 기둥으로 무너지면서 저런 단애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산방산은 과거 80만년 전에 형성 당시에는 바닷속에 위치하고 있었구나. 마치 지금의 범섬, 문섬, 섭섬과 같이. 

서귀포 앞바다의 이 섬들과 함께 오래된 조면암체는 산방산 주변에 월라봉과 가파도가 있다. 82만년 전에 만들어진 가파도는 86만년 전의 월라봉 앞 박수기정과 산방산과 달리 평평한 섬이다. 조면암체라면 산방산, 월라봉과 같이 덩어리의 높은 언덕이어야 되는데. 실은 가파도도 어느 정도의 산체를 갖는 둥그런 화산체 였다. 해수면변동에 의해 파도가 섬을 덮쳐 평탄하게 깍아놓은 결과이다. 가파도 위에 놓여 있는 고인돌과 같은 거석들도 실은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해수면에 의해 이동된 바위일 가능성이 높다. 

제주의 아름다운 화산 경관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지질공원이다. 제주도 곳곳에서 한라산과 오름과 같은 화산 경관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최고의 화산 경관을 말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산방산과 성산일출봉을 말하겠다. 산방산은 제주도 서남부에서 어디에서라도 조망 가능한 조망점이다. 성산일출봉도 동쪽해안에서 마찬가지다. 점성이 높은 조면암의 덩어리가 400미터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붉은 용암으로 뒤덮였던 모습을 상상해 보라. 2011년 명승으로 지정된 산방산 용암돔은 제주 최고의 화산 경관이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산방산 풍성퇴적층의 자세
산방산 남동사면에서 관찰되는 주상절리대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