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의 마음시 감상(112)
고추잠자리
윤강로
녹슨 철조망 몇 가닥 걸린 말뚝에 고추잠자리 앉았다
고추잠자리 눈 감고 있다
가만가만 다가가서 집게손가락으로
잡으려는 순간,
고추잠자리 살짝 떴다 빈 손가락이 무안했다
푸른 허공에 고추잠자리 떼 휙휙 휘파람 불면서
활공하는 밝은 풍경,
고추잠자리 날개가 햇살의 살갗처럼 투명하다
언제나 그랬다
무언가 놓치거나 실패하면 재빨리 체념하고
허공을 보았다
그렇게, 깨끗하고 배고팠다
나의 아름다운 실패
고추 잠자리야
<마음시 감상>
문상금
흰 벽을 향하여 아직 어린 고추잠자리 한 마리 헛날개짓 한다, 길을 잘 못 들었구나, 체념하기는 아직 이르다, 또다시 날개에 힘주고 날아올라보지만 흰 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떨어진다. 끝내 살짝 잡아서 푸른 하늘로 날려 보내 주었다.
늦여름부터 간혹 한두 마리 눈에 띄는 고추잠자리를 관조하며 서서히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그 여리고 투명한 날개들의 퍼덕거림은 때론 평화롭게 때론 위태하게 때론 치열하게 다가오곤 했다, 아마도 목숨을 건 비행일 것이다.
가을 하늘 날아오르는 고추잠자리처럼 높고 푸르게 살아가는 일은 늘 어렵다. 무의식중 길을 잃거나 무언가 놓치거나 실패하면서 재빨리 체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바라보는 허공은 텅 비어 늘 배고프고 깨끗하였다. 가장 아름다운 실패라 부를 수 있어서 늘 꽁지 마르듯 더 붉어져가는 잠자리야, 고추잠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