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오름이야기 (110)

원물오름 전경
원물오름 전경
원물
원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 마을은 요즘 제주 서부 지역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곳이다. 이 마을로 제주와 모슬포를 잇는 평화로가 지나고 있고, 평화로는 이곳에서 한창로와 만나서 서귀포와 한림으로 이어지곤 한다. 특히 동광 육거리는 제주, 한림, 서귀포, 영어교육도시, 신화월드 등으로 가는 데 거쳐서 가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가 되어 있다.
오늘날만이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동광 마을은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제주목에서 대정현으로 오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었으며, 이곳에는 조선 시대에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에 있었던 근처에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물이 있어서 이 마을 주민들과 원을 이용하는 관리들, 여행객들이 마시는 소중한 생명수였다.
지금도 원물이라는 샘이 남아 있는데, 이 원물에 인접해 있는 오름이 원물오름이다.

▲원물오름의 유래 

원물오름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지경의 오름으로, 동광육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오름이다.
원물오름의 이름은 조선 시대에 이 오름 근처에 ‘이왕원(梨往院)’이라는 원(院)이 있었던 데다가 오름 아래에 있는 샘이 원물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원(院)이란 공무로 출장을 다니는 관원들을 위해 교통의 요지나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하였던 국영 숙식 시설을 말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대정현의 원님이 제주목으로 오가는 중에 이 오름 아래에 있는 물을 마시곤 했다는 데서 ‘원님이 마신 물’이라는 뜻으로 샘의 이름을 ‘원물’, 오름의 이름을 ‘원물오름’이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자 표기로는 ‘원수악(院水岳)’, ‘원수악(元水岳)’으로 쓴다.

▲원물오름 가는 길

원물오름은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첫째, 동광육거리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동광로를 따라 약 1.1km를 가면 안덕면 충혼묘지 주차장에 이른다. (제주시 방향에서 올 때는 평화로와 산록남로(제2산록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인 광평교차로의 광평교 다리가 있는 지점에서부터 서귀포와 모슬포 방향으로 평화로를 달리다가 약 800m 쯤에 동광 마을 방향으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약 670m를 가면 안덕면 충혼묘지 주차장에 이름) 주차장 앞에 있는 원물과 충혼묘지 옆을 지나서 곧바로 원물오름 정상으로 향하여 올라가는 탐방로가 시작된다.
둘째, 평화로가 산록남로(제2산록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인 광평교차로의 광평교 다리 위에서 한림 방향으로 길을 시작하는 지점의 도로 남쪽편에 좁은 시멘트 길을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약 590m를 가면 감낭오름 북동쪽 기슭에 이르며, 이곳에서 감낭오름 북쪽편 기슭을 따라 들어가는 탐방로가 시작되며, 탐방로를 따라 감남오름 북쪽 기슭을 따라가면 감낭오름과 원물 오름 사이의 골짜기에서 원물 쪽에서부터 올라오는 탐방로와 만나서 정상부로 향하게 된다.

▲원물오름의 형태

원물오름은 서쪽으로 터진 말굽형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는 오름으로, 동쪽에서 바라보면 굼부리가 보이지 않지만, 능선 위에 올라서 보면 서쪽으로 길쭉하게 터진 굼부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굼부리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봉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봉우리들은 능선이 동서로 길쭉한 모양으로 굼부리를 감싸고 서로 마주 보고 있고, 두 봉우리의 능선 동쪽에서 서로 이어지고 있다.

정상부는 북쪽 봉우리이다. 그런데 굼부리가 서쪽으로 터져 나가다가 끝이 난 곳에서부터 서쪽편으로 다시 작고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봉우리들과 주변의 사면들도 원물오름의 일부 봉우리와 능선으로 볼 수 있다.

원물오름은 남쪽 봉우리 능선 대부분과 북쪽 봉우리 능선 일부, 굼부리 안쪽, 그리고 동쪽사면에는 나무들이 많지 않고 초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특히 동쪽 사면은 표시된 탐방로가 없어도 아무 데로나 풀밭을 걸어 올라도 정상부로 올라갈 수 있다. 그 외의 지역들은 삼나무와 소나무 등 키가 큰 수종들이 자라고 있으며, 삼나무와 소나무가 없는 지역에는 쥐똥나무, 비목나무, 꽝꽝나무,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등 비교적 키가 작은 나무들과 찔레, 청미래덩굴, 인동덩굴 등이 엉켜서 자라고 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상부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한낮은 뜨거운 햇볕과 높은 습도로 인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나는 날씨였다. 그래도 그늘에 앉거나 바람이 불어주면 제법 시원한 느낌을 주곤 하였다. 원물오름을 탐방하기 위하여 갔던 날도 이런 날씨였다. 원물오름 남쪽 안덕면 충혼묘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탐방을 시작했다.

주차장 뒤편 탐방로 입구에는 원물이 남쪽의 큰 연못과 북쪽의 작은 연못 등 두 개로 나뉜 연못 형태로 보존되어 남아 있었는데, 남쪽 큰 연못 위에는 팔각정과 연못 가운데까지 갈 수 있는 데크 시설이 되어 있었다. 데크 위를 걸어 연못 가운데로 가서 보았더니, 원물에는 수련과 마름이 연못 전체에 가득 덮여 있었다.

원물을 지나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탐방로 주변에는 여러 종의 가을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짚신나물, 닭의장풀, 이질풀, 무릇, 으아리, 이삭여뀌, 골등골 나물, 벌등골나물 등……. 그런데 그중에 반갑지 않은 식물도 있었다. 그건 도깨비가지라고 하는 귀화 식물이었다. 도깨비가지는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 1978년에 국내에 처음 보고됐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가지과 식물로, 주로 목장 주변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번식하여 퍼지고 있는 생태계 교란 식물이다. 가시와 잎에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있어서 소와 말 등 목장에서 사육하는 초식동물들이 먹지 못해 골칫거리 식물이다.

오름 동쪽편 중턱으로 올라서서 감남오름 쪽에서 오는 탐방로와 서로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제야 올라오는 길에 멈추어 있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가을 오름에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나의 시 한 소절이 다시금 생각났다. 가을바람에 띠풀들이 흔들리고 올라온 탐방객이 이마에 흘린 땀도 시원하게 씻어 주고 있었다.

정상부로 오르는 중간 어림쯤에 이르니 잔대가 연보랏빛 꽃을 피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잔대를 카메라에 담느라 잠시 앉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쪽 가까운 곳에 감낭오름이 원물오름과 마주 보고 있었고, 동쪽 조금 멀리로는 돔박이, 고수치, 영아리와 그 남쪽으로 대비오름, 더 남쪽으로는 믜오름과 여진머리, 족은오름이 다가와 보였다.

먼저 북쪽 봉우리로 올라서서 전망이 보이는 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당오름이 마주 보고 있었고, 그 뒤로 정물오름과 금오름이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여러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곳마다 도너리오름, 남소로기, 광챙이오름, 바굼지오름오름, 산방산, 모슬봉, 가시오름, 새별오름, 이달오름 등 여러 오름들이 바라보였다.

북쪽 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다가 북쪽 봉우리와 남쪽 봉우리 사이에 굼부리를 지나 남쪽 봉우리로 올라왔다. 남쪽 봉우리의 능선 중 서쪽 끝부분의 바위 위에 올라와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전망이 정말 시원하게 바라보였다. 북쪽 봉우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당오름, 수월봉, 녹남봉, 차귀도, 형제섬까지도 바라보였으며, 바로 아래로는 제주섬 남서부 지역 교통의 중심지인 동광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남쪽 봉우리 위에는 오래된 산화경방초소와 큰 바위들이 능선을 따라 서 았었고, 굼부리 너머로 북쪽 봉우리가 마주 바라보였다.
남쪽 봉우리 능선은 모두 나무 한 그루 없는 풀밭으로 덮여 있었는데, 마주 보이는 북쪽 봉우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삼나무와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굼부리 동쪽의 남쪽 봉우리와 북쪽 봉우리를 연결하는 어름에는 삼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오름 위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보다 올라왔던 탐방로를 되짚어 오름을 내려왔다.
                                                            한천민 한라오름연구소장·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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