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오름이야기 (109)

서쪽에서 바라본 녹하지악 전경
서쪽에서 바라본 녹하지악 전경

서귀포 쪽에서 중산간서로를 따라 회수 마을을 지나고, 중문 마을 위쪽을 지나서 상창 삼거리 쪽으로 가다가, 혹은 상창 삼거리에서 중산간서로를 따라 중문 마을 쪽으로 오다가, 색달 마을 근처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삼각형을 세워놓은 듯 뾰족하게 솟아있는 오름이 바라보인다. 이 오름이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녹하지악이다.
녹하지악은 서귀포시 중문동 지경의 중산간에 있는 오름으로, 산록남로의 중간 쯤에서 북쪽편에 위치한 레이크힐스 골프장이 이 오름을 둘러싸고 있다.

▲녹하지악 이름의 유래

이 오름의 이름인 ‘녹하지악(鹿下旨岳)’은 사슴이 내려와서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이 오름 동쪽에 위치한 거린사슴도 사슴이라는 말이 오름 이름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 옛날에는 사슴이 많이 살았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자말로는 ‘필봉(筆鋒)’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 오름의 형태가 어느 쪽에서 보아도 뾰족하게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오름은 필봉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상부가 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는 원추형의 오름으로,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의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녹하지악을 찾아가는 길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단순하다. 요즈음에는 자동차에 내비게이션 설치가 거의 되어 있으므로 내비게이션에서 ‘레이크힐스 골프장’을 검색하여 찾아가면 골프장 주차장에서 바로 오름을 만나 오를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산록남로와 1100도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옛 탐라대학교 북쪽 사거리)에서 산록남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2.3km를 가면 레이크힐스 컨트리클럽 제주로 올라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북쪽의 컨트리클럽으로 가는 길을 따라 다시 약 1.1km를 가면 컨트리클럽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바로 북서쪽 눈앞에 녹하지악이 있으며, 녹하지악 동쪽 기슭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골프장 길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150m 정도를 가면 오름으로 올라가는 탐방로를 만나게 된다.

▲오름의 형태

녹하지악은 봉우리가 뾰족하게 보이는 전형적인 원추형 오름으로, 남, 서, 북사면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며, 동사면은 다소 완만한 편이다.
오름의 전 사면에는 동사면 중턱 일부를 제외하고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으며, 기슭에는 삼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중턱에서 정상부까지는 소나무와 산딸나무, 팥배나무, 생달나무, 센달나무, 누리장나무, 비목나무, 팽나무, 왕초피나무, 머귀나무, 꾸지뽕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혼효림을 이루고 있으며, 청미래덩굴, 찔레 등 덩굴성 식물들이 엉켜서 자라고 있다. 동사면 중턱의 경사가 다소 완만한 구역에는 억새가 넓은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억새풀 무성한 탐방로를 오르며

레이크힐스 골프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녹하지악을 탐방하기 위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부터 1분 정도만 가니 금세 오름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이르렀다. 입구는 뚜렷하고 쉽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지는 않아도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오름 관리단체 지정 표지가 세워져 있어서 찾기에 큰 어려움을 없었다.

오름으로 올라가는 초입, 즉 오름 남동쪽 기슭에는 삼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삼나무 사이로 탐방로가 비스듬히 서쪽을 향하여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삼나무 지대가 끝나는 곳에서부터는 소나무, 비목나무, 보리수나무 등과 청미래덩굴 등이 섞여서 자라고 있었으며, 서쪽으로 가다가 꺾어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오름 중턱에 이르면 억새풀이 가득 덮여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억새풀 사이로 길이 뚜렷하게 나 있지는 않아서 자세히 살펴보며 무성한 억새 잎을 헤치며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이 무더운 여름 날씨를 뚫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인지 억새풀과 띠풀 사이로 짚신나물, 야고, 산박하, 투구꽃, 쥐꼬리망초, 이질풀, 싸리, 등골나물, 참취 등 가을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덤불을 헤치고 올라가는데 근처 덤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루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녹하지악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옛날부터 이 오름에 사슴들(노루들)이 많이 살았었고 지금도 노루들이 더러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억새 군락을 뚫고 다시 올라서서 정상부를 향해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조릿대가 올라가는 길을 가득 막고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다. 탐방로가 오랫동안 정비되지 않아서인지 조릿대가 우거진 사이로 전에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겨우 찾아서 올라갈 수 있었다. 예전에 이 오름에 찾아와 본 경험이 없었으면 탐방로가 어디인지 몰라서 아예 올라가기가 어려울 뻔했다.

정상부에 올라서니 이동통신 중계탑이 우거진 덤불 사이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고, 우거진 덤불을 감고 올라간 으아리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예전에 이 오름에 올랐을 때는 정상부에서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되었었는데, 이번에 올라와 보니 나무와 덤불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동쪽의 한라산 방향만 조망되고, 나머지 방향의 조망은 거의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부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서 그나마 서쪽의 서귀포 쓰레기 매립장과 돌오름과 그 주변이 보이고, 오름 바로 아래로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이고 있었다.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풍광은 한라산 정상부와 그 아래의 영실 병풍바위, 어점이오름, 1100 도로변의 삼형제오름, 민머루가 바라보였고, 거린사슴이 매우 가깝게 보였다.
정상부에서 그나마 보이는 전망을 조망하다 다시 왔던 탐방로를 따라 내려왔다. 내려올 때 보니 산딸나무가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몇 알 따서 입에 넣어 보니 달콤한 그 맛이 자연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것을 내려올 때에야 눈에 보이다니…….

오름을 다 내려온 다음 4·3 유적지인 경찰 주둔소를 확인하기 위해 클럽 하우스로 가서 프론트의 허가를 받고 알오름으로 건너갔다. 덤불이 우거진 숲을 헤치고 알오름 정상부로 올라가니 돌로 쌓아 놓은 경찰 주둔소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주둔소 유적은 돌무더기가 높게 쌓아 올려져 있어서 돌담을 이루고 있었으며, 망루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는 윗부분이 허물어져 내려앉아 있었다.

이곳 알오름에 경찰 주둔소가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952년 11월 창설된 경찰토벌대 ‘100전투사령부’ 소속 제103부대가 주둔했던 점에 미루어 한국전쟁 발발 이후 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둔소는 사각형의 구조로 정방형의 구조였으며, 높이 4m, 성담의 폭은 넓은 곳은 3m 정도의 겹담으로 견고하게 쌓아졌고, 모퉁이마다 망루(望樓)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곳에 와서 확인했을 때는 망루는 거의 허물어져 있었다.

이곳은 동북쪽으로는 거린사슴과 법정악, 북서쪽으로는 돌오름과 영아리오름, 서쪽으로는 병악, 남서쪽으로는 모라이악과 우보악이 잘 관측되는 지점이어서 토벌작전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주둔소는 마을주민을 동원하여 석축을 쌓고, 경찰 1명과 마을청년 5~6명이 상주하며 경계를 했으며, 토벌대 60명이 동시에 취침 및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규모였다. 성 밖에는 깊이 1.5m, 폭 1m 가량의 해자가 있었고 주둔 당시에도 가시나무로 해자를 덮어 위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주둔소 돌담 위에는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다래나무만이 가지를 뻗어서 자라고 있었는데 그 다래나무는 옛날에 사상 갈등과 아픔을 알고는 있는지…….
                                                           

                                                             한천민 한라오름연구소장·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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